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여행이 되다 : 작가가 내게 말을 걸 때 소설, 여행이 되다
이시목 외 9인 지음 / 글누림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몰랐는데, '글누림'이란 출판사, 좀 독특한 느낌. 특히 눈에 확 와닿던 시리즈가 '비서구문학전집' 한국의 번역문학이 거의 유럽의 것들로 채워진 것에 불만을 느낀 모양이다. 그래서 시리즈 1번이 베트남 작가들의 단편선. 야, 이거봐라. 대단한 기획일 걸! 깜짝 한 번 놀라고, 2번이 아랍 소설가들의 단편선, 3번이 아랍 여성들의 단편선. 와, 정말 죽여준다. 근데 4번이 중국. 흠. 중국문학은 더이상 변방이 아닌데. 5번이 멕시코. 멕시코 문학이면 크게 봐서 스페인어 권역의 문학. 이거 좀. 그럼 라틴 아메리카 문학도 이 시리즈에 다 포함시킬 건가? 하는 의문. 아니나달라 6,7,8,9번은 다 일본 문학. 에잇, 이거 뭐야. 잘 나가다가. 게다가 대학 출판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출판사가 정가의 10%를 할인해서 판매하는데 반해 이 사람들은 5%다. 좋다. 안 깍아줘도 볼 놈들은 다 본다. 놀라운 마케팅.

 거기다가 유난히 눈에 띄는 건, 다른 업체와 비교할 때 기행문이 눈에 많이 띈다는 거. 이 책도 10 명의 글 좀 쓴다는 사람이 모여 경향각지를 싸돌아다닌 이야기책. 그냥 길 떠난 이야기, 라고 하면 이젠 좀 심심한 시대가 되서 '문학' 중에서도 특히 '소설'을 주제로 책 두 권을 냈는데 첫번째 이야기는 소설을 쓰는 작가들을 기행의 주제로 삼았다. 그리하여 먼저 소제목 '작가가 내게 말을 걸 때'를 앞에 놓고 큰 제목을 <소설, 여행이 되다>로 뒤에 배열했다. 글 쓴 이들이 조금 연배, 글쎄 아직 연배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하여간 나이가 좀 있는 모양이다. 이들이 고른 작가들을 가지고 궁리해보자면 많으면 50대 중반, 적어도 40세 이상인 거 같다. 뭐, 아니면 말고(윽! 아니란다). 참으로 다행스럽게 내게 말을 건 작가들 거의 대부분과 나는 익숙했다.

 이 책을 기획할 당시로 뒤돌아가보자. 한두명도 아니고 작가가 무려 열명. 이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제일 먼저, 당연히 제일 쉽게 떠올린 생각은? "XX 문학관" "XXX 생가(터)" "XXX 기념관"에 가보자. 하는 거. 나 같아도 그랬을 거 같으니까. 거기다가 1980년대 말부터 시작한 거 같은데, 이 책에선 거명하지 않았으나 이문열 같은 이들이 경기도 이천에서 사숙을 열고 문학지망생들에게 공간을 제공해주고 소설쓰기에 힘을 쏟게 해주는 게 유행을 만들었는 바, 그런 장소도 셈에 꼽았을 거 같다. 책에 문순태의 사숙 비슷한 장소가 나오듯이.

 그리고, 열 명의 작가가 지금부터 해산! 이렇게 동시에 경향각지를 향해 고단한 발걸음을 한 것이 아니라,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리고 몇 군데는 그랬다고 짐작하지만, 열 아홉 군데 전부를 열 명이서 두군데 씩 간 것이 아니고 때로는 둘이 혹은 셋이 손잡고 가서 한 명은 이런 시각으로 다른 이는 저런 앵글로 피사체에 관한 사색을 한 결과물을, 편집과정에서 합해놓은 것도 분명이 있다, 여럿 있다, 라는 데 만원 건다(아니란다. 만원 잃었다!). 문장과 문단은 작가들의 지문과 비슷한 법.

 하여간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자식새끼들한텐 번듯한 스펙을 달게 해주기 위해 개풍에서 서울로 와 처음으로 엄마가 말뚝을 푹 박아버린 서대문구 현저동에서 시작해 중산간 지역 주민들을 줄 좍 세워놓고 거의 2/3를 때죽음으로 몰아놓은 제주도 4.3 사건의 현장까지 열명의 작가들은 '쎄가 빠지게' 돌아다녔다. 카메라 한 대 어깨에 메고. 요새 카메라엔 필름을 넣지 않지만 그래도 무게가 여간 아니라 쎄가 빠지게 카메라 메고 다니느라 어깨도 빠져버렸을 거 같다. 여기저기 사진 박으면서 길 떠난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서술, 이 책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안 떠나거나 못 떠난 사람들이 마치 진짜 가서 보면 작가들이 써놓은 글 모양 가슴이 시리고 마음이 알싸한 쓸쓸한 회한 가득한 정경을 그리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상당한 부분, 성공했다.

 춘천을 예로 들어볼까? 춘천, 하면 떠오르는 작가가? 맞습니다. 김유정. 요샌 김유정을 기념하기 위해 김유정 생가터가 있는 지역의 기차역 이름을 '김유정 역'이라 해놓고, 춘천 시내 곳곳의 이정표에 '김유정 생가' 방향을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김유정은 현재 행정구역 상 춘천에 거주하면서 정말, 진짜 기가 막힌 토속적 향취의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그이의 고향이 춘천이라 춘천의 김유정 생가를 찾은 것이 아니라, 춘천을 무대로 소설작업을 했기 때문에, 그가 작품 속에 묘사한 춘천의 한 지역을 답사해 기행문을 썼다. 춘천이 고향인 사람이 한 둘인가. 이외수? 글쎄 난 그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별개로 하고,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최수철. 그러나 최수철의 태가 묻힌 곳이 비록 춘천이 맞지만 그의 문학적 고향은 차라리 고래뱃속? 그리하여 작가가 말을 거는 장소로서 춘천에 최수철은 없다. 여담을 한 마디 하자면, 김유정, 최수철, 두 명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춘천 태생 작가를 한 명 아는데 요새 책을 낸 김희선. 왜냐고? 최수철이 등단시켰고(이런 단정은 정말 바람직하지 않지만 하여간) 김유정을 만날 수만 있으면 그이가 걸렸던 병에 잘 듣는 약을 주고 싶어하는 작가니까. 근데 김희선도 태생이 춘천이지 문학적 고향은 춘천에서 구도로로 가면 한 시간 반, 고속도로로 가면 한 시간 쯤 걸리는 W시다.

 그외 지금 퍼뜩 생각나는 곳이 청송, 대구(사실 진영에 갔더라도 좋았을 뻔했다), 을숙도, 남원, 담양 그리고 특히 장흥. 장흥 기행은 무려 두 번에 걸쳐 나오는데 한승원과 이청준이 말을 걸어서. 장흥으로 향한 두 번의 발걸음에 동의한다. 충분히 그럴 만한 작가들이고 장소라서.

 책을 큰 아이에게 선물하려 한다. 그 아이가 딱 좋아할 스타일의 책이다. 걘 서울에서 병역을 할 때에도 서울지역에 관한 테마 여행기를 한 권 사서 꼼꼼하게 뒤지고 다녔던 적이 있다. 이젠 서울에서 벗어나 전국으로 확대할 시점이니 그러기 위해선 이 책이 더없이 훌륭한 반려가 될 것이다.


 * 불만 하나 얘기하자면, 문장과 문단으로 보건데 정말 열 명의 작가가 쓴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상 별 차이가 없다. 편집자나 기획자가 한 방향으로만 주문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좀 더 다양한 감상이 아쉽다. 예를 들어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읽으며 늦가을 같은 심상만 자아낼 뿐 한 번도 웃게 만들지 못한다. 심지어 <봄봄>, <동백꽃>의 무대에 가서도 여전히 폐결핵과 결핵성 치루로 한참 젊은 나이에 죽었다는 얘기만 줄창 나온다.  점순이 키 커가는 거, 내가 장인짜리 불알 잡고 늘어지는 거하고 폐결핵, 그리고 결핵성 치루가 뭔 관계가 있다고, 참나. 웃고 살아도 괜찮은 세월이 좀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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