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이었던 남자 - 악몽 펭귄클래식 76
G. K. 체스터튼 지음, 김성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체스터턴 선생이라면, 당연히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도 완결 번역판이 나온 <브라운 신부> 시리즈다. 나도 가지고 있다. 다른 탐정 시리즈하고 비교하면 다분히 소프트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라운...>이 흥미를 끌었던 이유는, 일반적인 사람, 그러니까 나하고 비슷한 종자들이 늘 생각하고 있는, 여기서 난 '생각하고 있는'이라고 말하지 '추리할 만한'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에 주의하시고, 그러니까 일반인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삐딱한지, 실상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게 하는지를 콕 집어내기 때문이었다.


 이 책이다. 시중엔 전부 일시품절. 중고책은 구할 수 있을 거다. 근데 특별한 재미는 없어서 악착같이 읽어보실 필요는 없고 싼 값에 중고책이 눈에 띄면 걍 한 번 구경이나 하심이....


 예를 들어 말씀드리자면, 고전에 능통한 한 시인이 살인 강도의 누명을 쓰게 되는데, 다분히 주위 인간들이 그의 외모,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어서 과장되게 커보이는 눈과 매일 책상에 앉아 책 읽고 글 쓰는데 시간을 죽이느라 만들어진 똥배, 흐트러지고 듬성듬성한 머리칼, 늘 싯구를 떠올리느라 신경질적인 인상 등을 감안하여 전체적으로 범죄형이라 판단해, 동일 조건의 용의자 여러명 가운데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기 때문이라는 점. 근데 체스터턴의 분신인 작은 키에 까만 얼굴을 가진 브라운 신부는, 그의 후줄근한 외모로 인해 생겼을 법한 열등감 등이 그를 책읽기와 시 쓰기를 집중하게 만들어 시인이 됐을 거란 인생철학을 설파하기에 이른다. 이런 식. 사실 우리나라 문학계에서도 작은 키에 놀림감이 되는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죽자고 책 읽고 소설 써서 성공한 이가 최일남, 최인호 등 여러 작가가 고백했고, 거꾸로 큰 키로 인해 여럿이 어울리지 못하고 외톨이가 돼버려 소설가가 된 인간이 <아베의 가족>을 쓴 전상국 등이 있다. 열등감, 알고 보면 성공의 씨앗일 수 있다.

 이를 미리 알고 체스터턴의 작품 <목요일이었던 남자>를 읽었다. 글쎄 이게 추리물이라던지, 수사반장이나 형사 콜롬보 류의 범죄소설이라고 하기엔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그것보다는 세기말과 전쟁 전의 혼돈, 불안 같은 대중의 심리를 기호상징적으로 쓴 소설이라고 해야할 듯.

 시인 가브리엘 사림이란 젊은이가 있었다. 어느날 느닷없이 이름도 떠르르한 영국 경시청 지하의 어두운 방으로 인도되어 어둠 속에 앉아 있는 거구의 사내로 부터 영국 경찰로 임명된다. 런던 서부지역 사프론 파크 주택가의 한 정원에서 사림은 또다른 시인이자 무정부주의자인 그레고리와의 대화끝에 대규모 폭탄 테러를 꾸미고 있는 집단에 잠입하게 된다. 그 집단의 우두머리가 일요일. 이어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모두 일곱 명의 주요멤버가 있는데 시인 사림은 그중에 목요일로 불린다. 그리하여 제목이 한때 목요일이라고 불렸던 남자가 되는 것. 도버 해협 건너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 황제와 러시아 황제의 회담이 예정되어 있어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해 두 명의 황제를 동시에 골로 보낸다는 목표를 정한 무정부주의자 집단. 애초 사림이 이들 속에 잠입할 시기에 맺었던 또다른 시인 그레고리와의 맹세 때문에 자신은 이들을 체포하지 못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부터가 사실 웃기기 시작한다. 이어서 벌어지는 황당한 인물들이 줄줄이 등장하는데도 웃지못할 한 판이 벌어지고, 아쉽게도 책이 중간을 넘어설 대 부턴 머리회전이 좀 둔한 독자도 집단의 막강한 우두머리가 누구인지 대충 짐작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인도한다.

 중간부터 책은 아예 노골적인 코메디 소설로 접어든다. 그런데도 독자는 마음놓고 웃어버릴 수 없는 애매한 상황을 경험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위험집단으로 공식 인정된 무정부주의자들의 무리, 정체가 밝혀질수록 안개는 더욱 짙어져 도대체 얘네들 뭥미? 정말 두 거대국가의 황제,로 대변하는 기존 세상을 뒤엎을 만한 거야? 다이너마이트 몇 개가? 세기말, 세기초 그리고 전쟁 전 당시에 진정으로 위험한 것이 도대체 무엇이며 눈에 보이기는 하는 거야? 라는 질문을 던진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에서 본 거 같은 기시감이자 체스터턴이라는 괴짜 추리소설가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이상한 매력.

 그래도 솔직히 얘기하자면 크게 재미나지는 않다. 정상적인 추리소설의 틀에서 무지하게 많이 벗어나 있는 (당시 시선에선) 실험적 작품이랄 수도 있고, 이건 추리소설이 아니라 사회소설이라고 하는 게 맞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어떻게 주장하건 간에 뭘 주장하려면 이 책을 직접 읽어봐야 하는데, 책 뒤표지에 휘황찬란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21세기에 들어 이 작품을 필독서라고까지는 추켜올리고 싶지 않다. 그래도 좀 색다른 책을 좋아하시는 부류의 독자들 입맛에 딱 들어맞을 수 있겠다. 결정은 당신이 하시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