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짐승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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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 늙은이 참.

 이거 독후감 쓰기 참 힘들게 만드네.

 독후감이란 것이 책을 읽고 난 뒤의 "내" 느낌을 쓰는 거란 사전적 정의에 입각해 말씀드리자면, 이 책은 마지막 문장 하나를 향해 질주하는 작품이라는 거. 당연히 문제의 마지막 문장이 어떤 것이며 무슨 뜻이란 말은 하지 않겠다.

 화자이자 문학 교수인 데이비드 케페시가 지금은 은퇴한 70대지만, 60대 시절 대학에서 교수를 할 때 젊은 여학생과 즐기기 위한 방법은, 학기중에는 절대로 내색하지 않고 있다가 학기가 끝나고 채점까지 다 마친 후에 자기 집에 남녀 학생을 초대하여 쫑파티를 여는 것이었다. 그럼 여학생들 가운데 적어도 한 명은 끝까지 남아 데이비드하고 갈 데까지 간다나. 뭐 미국 얘기다. 설마 대한민국에서야 그러겠어? 그건 그렇고 필립 로스의 늙은 주인공 데이비드 케페시가 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존 쿳시가 만든 대학 교수 데이비드 루리보다 한 수 위다(존 쿳시, <추락> 참조). 미국 데이비드는 이런 방법으로 적어도 법적, 사회적 지탄을 사전에 예방하는데 비하여 남아프리카 데이비드는 신세 완전히 조져버리니까.

 아, 근데 <죽어가는 짐승>은 좀 심하게 섹스 오리엔티드 작품이다. 야동도 즐겨 보는 입장에서 그래서 더 좋긴 하지만. 야동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씀인데, 필립 로스의 성적 엽기로 말할 것 같으면 <포트노이의 불평>의 한 장면, 유대인 소년이 딱지를 떼려 하다가 자신이 사정한 액체 덩어리가 엉뚱하게도 허공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자신의 눈알에 떨어져 '아 이제 드디어 내가 장님이 되고야 마는구나'라고 했던 건 귀여운데다가 엽기발랄하기나 하지, <죽어가는...>에서는 (적게 산 거 같지는 않은데) 살아생전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고 하다못해 야동에서조차 본 적 없는 엽기 더하기 비위생, 윽, 다시 생각하는 것만 가지고도 비위가 팍 상해버릴 정도이니, 정말로 필립 로스 이 양반 변태 아냐?

 저 위 책 표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가 그린 <몸을 뒤로 젖히고 있는 누드>, 아참 한글로 쓰니까 정말 재미없다. 영어로 해서 <Reclining Nude>. 좀 크게 보실까?

 이 그림 보고 좀 헷갈렸는데, 모딜리아니 같다고 생각했지 정말로 그의 그림이라고 단정하지 못했었다. 대개 모딜리아니는 눈알 없는 얼굴에다가 전체적으로 길쭉길쭉하니 저렇게 풍만한 젖가슴과 엉덩이를 보고 어떻게 그의 그림으로 확정할 수 있었겠는가 말이지. 잘 보시라. 서 있는 것도 아니고 발랑 누워 있는데도 젖가슴이 저렇게 솟을 정도라면 틀림없이 실리콘이거나 화가의 로망을 그림으로 과장한 것일 거다. 사실 여인의 풍성한 가슴은 많은 남자의 로망. <죽어가는....>의 화자 미국 데이비드가 그러했듯 풍성한 가슴에 머리를 푹 담겨보고 싶다는 거. 당장 숨막혀 죽더라도 말이지. 우리집? 처가집이 세탁소 했다는 얘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는데 신기도 하지, 장모께서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다려놨다, 내 마누라 젖가슴.

 교수 데이비드의 쫑파티를 통해 한 학생과 관계를 맺게 되었는데 쿠바 출신 이주민으로 스스로 아직도 쿠바인으로 생각하는 관능적인 아가씨로 가슴이 꼭 저렇게 생겼다. 데이비드 케페시 교수로 말할 것 같으면 일찌기 결혼 한 번 하고 얼마 안 가 찢어진 후론 1960년대에 청춘을 보낸 자유주의자답게 평생 혼자 살며 기존의 가족관계를 부정하면서 늘상 바뀌는 여자 제자들과 인생을 즐기기만 하는 걸 최고의 가치로 알고 지내는 인종이다.

 세상 사는 게 마음대로 되나? 멕시코 만의 풍요로운 해변의 도시 아바나를 닮아 풍요로운 젖가슴과 못지않게 풍요로운 음모를 가진 콘수엘라 카스티요와 관계를 맺기 시작하자, 아니 이게 무슨 일? 콘수엘라가 과거에 섹스를 했던 다섯 명 가량의 청년들, 아니 그들과의 섹스에 대한 상상 및 공상으로 인해 고통스러워지고, 젊은이들이 콘수엘라에게 했던 모든 것을 자신도 경험하고 싶어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만다. 다 늙어서 말야.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그때 미국 데이비드의 연세가 62세. 혹은 그 정도. 근데 그렇게 강렬하게 섹스 생각이 날까? 난 벌써 여자가 여자로 보이기는 하지만 섹스의 대상으로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말씀이야. 이 고백을 읽는 많은 청춘들이 날더러 남자로서의 뭐가 어떠니 저떠니 할 것이 눈에 보이는 듯하지만, 천만의 말씀을. 세상의 아가들아, 그 생각 안 나니 세상이 얼마나 평화롭고 살기 좋고, 무엇보다, 얼마나 편한지 너희들은 모른다. 그리고 한 시간에도 몇번씩 울뚝불뚝 솟구치는 너희들의 젊은 욕정, 하나도 부럽지 않고 이제 또다시 그런 일이 생길까 무섭다.

 미국 데이비드, 나이만 많이 먹었지 섹스의 부재로 인한 노년의 평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늙은이는, 세상에서 가장 짙은 호소이자 가장 막강한 음모陰謀의 근거인 섹스로 인해 불쌍하게 오늘 밤도 하얗게 새울 것이다. 진짠지 내기할래? 조심하셔. 난 책 읽어보고 하는 얘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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