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4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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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한 파묵의 책은 나로 하여금('하여금'이 조사인지 부사인지 끝내 떠오르지 않아 결국 사전 찾아봤다. 부사란다. 그럼 떼어 써야지) 망설임 없이 고르게 만든다. 그렇다고 책방에서 '오르한 파묵'을 검색해 아득바득 찾아 읽는 수준은 아니고 이리저리 서핑하다가 눈에 띄면 아무 생각없이 장바구니에 넣는다는 말씀. 지난 1월 책 살 때 세 편의 파묵을 구입했던 것. 그 가운데 마지막 책이 오늘 독후감 쓰는 <새로운 인생>. 역시 이난아의 번역. 이 정도의 오탈자면 그냥 불평하지 않고 읽어준다. 근데 <고요한 집>에선 왜 그랬어!

 <검은 책>과 <내 이름은 빨강> 사이에 썼다는데, <검은 책>은 다음 분기에나 읽을 예정이라서 모르겠고, 하여튼 흥미로운 작품이다. 바로 뒷작품 <내 이름...>하고도 완전히 다른 감각.

 대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읽는 책은 그전과 완전히 다른 경우가 많다. 나부터도 열아홉 살 시절에 소위 "금서"란 딱지, 그게 얼마나 매력이 있었는지.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 <자주 고름 입에 물고 옥색 치마 휘날리며> 또 뭐가 있더라, 아 그새 다 잊었네, 까치, 돌베개, 한길사 등에서 찍은 책들. 거기다 며칠 전 얘기했던 <농무> <한국의 아이> <저문 강에 삽을 씻고> 같은 시집(전부 다 '창작과비평'에서 나온 거다. 당시 창비란, 백낙청이란 참!). 주관식 세대이긴 했지만 정규교육에선 전혀 생각도 못했던 글편들을 읽고는, 이전 12년의 교과과정이 관념을 얼마나 한정시켰는지 단박에 알아차리면서, 동시에 과거엔 틀림없이 모범생이었던 몇몇 동무들은 자신의 앞날을 여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실천적 운동으로 투신하게 만들었다. 물론 나중엔 피라미드 회사의 더블 다이아몬드가 돼 만날 골프만 치러 다니기도 하고, 실업자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고, 아직 국회의원 후보 공천 한 번도 못받은 인간도 되고, 대학에서 선생도 하고, 대기업 임원도 되고, 회사 다니다 하나도 명예스럽지 못한 명예퇴직도 하고, 닭도 튀기면서 나하고 별로 다른 인생을 살지 않지만 하여간 그런 동무들은 한 시절, 자신의 인생에 말 그대로 완전한 전환점을 이루었는데 대부분 첫 출발은 책 한 권으로 시작했던 거다. 비록 충격을 받았을지언정 자신의 인생까진 바꾸지 않았던 평범한 모든 나에게도 책들이 던져 주었던 충격은 가히 작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쉽게 말하여 여태까지 감고 있었다는 것도 모른 눈이 떠지는 느낌.

 <새로운 인생>에 바로 그런 한 권의 책. 여태까지 잘 먹고 살던 인생을 한 방에 걷어차고 새로운 인생을 만들게 하는 딱 한 권의 책을 읽은 이들. 그 젊은이들이 어떻게 인생을 바꾸는지를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기억하시지?)메타포, 아주 큰 메타포를 이용해 그려나가고 있다. 우연히 아름다운 여학생(문학의 유구한 헛점. 여주인공은 언제나는 아니지만 대체로 예쁘고 똑똑해야 한다는 조건을 파묵 역시 따르고 있는 거디다) '자난'을 알게 된 우리의 주인공 오스만. 1970년대와 80년대 초반까지 한국의 여대생들이 그랬듯 책 몇 권을 가슴에 끼고 다니던 자난은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빼 마시기 위해 책을 테이블에 놓게 되는데 순간 오스만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그날 오후 학교 옆의 중고책 노점상에서 같은 책을 사 읽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책 한 권을 읽은 다음 눈알에 뺑그르르 돌아버린 오스만. 그는 길고 긴 버스 여행을 떠난다. 무대가 몇년대더라? 지금 당장 기억나지는 않는데, 하여간 제대로 질서 혹은 현대화가 되지 않았던 터키 전역을 밤새고, 밤새며 또 밤새워 달린다. 이때쯤 소설은 터키판 로드 무비도 전환. 근데 아무리 옛날이라도 참 교통사고 많이 난다. 교통사고. 오스만, 참으로 신기하지, 자신은 언제나 별로 다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구조하기도 하다가, 구조하면서 이미 죽은 어떤 사내의 품 속에서 두툼한 지갑을 빼내 돈을 쓰며 또다시 로드 무비를 이어가며(물론 안 그랬다간 소설이 단박에 끝나버리기 때문에) 사고가 날 때마다 자신의 인생이 바뀌고 있다는 걸 알아채는데, 스토리는 여기까지만.

 여자 주인공 자난의 이야기? 안 하겠음.

 세상, 별 거 없다. 인류가 만든 거의 모든 탈출기는 주인공이 다시 원래 생활로 돌아오는 회귀의 순간 끝난다. 아니면 회귀 후의 회고와 에필로그로 끝나던지. 영화 <빠삐용> 보셨잖아.

 파묵의 모국이며 이 책의 무대가 되는 터키. 이슬람 국가라서 색다른 종교적 외피는 서비스로 책 전체에 깔려있는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도 혹시 이슬람 적 문제제기 아녔어? 읽어보시고 판단하는데 언제나처럼 당신이 내릴 판단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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