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의 미치광이 펭귄클래식 54
로베르토 아를트 지음, 엄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로베르토 아를트, 이 사람이 1900년 아르헨티나 출생. 바야흐로 당시 아르헨티나는 세계의 신흥 강국으로 부상, 그에 대한 부작용을 겪느라 (아직까지 이어지는) 치안불안, 정치적 혼돈상태에 휩싸여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숱한 인민들은 현실의 불안에 적절하게 대처할 대상이나 행위 또는 장치가 없었다(고 한다). 사회가 안정되지 못할 땐 그저 적절하게 씹어줄 특정 대상이나 계급이 필요한데 마땅한 재료가 등장하지 않으니 몇몇 도라이들이 등장하여 다수에 대한 무작정 테러를 꿈꾸는 걸로 대체하고, 이 책이 바로 대량테러를 획책하는 몇 명의 도라이들을 그리고 있다. 물론 아르헨티나 역사에 관해선 전적으로 문외한이다. 다만 이 책을 읽고 추리하는 한도에서 말하자면 이들 대량살상을 통한 세계정복에 나선 아수라백작의 후예, 아니 할아버지뻘인가? 하여간 같은 종족들의, 책의 제목처럼 미치광이 같은 일탈을 그린다.

 시작하기 전에 먼저 알려드릴 것은, 7인의 미치광이가 등장하기는 하는데, 그들이 서로 모여 작당을 하고 일을 저질러 끝내 비극적으로 최후를 맞는 건 이 책의 후속작인 <화염 방사기>에서 나오는 모양이다. 나도 그 책은 읽지 않았고 앞으로도 읽지 않을 거 같아 정확하게는 말하지 못하지만, 하여간 읽는 사람에 따라 마지막이 중동무이되는 듯한 느낌을 갖을 수도 있다.

 작가 로베르토 아를트 자신이 어려서부터 무능력한 아버지한테 날이면 날마다 얻어 터지는 걸 낙으로 알고 자라다가 드디어 사춘기가 되고,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의 폭력이 도무지 줄지를 않자 열 여섯 먹은 어느 날을 잡아 에이 썅, 이 집구석 아니면 내가 어디 살 곳이 없을 줄 알아? 가출을 감행한 전력이 있다. 책의 주인공 에르도사인, 이 인간이 작가 아를트의 분신인 거 같은데, 그를 통해 작가가 소섯적에 겪어서 인생을 살아가는 오랜 세월 내내 스스로 자존감을 파괴하고 굴욕감과 증오심의 상승 게이지를 올려준 건, 대한민국에선 대체로 술취한 아버지가 그 역할을 하는 것에 비해, 아르헨티나의 아를트 씨는 맨정신에 자기 친아들, DNA의 절반이 자기와 같이 배열된 친아들을 상대로 거침없이 구사했던 가정 폭력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랬나? 작중 주인공 에르도사인, 직업이 수금원이다, 회사의 채무자로부터 큰 돈을 수금해 입금시키면, 받아온 돈에 비례해 급여를 받지만 객관적으로 쥐꼬리만한 봉급 밖엔 되지 않아, 어느날 부터 조금씩 조금씩 수금한 돈을 개인 용처에 써버리다가 누군가가 회사에 투서를 해서 당장 내일 오후 세시까지 갚지 못하면 손모가지에 은팔찌 둘러야하는 신세에 떨어진다. (가정교육은 중요한 겨.)

 에르도사인이 600 페소 7 센타보를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만난 인간들이 주술사를 둘러싼 희대의 도라이들. 러시아 혁명을 능가하는 세계혁명을 꿈꾸는 족속들. 그러니까 시대적 배경은 적어도 1920년대 이후라고 봐야겠다. 주술사 곁에 모여든 공금횡령 회사원, 창녀들의 기둥서방, 골드 러시에 청춘을 바친 황금 탐험가, 세상의 가장 큰 가치를 도박장의 룰렛 소리로 특정한 약사, 유부녀이며 사촌인 여인에 대한 미움으로 여자의 남편을 기꺼이 삶의 진흙탕으로 던져버린 돈 많은 룸펜 등등.

 에르도사인이 원래부터 파렴치한 횡령범이었겠는가. 다 돈이 원수지. 아니. 돈이 무슨 죄가 있나. 삶이 원수다. 날이면 날마다 아버지의 채찍에 엉덩이 살이 갈라지는 체력단련을 받고 자라서 대뇌의 뭔가가 이상작동을 했는지 생각 외로 에르도사인은 보통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기괴한 기계장치를 개발하는, 소위 발명에 관해 특출난 재주를 갖게 된다. 그가 7인 그룹의 리더인 주술사에게 제시한 대량 테러 방법은, 페스트나 콜레라, 염소와 독가스를 사용하여 대량 살상을 하자는 화생 폭탄의 개발. 그럼 공장이 필요하고, 세포 대원들을 훈련시킬 장소가 필요하고, 모든 사업을 가능하게 할 돈의 원천이 필요한 것. 어떻게 재원을 마련하느냐하면, 수 명의 몸 파는 여인들의 기둥서방으로 활약하고 있는 인간이 주도하여 대규모의 사창가를 운영하는 그림을 그렸다. 사창가는 뭐 맨입으로? 그리하여 종잣돈이 필요한데 이건 우리의 에르도사인의 처사촌, 돈은 많은데 인색하기 짝이 없는 한 인간을 유괴하여 수표를 발행하게 한 다음 깨끗하게 죽여버리기로 정한다.

 모든 것이 주술사를 둘러싼 기상천외의 인간들 머리 속에서 벌어지고 때론 정말로 납치, 수표발행, 현금인출 등이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절대로 실제적인 살인이나 세균 또는 화학적 독극물이 살포되는 장면은 나오지도 않는다. 심지어 정말로 그렇게 할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하다가 그냥 작품은 끝나버리고 만다.

 그렇다고 이 책이 재미 없을 거라 속단하지 마시라. 정말로 살인이 벌어지고 대규모 살상까지 이루어지면 난 읽다가 말았을지도 모른다. 거기다가 실감나라고, 칼에 찔렸다면 살해당한 사람의 자상자국이나 벌어진 살 틈새로 콸콸 쏟아지는 피 같은 거, 총에 맞았다면 총알이 피부를 뚫고 들어간 자리와 관통해 밖으로 나온 자리의 벌어진 자리, 그딴 거 읽을 때의, 으, 그 불편함이라니. 걱정하지 마시라. 단 한 컷도 나오지 않는다, 라고는 얘기하기 힘들지만 궁극적으로 그것도 사실은 죽음에 이르는 행위가 아니란 면에서, 그렇게(한 컷도 나오지 않는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잘 쓴 소설은 거의 전부 심리소설이다. 이 책 역시 무수한 미치광이들의 무수한 엽기적 상상과 행위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심리소설이다. 1차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적인 불황을 맞이한 부에노르 아이레스의 보통인간들이 어떻게라도 살아야 하는, 그러나 진짜로 살기엔 힘들고,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꼬운 현실에 대한 거대한 은유. 나는 이렇게 읽었다. 재미나게.

 그러나 당신한테는 권하지 않겠다. 읽던 말던 당신이 결정하고 책임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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