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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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세의 노작가가 자신의 마지막 소설임을 암시하며 쓴 장편소설.

 난 이 사람의 작품을 별로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출판사 책 소개에 의하면 아버지를 주제 또는 소재로 한 소설이 별로 없다고(극히 드물다고) 한다. <익사>는, 물론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읽기로는 세 가지 정도의 굵은 주제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다. 작가의 분신이랄 수 있는 조코 코기토가 작중 작가이자 화자이며 주인공이어서 나이도 70대 중반으로 이젠 더 소설을 쓰기는 어려울 것이어서 마지막 작품을 구상한다. 읽을수록 오에 겐자부로 본인 이야기같지만 명심해야할지니 이건 분명히 소설이고 소설은 구라치기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

 세월이 흘러흘러 95세를 일기로 어머니가 세상을 뜬지 벌써 10년차(일본 여성들 오래 사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 어머니가 돌아가기 전에 '나 죽은 다음 10년이 지나면 붉은 가죽 트렁크를 조코에게 물려주라'는 유언을 해, 조코의 친애하는 누이동생이자 현명하기 그지없는, 전형적인 일본의 잘 배운 집안 여인 '아사'가 전화를 해 이제 거의 10년이 됐으니 그만 '붉은 가죽 트렁크'를 넘겨받으라고 하면서, 오에 겐자부로의 마지막 소설(예정작)은 시작한다.

 여기에 평소부터 조코의 작품을 동경하여 그의 모든 작품을 연극으로 만드는 데 자신의 연극인생을 몽땅 바치겠다는 신념의 인물 마사오가 있어 그가 이끄는 연극집단 '혈거인' 그룹. 여름에 시골집(이라 하지만 강가에 위치하고 매우 커서 자그마한 규모의 연극도 상영할 수준의 개인 집)에 얼마간 묵으며 문제의 '붉은 가죽 트렁크'를 열어 그 자료를 기초로 하여 마지막 소설을 쓰는 동안 조코와 함께 기거하면서 조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에 관해 상의하자고 제안한다. 조코의 흔쾌한 동의를 이끌어낸 여배우이자 기획자이자 공동 운영자이며 대단한 추진력을 지닌 우나이코.

 한 명의 주요인물을 또 소개하자면, 조코의 아들 아카리. 오에의 전작 <개인적인 체험>에서 두개골에 문제가 있어 뇌가 두개골 밖으로 흘러나온(것으로 산부인과 의사간 판정한) 상태로 태어난 조코의 아들. 태어나 며칠 동안 아이를 방치하여 그냥 짧은 생을 마감시킬까 말까를 절망적으로 고민하다가 결국 치료를 결심, 조코와 평생을 살면서 결코 지울 수 없는 죄책감과 더불어 함께 사는 고통과 자주 발생하는 짜증 등을 벌써 40년이 훌쩍 넘게 짊어지게 한 아들. 일부 자폐환자가 그렇듯 음악적 감각이 매우 발달해 모차르트의 40번 교향곡의 일부 악구가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32번에 그대로 나온다는 것마저 악보만 본 상태에서 발견하는 천재. 그러나 부모에겐 어느새 사십대에 이른 무거운 짐. 아들의 장래를 준비하지 못한 채 자신의 죽음을 눈 앞에 둔 노인의 암담함.

 차근차근 얘기하자.

 내가 알고 있는 물에 빠져 죽은 아버지. 그는 패전과 항복에 반발하여 테러를 준비하는 청년 장교 모임에 우연하게 가담하게 된 인물. 여기까지는 조코와 그의 어머니, 동네의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바. 그러나 진실을 찾는 게임이야말로 소설가들의 영원한 숙제라서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기록들이 들어있는 '붉은 가죽 트렁크'를 열어 그 속에 담긴 숱한 편지, 문서, 책 같은 자료를 좀 보여달라고 어머니에게 애원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리 매몰차고 단호하게 거부할 줄은 꿈에서도 몰랐다. 일찌기 <만엔 원년의 풋불>로 공전의 히트를 친 조코, 어머니에 대한 섭섭함이 갈라진 땅을 메우고 찢어진 하늘을 채워 결국 트렁크에 든 내용물과 관계없이 자신이 직접 보고 거기다가 꿈 속에서 숱한 세월 자신을 괴롭힌 모습을 더해 물에 빠져 죽은 아버지의 '익사소설' <손수 나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날>을 쓰게 이른다. 벌써 몇 십년 전에.

 이쯤에서 독자는 좀 헷갈림. 책 속의 등장하는 책, 즉 조코의 저작 두개를 보면 하나는 <만엔 원년의 풋불>, 하나는 <손수 나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날>. <만엔...>은 오에의 작품인 걸 다 알지만, <손수...>는 도대체 뭐야? 정말 오에의 작품 목록에 이게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없다는 쪽에 만원 걸 용의 있음.

 첫번째 문제. 조코가 알고 있는 아버지의 죽음은 무엇일까? 정말 패전과 항복에 항의하기 위하여 테러를 감행하기 위해 홍수가 나자 작은 보트로 동네를 탈출하여 거사를 꾀했을까? 아니면 거사가 정말로 일어날까봐, 진짜 일어난다면 사건에 연루되어 일신상 돌이킬 수 없는 불이익을 감당해야 하는데 처자식 건사하는 입장에서 그럴 수 없어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거사 전모가 담긴 트렁크를 갖고 탈출, 말이 탈출이지 동지들 버리고 도망한 것일까.

 두번째 문제. 조코의 책 <손수 나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날>을 연극으로 만들었다. 여기서 바흐의 칸타타를 합창하는 장면이 나온다. 독어 원어로 노래하는 거. 근데 차용한 칸타타는 세속 칸타타가 아니라 종교 칸타타였던 모양이어서 내가 흘린 눈물을 손수 닦아주시는 분은 원래 예수 그리스도인데, 그걸 천황(천황은 무슨, 천왕이라고만 해도 너무 충분하고, 걍 일왕이라고 불러도 아주 좋다)으로 바꿔 노래한다. 출연진이 리허설 비슷하게 조코 앞에서 합창을 하니 기분이 과하게 고양된 74세의 작가는 높고 우렁찬 목소리로 칸타타를 따라 부르며 넘쳐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어한다. 자, 조코가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페르소나라고 가정하면, 물론 그런 가정은 충분히 가능하고 이해할 수 있고 일면 합당하기까지 한데, 어려서 깊게 세뇌받은 오에 겐자부로의 의식이 74세가 되도 어쩔 수 없이 변하지 않았을까(특히 그의 양심적 일본인으로서의 여러 참여운동을 감안하면)? 그도 역시 근본은 파시스트? 난 아니라고 생각함. 이 장치는 소설 <익사>를 만들기 위한 과정, 즉 '정당한 허구'라고 생각한다. 역시 만원 건다.

 세번째 문제. 극단 '혈거인'의 멤버 우나이코. 대단히 실험적이고 모험적이고 위험한 연출, "죽은 개를 던져라" 방식의 연극을 시도하는 똑똑한 아가씨. 손수 눈물을 닦아주시는 천왕에 가장 의아해하는 인물. 개항과 더불어 메이지 시대에 닥친 굶주림에 항거하기 위한 여인과 어린이들의, 여인과 아이들까지 동원할 수밖에 없었던 처절한 가난과 굶주림의 봉기를 연극으로 재현하기 위해 애쓰는 캘릭터. 소녀시절에 큰집(백부네 집구석)에 얹혀 살 때 큰어머니와 함께 처음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배할 때 갑작스런 구토를 경험한 여인. 여기서 내가 '사람'이라고 쓰지 않고 '여인'이라 쓴 건, 이이가 연극으로 만들려고 하는 '메이스케 어머니'가 봉기에는 성공하지만 봉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에 극의 주인공 모자가 몰락한 무사들에 의하여 어머니는 집단 윤간을 당하고 아들은 생매장으로 죽음을 맞기 때문. 집단 혹은 국가 또는 권력이나 힘에 의하여 강간을 당하고 살인까지 저질러지는 야만과 관계있기 때문이다.

 네번째 문제. 첫번째 문제를 보다 더 크게 보면 그 안에 포함시킬 수 있을 듯. 조코의 아들 아카리. 나 어렸을 적엔 동네에 한 명 씩 꼭 바보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폐증이 있는 사람을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그냥 '바보'라고 불렀다. 지금은 별로 볼 수 없는데 그건 자폐증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밖에 나와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데 바보를 놀려먹던 아이들 가운데 나도 포함되며, 백색증 아이를 따돌렸던 집단 가운데 한 명이다. 비록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어렸다 하더라도 그런 행동을 돌이킬 때마다 지금도 여전히 마음이 좋지 않다. 대단히. 앞으로도 평생 반성하며 살 것이다.) 아카리도 비록 자신이 음악에 대단한 천재를 보이지만 사회적으로 바보임을 스스로 알고 있다. 길거리에서 누가 자신을 '바보'라고 할 때마다 키는 작지만 다부진 아버지는 한 번 빠짐없이 상대에게 분노하고 사과를 요구했으므로 사소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어왔다. 그런 아버지가 며칠 새에, 물론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가 아카리 자신한테 '바보같다' '넌 바보다'라고 두 번이나 욕을 해대다니. 난 아버지와 다시는 화해하지 않고 살겠다.

 사소한 것들 빼고 큰 문제만 네 개를 골랐다.

 이 네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 비록 내놓은 답이 정답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건 전적으로 독자가 할 일이겠지만 서로 얼키설키 엮어있는 네 가지 문제, 혹은 내가 모르게 숨겨 있는 더 많은 문제를 풀어내는 일이 책을 읽는 행위다.

 다만 한 가지, 내가 확신하는 건, 이건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가 쓴 "소설"이라는 거. 조코를 빙자한 오에의 고백이라고 느낄 수 있지만 꼭 그렇게 읽을 필요는 조금도 없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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