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노래 - 2013년 제4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이승우를 읽었다. 30년 전, 우리는 이승우를 '새끼 이청준'이라고 불렀다. 장흥 사람 이청준과 동향이고 같은 이씨 성에 쓰는 것도 이청준과 아주 비슷했다. 스스로도 글공부 하던 시절에 이청준을 대단히 많이 공부했다고 자복했다. 자복? 그렇다. 자복自服. 저지른 죄를 자백하고 복종함.

 이청준의 성과.  전쟁 중 한밤에 들이닥쳐 손전등 빛을 식구들 눈에 비추며 단 한 번의 대답으로 생명줄이 왔다갔다 하던 질문, 이편인지 저편인지 대답하라는, 소위 전짓불의 공포, ② 서편제나 매잡이 같은 남도 지역에 전래해오는 민간 전통 문화사③ 장흥의 대표적인 산 천관산을 무대로 유사종교에 관한 종교철학적 이야기. ④ <당신들의 천국> <낮은데로 임하소서> <키작은 자유인> 등 장편. 내가 읽은 그의 작품인데, 이승우는 여기서 ③의 경우를 많이 차용해왔다. 단, 이청준이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여 '천관산'이라 했으나 이승우는 '관'자를 빼고 '천산'이라 했다. 그게 장흥지역에서 일반적으로 '천산'이라고 하는지 아니면 작가가 임의대로 그렇게 불렀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천(관)산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유사종교, 비화밀교, 이단 기독교 등이 이청준과 이승우의 최대공약수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하여 젊은 시절의 우리는 이승우를 걍 '새끼 이청준'이라고 불러버렸던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읽은 이승우. 그중에서도 2013년에 동인문학상을 받았다는 <지상의 노래>. 와우, 아직도 작가는 전라도 장흥,으로 짐작되는 '천산' 언저리에서 노닐고 있다. 참 오래 우려먹는다. 더할 수 없이 솔직하게 말하지만, 이승우의 찬란했던 젊은 시절을 기억하는 나는,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는 '늙은 이승우'에게 실망했다. 잽싸게 책꽂이를 점검해보니 <미궁에 대한 추측> <구평목 씨의 바퀴벌레> <에리직톤의 초상>, 이렇게 세 권이 보인다. 책꽂이에 책을 두 줄로 겹쳐 꽂는 관계로 저 속에 뭐가 더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 그럼 30년만에 읽는 이승우가 아니라 20년 만에 읽는 이승우라는 것이 맞겠다.

 20년 만이거나 30년 만이거나 그딴 건 중요하지 않고, 이제 새로이 책장을 넘겨 <지상의 노래>를 읽은 소감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느느니 말장난. 이제 이이도 나이가 제법 들어 낼 모레 환갑. 글 상태에 진전이 없으면 이젠 슬슬 문학적으로 은퇴를 생각해볼 때가 됐을지도. A라서 B고 B라서 A다, 라는 식의 말장난. 이런 묘사는 나오지 않지만 비슷하게 흉내를 내보면, "밥을 많이 먹어서 몸이 커졌고, 몸이 커서 밥을 많이 먹었다"라는 거. 꽃노래도 삼세번인데 이런 식의 글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수시로 등장한다. 한 세번 쯤 이런 꽃노래를 읽으니까, 이거 그때 읽은 이승우 맞아? 라는 불평이 솟더라.

 시대적 배경도 박정희 쿠데타 시절부터 80년대 신군부 쿠데타까지 몽땅 아우르는데, 아우르느라고 참 고생 많았다. 장편소설을 읽을 때, 내가 유별나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간 신경쓰이는 게 연대. 다음 문장을 보자.

 37쪽에, "라면 생산이 시작된 것은 10년이 조금 넘었을 뿐이었다. 한 식품회사 사장이 일본에서 기계 두 대를 들여와 라면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963년이지만...운운"

 그럼 현 시점은 아무리 빨리 잡아도 1973년. 주인공 소년은 15세다(어! 작가 이승우와 같은 나이다). 소년이 15세 때 사고를 심하게 치고 천산 꼭대기 위의 수도원(나중에 '헤브론 성'으로 칭한다)으로 들어가 3년을 짱박혀 있다가 강제 하산 조치를 당한다. 그럼 1976년이 독자가 계산할 수 있는 가장 이른 시기. 18세. 딱 이 시점에 천산 수도원 '헤브론 성'의 유일한 출입구 앞에 군인 초소를 만든다. 여기까지 37쪽을 배경으로 한 (내가 만든) 연대기다.

 그러다가 202쪽에 보면 이렇다.

 (천산 수도원 헤브론 성 지하에 벽서가 씌어진 것은) "수도원 공동체 형제들에 의해서 비교적 이른 시기, 적어도 초소가 만들어진 1972년 이전에 만들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 하나 문제점 가지고 책 전체를 왈가왈부하는 건 좀 야박한 일이다. 근데 왜 이랬을까? 왜 대한민국에 라면공장이 생긴 연도를 굳이 넣어가지고 나로부터 이런 쪽팔림을 당할까?

 격변하는 한국 현대사를 책에 담고싶어 하는 건 이해하며, 저 남쪽 끄트머리 높은 산 꼭대기에 있는 수도원을 정치적 목적으로 하고자 하는 권력의 폭행을 정말 그럴 듯하게 만들었지만 전체적으로 과하게 종교적이 됐다. 유사 기독교라고 봐야할 것인 사이비 종교집단의 구도의식. 이 집단은 철저하게 원시 기독교, 카타콤을 모델로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신약보다는 구약에 더 의존하는 것이겠지. 아, 잠깐! 난 개신교, 천주교. 통틀어 기독교에 관해선 완전 무지하다. 그래서 말인데, 이건 종교와 독재정치와 개인사를 합쳐만든 잡탕밥. 이승우라면 같은 내용으로 더 심사숙고할 만한 소설을 쓸 법했다. 암만해도 필력이 좀 떨어진 듯.

 저 위쪽에 이청준의 장편소설 <키 작은 자유인>을 말했다. 이제 그 의도를 밝히노니, 난 <키 작은...>을 읽고 이청준 선생이 은퇴할 때가 됐다고 여겨서 이후 그의 작품은 읽지 않았다. 이제 세월이 흘러 새끼 이청준으로 불렸던 이승우와도 이별을 선택해야할 시기인 것 같아, 한 시절이 이렇게 가는구나, 감회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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