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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세번째 읽는 줄리언 반스. 문제작 <플로베르의 앵무새> <10 1/2 장으로 쓴 세계역사>를 진짜 흥미깊게 읽고 이이가 쓴 다른 책 검색해서 찾은 책. 앞의 두 종과 완전히 성격을 달리해 이번엔 스릴러 소설을 읽는 듯한, 복잡하게 꼬인 개인사를 엮어놨다. 나 역시 박제된 앵무새를 찾거나, 여권과 비자 없이 무단으로 노아의 방주에 승선한 나무좀벌레, 비슷한, 기존의 뭔가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기대했다가 재미있게도 40여년 만에 만난 옛 애인과의 재회를 다루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줄리언 반스가. <플로베르...> <10 1/2장...>의 작가가 말이다. 이래서 소설가의 변신은 무죄.
근데 참 독후감 쓰기 힘든 책이다. 대개 이런 책은 마지막 결론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썼다는 내 의심을 받는다. 이 책도 포함해서. 그러니 (20세기말, 21세기 초엽의) 막강한 무공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작가가 마음먹고 마지막 장면을 꼬불쳐두고 소설의 앞부분에서 독자들이 좀 엉뚱한 방향으로 생각하게 하기 위해 현란한 장면들을 배치해놨으니, 나중에 결론을 발견할 때의 미묘한 '아, 속았다!' 하는 느낌, 그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랴.
1960년대 말의 영국. 당시에 고교와 대학을 다녔던 젊은이들. 그러나 이들은 60년대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했던 자유와 평화, 그리고 프리섹스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채 젊음을, 작은 의미로, 낭비했다. 화자 '나' 토니 웹스터가 베로니카란 귀여운 이름의 학생과 연애를 하고, 베로니카 역시 그가 좋은 듯 멀지않은 시골의 저택에 나를 초대하여 거대한 몸집의 아버지를 비롯한 식구들과 인사도 시키고(마초같은 아빠, 딸을 신뢰하는 것 같지 않는 엄마, 잘난 척 오지게 하는 오빠), 별짓을 다 하지만, 천생 암컷이라 줄듯 말듯 사람의 애간장을 태우다가, 시간이 좀 흐른 뒤 둘이 이별을 확정한 다음에야 딱 한 번 관계를 허용하는데, 어 이거봐라? 완전 프로였던 거다. 그때부터 세월은 흘러흘러 어느덧 나 토니 웹스터한테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죽었으며 유산으로 500 파운드와 일기를 남긴다는 편지를 받으면서 재미난 책 <예감은....>의 본격적인 전개부를 시작한다.
이 책이 한 시절 무지 유명했던 모양이다. 독자 서평이 무려 200개에 육박한다. 그정도로 재미난 책이니 한 번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 미리 말씀드리노니, 걸작, 명작의 반열에 오를 책은 아니다. 아울러 반스의 대표작으로 언급되지도 않을 거 같다. 하지만 소설책의 미덕, 재미에 관해선 탁월하다. 처음부터 신경을 집중해서, 작가가 어떤 결말을 준비하고 있을지 행간의 문장 하나하나를 읽고 또 읽고(지가 아무리 그래봤자 복선 없는 추리소설 봤어? 그지?), 따져보고, 어떤 실마리가 있는지 눈알이 빠지게 각오하며 집중에 집중을 하다가, 결국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읽고 즐거운 허탈에 빠지는 재미도 솔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