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의 책
김희선 지음 / 현대문학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희선, 또 사고쳤다.

 전작 <라면의 황제>를 통해 엽기발랄한 아이디어를 전혀 숨기지 않고 대한민국 강원도 W시에 홀연히 등장한 우주선과 외계인을 선보이더니, 이젠 여기서 두어 계단 업그레이드 해 또다시 세계 전 지역에서 수없이 많은 우주선이 쏟아져내려와, 왜 그거 있잖아, 어떻게 보면 중절모 같고, 어떻게 보면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같이 생긴 오소독스한 모습의 우주선, 바로 그 모습의 무수하게 많은 우주선들이 전작과 같이 하늘에 동동 떠 있다가 거기서, 개봉박두, 숱한 외계인이 하늘에서 강림을 하시는데, 바로 2015년 12월 21일, 그날로부터 한 달 전 대한민국의 모처에서 칭기즈 아이트마토프의 <백년보다 긴 하루>를 읽고 내가 쓴 독후감에서 이렇게 의문을 제시했는데 "왜 외계생명체까지 전부 척추동물이어야 하는 것이지? 무척추동물로 하면 더 획기적이지 않을까? IQ 150의 두뇌를 보유한, 2미터 크기로 진화한 말벌을 생각해봐", 비록 말벌까지는 아니었지만 김희선은 전작에서의 로스웰 사건과 거의 비슷한 외계인의 모습 대신 거대 파충류, 즉 공룡의 외모를 한 외계인을 등장시켰으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 숱한 개체들이 널려있는 공룡 모습의 외계인들은 서로 텔레파시를 통해 의견교환을 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수많은 공룡들이 사실은 한 개체의 수없이 많은 분산, 즉 외계인이라기보다 하늘에서 강림한 신, 그렇다, 모든 종교에서 말해왔던 바로 그 신, 한문으로 쓰면 神, 영어로 God, 독일어로 Gott, 프랑스어로 Dieu, 이태리어로 Dio 라고 주장해마지 않는다. 사실은 하나지만 눈에 보이는 건 세계 방방곡곡에 산재해 있어 분산된 각 개체의 신이 세상을 모눈종이처럼 쪼개서 한 모눈을 관리하고 있다는 취지, 그러나 그게 면적 단위인지 인구밀도 단위인지는 밝히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독자가 생각하기로 암만해도 인구밀도 기준으로 봐야 마땅하지 않겠느냐 하는 건데, 왜 그러냐하면, 책의 주인공 스티브, 미국에 있다고 김희선이 주장해마지 않는 트루데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 스티브의 아파트 혹은 연립주택 아니면 다세대주택 창문을 은근슬쩍 넘어보는 티라노 닮은 신(의 분산된 개체)의 갯수가 두 마리, 아참 신한테 '마리'라고 쓰면 불경하겠구나, 그럼 두 분, 아무리 그래도 티라노 닮은 도마뱀 종류 파충류 강綱의 생명종에게 또 '분'이라 쓰기도 거시기해서 참 곤란하지만 하여간 신이 둘 등장하기 때문이다. 신이 둘 등장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보기에 둘이지 사실은 하나인 둘을 김희선은 각기 보리스와 아르까지로 칭하기로 결정해 나로하여금 완전 뒤집어지게 만들었다. 참 재미난 소설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을 함께 쓴 스트루가쯔키 형제 아닌가 말이지. 뭐 그건 그거고, 이제 외계인을 신의 자리까지 격상시켜놓은 김희선. 혹시 작가 자신이 외계인 아냐?

 위에서 얘기한 주인공 스티브. 얘가 2016년 현재 살고 있는 곳이 미국의 트루데. 트루데라는 지명을 작가는 이탈로 칼비노의 책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초원을 유목민처럼 유동하며 세상은 끝도 없는 트루데란 보이지 않는 도시로 이루어져 있다는 의미로 사용한 걸 차용해왔다. 그러니 트루데란 미국의 도시도 그게 정말로 있는 건지 아닌지, 심각한 정신적 외상에 의하여 탄생시킨 거대한 지리적 서사에 불과한 것인지 끝내 일러주지 않는다. 책을 읽어보면 '트루데'란 미국의 도시, 돼지와 닭의 도살업으로 시민 전체가 먹고 산다고 해도 별로 과장이 아닌 삶으로서 피의 도시, 이게 거 참, 정말 미국 도시 맞아? 읽다보면 서울시 동대문구 마장동 도살장 부근이나 인천시 부평구 십정동 도살장 인근인 것 같은 기시감이 팍팍 든다. 지금은 모르겠고 20세기의 마장동이나 십정동에 가면 선입견인지 아니면 사실인지 하여간 피비린내 비슷한 자극이 후각 가득 차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당시 25도 짜리 진로소주 병을 비우고나면, "아줌마 두꺼비 알 밴 걸로 바꿔주세요" 하면서 "등골 한 접시 추가고요, 간하고 천엽은 서비스로 좀 더 주세요"하는 왁자한 소리의 주문이 언제나 귀에 익었다. 그땐 일년 내내 날고기 실컷 먹고 따뜻한 봄날이 오면 배 속에 뭔가가 있거나 없거나, 칼국수 마디 같이 생긴 뭔가가 바지를 타고 떨어지거나 아니거나 구충제 한 웅큼을 꿀꺽 삼키면 그걸로 끝이었다. 스티브의 아버지가 1980년대에 미국 트루데로 이민가서 곧바로 얻은 직업이 살아 있는 돼지의 경동맥을 따는 일이었고, 똑같은 시절의 마장동이나 십정동에선 돼지를 도살하기 위해 끄트머리가 뾰족한 도살용 도끼로 돼지의 정수리를 단 한 방에 쪼개버렸다. 기억하시나? 당시 재래시장 가면 돼지 대가리 삶은 것들을 죽 늘어놨었는데 하나같이 정수리에 구멍이 뽕, 나있던 거. 난 책을 읽으면서 미국 도시 트루데에 관한 일화에 상당히 관심을 쏟았는 바, 삶을 위한 피의 도시와 스티브가 경험한 불행한 개인사가 서로 긴밀하게 얽혀있기 때문이고, 이 소설이 독자에게 중의적 해석의 기회를 주기 위해선 작가는 트루데와 도시 속의 삶에 더 치밀한 묘사를 해야 하지 않았나 싶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지 않고 이 독후감을 읽는 분은 지금 내가 뭔 얘기를 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이렇게만 말하자. 작가는, 그가 매체에 인터뷰한 내용을 빌리자면, 독자에게 다양한 해석, 다시 말해 결론에 관해 독자에게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는 열린 서사구조"를 주고 싶었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는데 그렇게 만들기 위해선 독자로 하여금 끝까지 미궁에 빠져있게 만들어야 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서다. 내가 읽기로는 책의 후반부에 가서 오히려 그동안 헤맸던 미궁에서 빠져나오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작가가 만일 이 독후감을 읽는다면 미궁에 빠져 있던 독자가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던 것일까,를 숙고해봄직 하지 않겠나). 소설가는 거짓말장이다. 그건 당연한 거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란 새롭고 어려운 지평을 선사하기 위해선 또 대단한 사기꾼이 되어야 한다. 끝까지 독자를 속일 수 있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있을까. 앞으로 김희선이 심사숙고 해봐야 할 동네 아닌가싶다.

 비록 말은 이렇게 했음에도, <무한의 책>은 올해와 내년 상반기에 있을 대한민국의 문학상을 기대해도 좋을 수작이다. 정말 상을 받을지 아닌지는 자신하지 못하겠다. 그건 우리나라의 문학상을 보면 말은 번지르르 잘 하지만 이 책처럼 파격, 혹은 변종 또는 엽기발랄한 작품은 그냥 칭찬만 할 뿐, 진짜 상을 주는 경우를 내 보질 못해서다. 등장과 더불어 문학인생의 전성기를 맞은 거처럼 보이는 김희선. 아직은 그의 전성기가 아님을, 아직은 더 보여줄 것이 많이 있다는 걸 증명해주기 바란다.

 





* 여기서 끝내려고 했으나 도무지 입이 근질거려서.

 왜 미국의 트루데, 그곳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대한민국의 어느 도시, 특정하지 않는 일반 도시를 보는 것 같을까. <무한의 책>은 오직 대한민국 국내 판매용으로 쓴 것인가? 책을 외국어로 번역한다면 트루데를 읽으면서 이해할 수 있는 아메리카, 유럽 사람들이 몇이나 있겠는지.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대한민국의 모든 소설가는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