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셀레스티나 을유세계문학전집 31
페르난도 데 로하스 지음, 안영옥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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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예전부터 읽어볼까 망설였던 건데, 책 표지 그림이 하도 엽기라 도무지 손이 가지 않았었다. 16, 17세기 스페인 마녀, 책에 나온대로 말하자면 턱수염까지 거무스름하게 돋았으니 <맥베스>에서 '장차 나린 왕위에 오르실 거예욥', 마녀하고 거의 비슷하게 생겼다. 그리하여 보자마자 화형식 장면이 떠오르는 바람에 차일피일.

 유럽 각국의 진짜 오래된 고전들, 예컨데 프랑스에 <가르강튀아 / 팡타그뤼엘>, 영국의 <신사 트리스트럼 섄디의 인생과 생각 이야기>, 이탈리아의 <데카메론> 등은 작품 자체를 극동 아시아 사람이 감상을 해서 감명깊다, 이딴 말을 하기는 쉽지 않지만 유럽 문학을 읽으면서 숱하게 인용하는지라 후대의 작품들을 위한 기초체력을 기르는 셈치고 읽어두면 아주 좋다. 같은 의미로 <라 셀레스티나>도 언젠가 얽어야 할 목록에 포함시켰었는데 이제야 끝냈다(물론 로렌스 스턴의 작품은 지금 읽어도 시공간을 초월하여 충분히 멋있다).

 칼리스토, 라고 하는 22세던가 24세던가 하는 스페인 귀족 청년이 사냥길에 나섰다가 멜리베아라는 처녀를 보고 한눈에 홀딱 반해 겪는 우여곡절. 칼리스토도 부자에다가 귀족계급이긴 하지만 멜리베아는 칼리스토보다도 훨씬 더 부유하며 훨씬 더 높은 계급의 귀족 집안에 하나밖에 없는 따님이어서 도무지 언감생심, 이었다가 혼자서 끙끙 상사병 앓다가 죽느니 그나마 '짹' 소리라도 내보고 죽느라고 동네에서 가장 머리가 좋고 온갖 곡절을 다 겪으며 모진 세월을 살아온 가난한 늙은 여인 셀레스티나에게 중매를 부탁하며 드디어 사건은 벌어지는 거디다.

 원 작품이 15세기에 나온 거다. 당시 일반 백성, 그중에서도 여자 혼자 살면서 이웃을 비롯한 다른 인간들한테 만만하게 보이면 행여 잘, 평화롭게 먹고 살 수 있을 거 같은가? 시대는 페스트와 콜레라, 겨울엔 티푸스까지 온갖 죽을 전염병이 창궐하고, 전염병보단 인명을 덜 살상했지만 못지않게 백성들을 간난과 고통 속에 빠뜨린 쉼없는 전쟁의 와중이었음에야. 하긴 전염병과 전쟁이 없던 20세기 후반의 대한민국에서도 여자 혼자 살려면 별 거지같은 새끼들이 다 꼬여 어떻게 해서든지 가진 거 홀딱 다 뺐어먹고 튈 생각으로 눈알이 벌겋게 물든 인종들 숱하게 꼬이던 것도 숱하게 보긴 했다. 역사이래 홀어멈, 홀처녀 살기 끔찍하기가 그래도 좀 덜 하기까지 예수 죽은 후 2,000년이 필요했던 거다.

 내 보기에도 이 책의 진짜 주인공 셀레스티나라는 노파, 이웃들에게 간교하고, 독사같고, 저주를 퍼붓고, 밤마다 악마와 교접하고, 고양이 뿔과 암소의 고환을 끓여 사랑의 묘약을 만드는 마녀라고 지목을 당하지만, 사실은 당초(唐椒: 호고추. '호'는 중국을 대표하는 외국산을 얘기하는 것으로, 외국에서 건너온 존나 매운 고추. 울나라에서 청양고추를 먹기 전에 신도가 제일 셌던 고추를 일컫는다)보다 매운 시절을 홀어멈으로 악착같이 살아내느라 이웃들과 좀 불편한 관계를 맺어 어쩔 수 없는 평가를 받고 있던 거 같은데, 뭐 어떤 상황인지 이해 가시지? 근데 작가 페르난도 데 로하스, 얘도 당시에 글자를 자유자재로 읽고 쓴다는 거 하나만 가지고도 짐작할 수 있다시피 먹고 살 만한 인간이어서 그랬는지 하여간 무지무지한 악당으로 묘사해놨다. 이해해주자. 책은 15세기 내용을 16세기에 쓴 거니까. 그리하여 책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백성들, 칼리스토의 하인들까지 몽땅 포함해 일반 백성들은 교활하고, 언제나 상전 몰래 상전의 재물을 훔쳐낼 생각에만 골몰하는 추잡한 인간으로 묘사한다.

 아, 얘기가 또 경상남도 삼천포 시로 빠졌다.

 하여간에 얼굴에 깊은 상처가 있는 늙은 셀레스티나가 칼리스토와 멜리베아 사이를 시계불알처럼 왔다리갔다리 하면서 칼리스토에 대한 막강한 저항 또는 분개해 있던 멜리베아의 마음을 녹여 사랑에 불을 붙이는 거까진 내가 얘기할 수 있어도, 이렇게 멋지게 사랑을 이어준 셀레스티나가 왜, 어찌하여 죽음에 이르는지, 칼리스토와 멜리베아가 노파의 죽음과 하인들의 불행한 운명에 조금도(물론 '조금'이야 신경 썼겠지만) 개의치 아니하고 사랑에 몰두하는지,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됐는지는, 이 독후감을 읽으시는 분들이 아무리 궁금해도 가르쳐드릴 수 없다. 왜냐하면 진짜로 이 책을 읽어보실 1/100 명을 위하여.

 다만 한 가지. 나도 16세기에 나온 스페인 최고最古의 문학작품이 그렇게 끝을 맺을지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거. 뻔한 결말이겠지, 쉽게 생각했다면 나처럼 한 방 얻어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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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7-06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궁금하네요. 제가 그 1/100 명이 되어 보겠습니다. ㅋㅋㅋ

Falstaff 2017-07-06 10:44   좋아요 0 | URL
아후....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습니닷!
이렇게 오래된 책의 경우엔 이 말을 뺄 수가 없어요. ㅠㅠ
오랜 옛 이야기 책인것을 감안해 독특한 결말이지 지금 시각으론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려야 후환이 없지않나 싶네요. 긁적긁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