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슨 크루소 펭귄클래식 36
다니엘 디포 지음, 남명성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소년시절에 축역본으로 읽었던 옛날 이야기, 다시 읽어보는 프로젝트(햐, 외래어 사용할 때의 이 기묘한 울림. 이래서 외래어 쓰는 거다) 일환으로 과감하게 중고책 사서 읽었다. 책 나온 시점이 1719년. 글쎄, 300년 전으로 돌아가 이 책을 읽는다면 정말 기막힌 독서를 경험할 수 있겠지만 이제는 뭐 그냥.

 책 표지, 기둥에 붙어있는 현판을 보시면 이렇게 써있다.

 "I came on these shores on the 8th day of June, in the year 1659"

 이 장면이 두가지 측면에서 구라다. 첫째, 크루소가 무인도에 떨어진 날짜는 6월 8일이 아니라 1659년 9월 30일, 둘째로 이 푯말을 설치해둔 장소가 그림과 같은 저택이 아니고 해변가다. 이건 작가와 삽화가 혹은 표지 제작자 간의 일이니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나중에 크루소가 프라이데이와 함께 섬을 떠나면서 날짜를 계산할 때 1년 며칠의 차이가 나는 건 어쩔겨? 300년간 세계명작으로 알려져 있던 작품이며 후배 작가들이 숱하게 인용한 위대한 유산에서도 이런 에러가 발생한다. 이건, 그냥 웃고 넘어가도 될 듯. 누가 혹시 알아? 300년 전엔 작가들이 재미있으라고 소설 속에 고의로 트랩을 설치해놓았을지. 그냥 그렇게 넘어가자.

 내용? 다들 아시잖여?

 정말?

 난 아니던데?

 이거, 흠. 디포가 자기 방에 단풍나무로 만든 책상에 앉아 오직 머리 속에서 기어나오는 상상력에 의해 쓴 책. 어려서 축약본 읽었을 땐 전혀 몰랐다. 만일 무인도에서 정말 크루소처럼 살 수 있었다면, 크루소는 분명 반신반인 또는 삼배체 염색체 인간이었을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형제란 얘기. 물론 크루소 문명의 이기, 특히 총과 화약, 총알을 비롯한 문명의 잔재와 과학적 사고방식이란 최고의 도구를 갖고 무인도에 떨어졌으나 무려 삼십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혼자 살면서도 모국어인 영어를 비롯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라틴어의 약간을 몽땅 다 기억하고 있는 것은 물론, 점차 섬에서 그야말로 신의 지위에 앉게 된다.

 근데 이건 그냥 로빈슨 크루소의 행적에 관한 거고, 내가 이 책을 지독하게 재미없게 읽었던 이유는, 놀라셨지, 재미없다고 그것도 지독하게 재미없다고 얘기하는 거. 근데 그게 사실인 것이 책의 거의 절반 이상이 기독교의 신에 대한 고마움, 은혜가 넘실넘실 흐르는 증거 대기에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잘 쓰는 말이, 꽃노래도 삼세번. 하이고, 차라리 광신적 개신교 교회에 들러 바로 옆자리에서 아저씨 아줌마들이 넋 놓고 하는 방언을 듣지 말야. 초간이 1719년이었던 걸 충분히 감안을 했어야 하는데 준비 없이 재미있겠거니 그냥 책을 읽기 시작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이딴 거 읽느라 이틀 반이나 썼다. 물론 만날 쇠주 마시느라 밤엔 책을 읽지 않기는 했다.

 기독교인이 아니면 그리 크게 재미있을 거 같지 않지만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선택은 전적으로 당신 마음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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