메피스토 펭귄클래식 78
클라우스 만 지음, 오용록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재밌다. 아버지 토마스 만이 <파우스트 박사>를 썼고, 아들 클라우스 만이 <메피스토>를 쓰다니. 클라우스 이사람 평생 참 스트레스 많았을 거 같다. 아버지 토마스 만은 말이 필요없는 독일의 문호고, 큰아버지 하인리히 만 역시 당대의 소설들을 쓴 작가에다가 적극적인 사회운동가로서 평생을 독일 내외에서 반파시스트 운동을 펼친 인물이었으니.

 <파우스트 박사>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판 대 작곡가 아드리안 레버퀸(이라고 읽는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일생에 관한 것이었으면 <메피스토>는 독일의 경향각지를 떠돌며, 아니, 날아다니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비범한 자' 그러나 천재까지는 아닌 자들영혼을 수집하던 악마를 그렸을까? 궁금하시지? 큰 맘 먹고 가르쳐드린다. 잘생긴 연극배우의 한 시절, 나름대로의 성공담을 그린 소설이다. 희극전문배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필생의 작품은 괴테의 <파우스트>. 그 가운데서도 메피스토펠레스에 관한 한 당대에 따라올 수 없는, 연기의 천재 헨드릭 회프겐. 원래 이름은 하인리히 회프겐, 애칭으로 하인쯔라고 불렸으나, 일찌감치 뜻을 세워 헨드릭으로 이름을 바꾼다. 독일에서도 헨드릭이란 이름은 많이 쓰지 않는 모양. 왜냐하면 '헨릭'이 워낙 많아 곧잘, 자주, 늘 헨드릭이란 이름을 표기할 때 헨릭이라 써서 우리의 주인공 헨드릭 회프겐을 열받게 한다. 이게 다 뜻이 있는 거다. 흔한 이름 하인리히 말고, 많은 사람들이 헷갈리는 이름인 '헨드릭'이 언젠가는 '헨릭'하고 뚜렷하게 구분하여 일컬어질 것이고, 그때 자신의 진정한 성공 또는 승리가 이루어진다는 거.

 이 인간, 헨드릭. 성공 말고는 아무 생각 없는 작자다. 아니다. 성공을 위해 정말로 엄청나게 다방면으로 생각이 많은 인간이다. 국가사회주의당이 별볼일 없을 때는 문화 볼셰비키를 등에 업고 연극계에서 깝치더니,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 자신의 성공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브루크너 박사 가문의 딸과 어울리지 않는 결혼을 하고, 드디어 나치가 집권을 하자 곧바로 그녀와의 이혼을 감행해버린다. 아, 브루크너 가문의 딸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데 사실 이런 건 독후감을 쓰는 인간이라면 쪽팔린줄 알아야 하는 거고, 그래서 난 그녀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하는 지금 무지 쪽팔려 하면서 독후감을 쓰고 있는 바, 하여간 어쨌든 헨드릭 이 어처구니 없는 인간은 서슬퍼런 나치의 치하에서도 오직 하나, 혹시 나치가 망한 다음에 어떤 체제가 올지 몰라, 예전부터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운동을 해온 동료 하나를 수용소에서 빼오기도 하는 놀라운 수완을 보여준다. 어딜 가도 살아남는 인간. 여기서 '어딜 가도'의 '어디'는 말 그대로 세상의 모든 곳이다. 당신과 내가 지금 먹고 사는 직장일 수도 있고, 대한민국의 신체건강하고 발기 잘 되는 남자들이면 빠짐없이 가야하는 군대에서는 특히 그렇고, 심지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한때는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헛소리를 해대던 대학 까지 교육기관에서도 그렇고, 청와대, 국회의사당 등의 정치판에선 말 할 것도 없고, 하다못해 주민등록 등본 떼러 가는 동 사무소에서도 한 때는 마찬가지였다. 놀랍게도 성당, 교회, 절, 원불교 교당, 대순진리회 도량 등의 종교집단에까지. 그 어딜 가도 결국엔 떵떵거리며 살아남는 해바라기, 또는 쥐새끼들. 이것들의 대표선수가 헨드릭 회프겐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 해바라기 또는 쥐새끼들이 약삭바르고 비겁하기만 한 찌질이들이라고? 천만의 말씀. 찌질이들은 어딜가도 찌질이. 이 인간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가 집단이 요구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거. 적어도 보통 이상의 능력. 근데 하나, 균형감각, 특히 바름과 바르지 않음에 관한 균형을 잡는데 매우 서툴든지 아니면 특정 목적상 그따위 균형감각은 애초에 모른 척하기로 작정을 했든지, 심하면 의식 깊은 곳에서 옳고 그름의 판단을 하지 않게 심리적으로 막아놨든지 하는 경우다. 그리하여 화장실 옆에 책상을 두고 그곳에서 근무하라고 명령할 수 있는 거고, 인민혁명당이란 있지도 않은 조직을 만들어 사형선고를 받게하고는 판결을 받자마자 목매달 수 있는 거고, 무솔리니가 됐든 히틀러가 됐든 일단 내 배 부른 게 최고의 선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거다. 그거 아무나 못한다. 균형감각을 잃어버렸거나 아예 없거나 있긴 있는데 없는 것처럼 살기로 작정한 똘똘이 스머프들이나 하는 것이지.

 근데 재미난 것이 클라우스 만이 자신의 매부, 그러니 누나의 남편 그륀트겐스가 헤르만 괴링의 비호를 받으며 나치 체제에 동참한 것을 모델로 했다는 거. 책에서 보자면 브루크너 박사의 (등장하지 않는 인물인) 아들이 클라우스 만이 되겠다. 그럼 부르크너 박사는? 당연히 토마스 만이다. 얼마나 사실과 가까운가 하면 세월이 흘러 책의 사실상 주인공, 헨드릭 회프겐의 모델 그륀트겐스의 자손들이 이 책을 판매중지해달라고 소송까지 했다니 말 다했다. 문제는 실화와 너무 가깝게 묘사를 해서 처음부터 이 책이 어떻게 흘러갈지 대강 짐작을 할 수 있겠더라는 거. 그럼에도 재미나다. 400쪽에 이르는 장편소설이지만 언제 읽었는지 모르게 후딱 지나간다. 당신의 엉덩이가 질기다고 생각하면 비록 삼복중이라도 시도해보시고, 질기지 않으면 이 여름이 가고 드디어 선선한 가을이 쳐들어올 때, 한번 읽어보시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