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정원 -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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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구 부암동으로 짐작할 수 있는 인왕산 언덕배기 산동네. 충청북도 괴산군 노루배미에서 고등학교 1학년 까지 마치고 상경해 외국계 무역회사에 다니는 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중학교 졸업 학력으로 십 년 동안 남편과 시어머니로부터 무식하다느니 배운데 없다거니 하는 타박만 좋이 얻어자시며 이 책의 주인공 '나'를 여덟살 먹을 때까지 키워주신, 목포 출신의 요리 명장이지만 정식 직업은 오르다가 가겟방 앞에서 한 번은 쉬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언덕배기 달동네 오두막집의 솥뚜껑 운전사, 엄마. 끔찍하게 깔끔을 떠는 엄마가 눈 오는 날 키보다 큰 싸리 빗자루로 쓱쓱 눈을 치우다가, 아이고 저걸 저걸, 이를 악물고 끙끙 앓는 소리로 시어머니에게 "어머니 애가 나오려나봐요. 너무 급해 차리고 병원에 못 갈 거 같아요. 동네 산파 좀 알아봐주실래요?" 한 마디 하고 그길로 1977년, 한국적 민주주의가 든든히 토대를 잡고있던 20세기 중반의 민족중흥 시대에, 흔한 산과 병원도 아니고, 손톱 밑에 때가 새까만 아줌마가 지물거리는 눈으로 엄마의 가랑이 사이를 째려보는 종로구 부암동의 찌그러진 조산원에서 드디어 터울 많이 나는 내 동생 영주가 태어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제 육십이 넘어 목소리마저 메조 소프라노로 바뀐 할머니는 영주가 드디어 엄마의 태 속에서부터 탈출하기로 결심을 하기 바로 전까지, 영어로 말하자면 솔리테어solitaire, 우리말로 하자면 재수떼기를 하고 있다가 마지막 장을 뒤집기 바로 전에 급하게 옷보따리를 하나 만들어 나와 함께 판자처럼 생긴 지저분하고 좁은 조산원으로 뛰어왔는데, 연속극에서 본 거 처럼 아이를 낳고 있는 중인 엄마가 아이고 죽겠네, 으악, 으악, 소리소리 지르지 않고 그냥 음, 음 하는 신음만 들려오는 중에 우리의 칠성님께 간곡한 기도를 시작한다. "아이구, 칠성님. 이 늙은이가 둘째 손자 하나만 안아보게 해주십시오. 비나이다 비나이다. 그저 토란 같은 불알 달린 손자놈만 낳아라. 비나이다 비나이다." 그러다 내가 가슴에 안고 있는 보온병을 내려다보더니 내 뒤통수를 후려갈기며, "이 새끼야, 마호병은뭐 하러 들고 왔어?" 하는 거였다. TV 보니까 사람이 아이를 낳으려면 제일 먼저 사람들한테 물 끓이라고 소리치는 걸 보고 분명히 뜨거운 물이 필요할 거 같아서 부엌 연탄불 위에 끓고 있던 솥단지에서, 그 비상사태에도 불구하고,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담아 온 건데, 비록 일상이 돼버려 아무렇지도 않지만, 뒤통수만 한 방 얻어터지고 만 거였다.

 잠시 후 조산원 아줌마의 '그렇지!'하는 말과 캑캑캑 하는 아이 울음 소리가 들리고 할머니와 난 득달같이 달려가 방문을 벌컥 열어젖혔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비린내가 가득한 방 공기가 확 들이 닥치고, 난 비린 냄새에 비위가 확 상해 토할 거 같아 고개를 돌렸으며, 바람들어온다는 조산원 아줌마의 지청구와 함께 다시 문이 쾅 닫혔다. "딸이에요, 딸." 그 말을 듣자마자 할머니는 땅을 쿵쿵 구르며 아이고 내 팔자야, 통곡에 통곡을 거듭했으며 집에 가자마자 머리에 질끈 끈 하나 동여매고 아침에 하다 만 재수떼기 화투의 뒷장을 기어이 넘겼는데, 딱 떨어지는 재수가 흑싸리 껍데기.

 "사흑싸리 껍데기! 육시랄허게 복도 없는 지집년이 나왔구나!"

 어느새 두달이 흘러 6년 터울이 나는 내 동생의 이름을 지어야 하는 때가 왔다. 할머니가 달력 찢은 종이에 뭐라 한 글자를 써 아버지한테 던져 주면서 하시는 말씀이, "옛다. 저년 부를 이름은 있어야지." 나는 안고있던 아이를 엄마한테 얼른 넘겨주고 종이쪽지를 주워 들여다 봤고 그 위엔 뭔가 꼬불꼬불한 글씨가 적혀 있었으나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한복자. 좋쟈? 저년 낳던 날 사흑싸리 껍데기가 떨어졌으니 저년 복이 오죽하겠냐. 그러니까 이름자에 복복 자를 넣어서 기를 올려줘야 우리 집안도 좋고 저년도 좋은겨."

 사실 바로 위에 이 책의 내용은 다 설명이 됐다. 정말이다. 일단 현재 시점까지 보면, 할머니가 가족 구성원 중에서 아버지를 뺀 나머지 인간들은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것이고, 할머니가 적어준 달력 찢은 쪽지에 쓴 아이의 이름을 읽지 못하는 나는 아홉살이 되도록, 3학년에 이르도록 글자를 해독하지 못하는 중증 난독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자세히는 밝히지 않겠으나, 거의 모든 작품에서 비극에 관한 예언은 언제나 들어맞는다는 진리를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다,는 걸 천명해둔다.


 난 이 책이 2013년에 나와서 불과 4년 전 작품인줄 알았다. 근데 다 읽고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기에 검색을 해보니 우헤, 2002년 작품이다. 그러니까 중판. 심윤경. 서울대 분자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같은 전공으로 졸업하고 직장생활 하다, 아 이거 아냐, 때려치고 소설 쓰는 아줌마. 햐, 근데 어찌 분자생물학적 접근은 전혀 찾지 못했을까? 이이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니 동화책이 여럿 있다. 전혀 놀라지 않았음. <나의 아름다운 정원> 역시 다분히 동화적인 시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른들이 읽는 동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꿈꾸고, 꿈마저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종이 위의 꼬물꼬물한 직선과 곡선에 불과했던 것이 문자로 바뀌고, 동생의 잘못을 아무도 모르게하기 위해 대신 기꺼이 엄마한테 두드려 맞고, 할머니와 아버지와 엄마 사이에 벌어지는 가정학대와 멸시와 조롱과 폭력과 기타등등을 가슴 속에 푹 절여두기만 하고, 그래서 난독증은 날로 심해져 가고, 글씨도 못 읽는 놈이란 딱지를 달고 다니며, 그러나 동생과 동네 삼촌과 담임 선생님과 몇몇 친구들과 쌓아가는 우정, 사랑, 믿음, 동감 비슷한 커다란 우산.

 날로 진지하고 심각하고 중대하게 확장되어 가는 엄마에 대한 할머니의 증오와 학대와 막말은 나, 한동구를 더욱 압박하고 숨도 못쉬게 하지만 나는 주변에서 나에게 많은 아름다운 영향을 끼치고, 끼졌던 사람들을 통해 할머니, 할머니가 바라는 진정한 것은 무엇일까를 탐색하는 결실을 맺는 과정. 그게 나의 아름다운 정원,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으로 짐작되는 그곳에서 벗어나는 일이며 이제 소년기의 나를 괴롭혀왔던 무수한 질곡을 극복하는 일, 그래서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가슴 따뜻한 성장소설로 규정짓게 만드는 일이다.

 잘 쓴 성장소설이 제일 지랄맞은 것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곳곳에서 눈물을 짜게 만드는 거. 에잇! 하지만 당신도 예외는 아닐 것이니 진짜 조심해서 읽으시라.

 근데 나, 한동구의 아름다운 정원은 무엇일까? 종로구 부암동으로 짐작되는 인왕산 허리자락 부근을 통칭하는 걸까? 유독 달동네 한켠에 커다랗게 자리잡은 3층 저택의 아름다운 친 자연적 정원일까, 아니면 조심스레 몰래 3층집의 정원에 들어가 가슴이 붉은 곤줄박이(책 속에선 "곤줄백이")에게 빵조각을 건낼 때면 커다란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고 있던 사모님의 그윽한 눈동자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한동구의 소년시절을 겪게 했던 내 귀엽고 똑똑했고 작은 누이동생 한영주와, 크기가 산 만한 고시준비생 동네 삼촌과 천사보다 몇 백배 착하고 아름다운 3학년 시절의 담임 박은영 선생님들이 나를 위해 만들어준 모든 미덕을 다 합친 따뜻함, 다 합쳐 소년시절이 아름다운 정원이었을까.

 결론은, 당신 의견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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