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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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만 저렇지 않았다면 진즉 읽었을 텐데 제목만 보고 어째 청소년용 로맨스 소설 같다는 선입견으로 여태 미뤄두다가 이제 읽었다. 읽은 소감을 짧게 얘기하자면, 제목처럼 달콤 쌉싸름하지는 않지만 참 맛있게 잘 쓴 전형적 라틴 아메리카 소설. 이제야 이리 예쁜 소설을 읽었다는 게 아쉬웠을 정도. 못 믿으시겠다고? 읽어보셔. 정말 작품이 참 예쁘다니까. 당연히 전 연령층 독서 가능, 하지만 성인독자가 읽으면 더 재미있을 그런 소설. 내가 젤 싫어하는 것이 뭔 얘기 하면서 "더 재미있을 '그런' 소설", 이따위로 애매하게 얘기하는 일. 근데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멕시코에 데 라 가르사, 라는 가문이 있었는데 이 빌어먹을 가문의 빌어먹을 전통 가운데 하나가, 참 말도 안 돼, 막내딸에겐 부모님을 봉양해야 하는 의무가 있어 부모가 죽을 때까진 결혼을 하지 못한다는 거. 이 가문에 드디어 막내딸 티타 데 라 가르사 양이 태어났는데 티타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자신이 이 가문의 막내딸로 결혼도 못하고 따라서 자손 하나 없이 외로운 일생을 보내야 한다는 걸 안다는 듯이 배냇기름으로 허연 몸뚱이를 거꾸로 들고 엉덩이를 찰싹 때릴 것도 없이 그냥 앵앵 한없이 눈물을 쏟았다. 그럴 것이 티타가 나오던 날 밤에 아버진 읍내에서 테킬라 두 병을 안주도 없이 장하게 자시고 먼 길을 걸어오다 동네 돌다리 위에서 푸짐하게 싸 놓은 개똥을 밞아 미끈덩, 다리 아래로 떨어져 흐르는 개울물에 익사를 했던가 아니면 그냥 추락사던가 하여간 숟가락 놔버렸으니, 독자는 이 사건으로 미루어 짐작하여 티타의 사주엔 애초부터 막내딸로 태어나게 되어 있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으리.

 하여간 그렇게 세상으로 내쳐진 티타. 얘네 엄마, 그것도 친엄마 엘레나 여사, 앞으론 이 여자를 편의상 마마 엘레나로 부를 것인데, 하여간 이 여잔 졸지에 죽어자빠진 남편 덕에 티타를 낳고도 그만 기가 팍 질려서 당연히 티타가 먹어야 하는 인간의 모유가 완전히 말라버려, 이후 티타는 늙은 부엌데기이지만 참으로 애정이 넘치는 요리의 고수, 나차의 손에 자란다. 친엄만지 웬순지 잘 모르겠다 싶은, 마마 엘레나 입장에서 생각해주자면 티타를 볼 때마다 저년이 내 서방 잡아먹은 년이야,하는 억하심정이 솟아나 그런 것이 분명하다 싶을 만큼, 앞으로 나 죽을 때까지 저 애가 나 뒷바라지를 다 해야 하는, 딸이라기보다 종년에 더 가까운 인종이라고 생각하는 듯 마마 엘레나는 티타의 사소한 잘못에도 예외없이 야물딱지게 귀싸대기 한 대 씩을 올려붙였는데, 그놈의 사소한 잘못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너무 '사소'하기 때문에 긁어내기로 작정을 한다면 언제든지 하나 씩은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서 티타는 날이면 날마다 귀싸대기 얻어 터져가며 길고 긴 유년시절, 소녀시절, 청소년 시절, 사춘기 시절을 다 보내야 했다. 참 이정도면 팔자도 이리 드런 팔자 별로 없을 듯.

 세상 이치라는 것이 참. 티타도 어느덧 자라 앞가슴이 봉긋해지고 엉덩이가 둥그렇게 커지면서 그만, 세상에 빌어먹을, 사랑이란 걸 하게 된다. 평생 엄마 뒷바라지하고 나아가 늙어 움직이지 못하면 똥오줌 다 받아내야 하는 가문의 빛나는 의무를 진 아가씨가 연애를 해? 이거 뭐가 잘못되도 크게 잘 못된 거다. 지금이야 막내딸한테 패악질을 서슴지 않는 마마 엘레나라고 해도 나중에 나이먹어 늙어 움직이기 힘들면 그때가서 평생 얻어맞고 산 거 차근차근 다 돌려주며 즐길 수 있지만 그건 나중 일이고 제일 중요한 건 동네 준수한 청년 페드로와 당장 결혼을 하고 싶다는 거. 잘 배운 페드로 도련님 역시 이 사건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결론을 내 심사숙고 끝에 아버지 대동하고 티타네 집을 방문해 정식으로 청혼이란 절차를 거친다.

 마마 엘레나. 참, 인간도 아니다. 하시는 말씀이, 우리집 전통에 의하여 티타는 평생 처녀로 부모 봉양의 의무를 져야 하는 일종의 가비家婢라서 결혼이라니 당치 않다. 하지만 티타 대신 맏딸 로사우라하고는 결혼할 수 있다. 로사우라 역시 미모와 좋은 예절을 갖고 있는 마춤한 규수이니 한 번 신중하게 생각해보시라. 페드로? 잠깐, 오래도 아니고 잠깐 생각하더니, 아이고 장모님 그거 참 좋은 생각이올시다. 해버리고 만다. 왜? 그게 평생 티타 옆에서 그녀를 보며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서. 근데 그게 마음대로 될 거 같아? 마음 먹은대로 되면 그게 인생이야?

 하여간 우여곡절 끝에 페드로와 로사우라의 결혼식이 벌어지고, 티타는 정성을 다해 '차벨라 웨딩 케이크'를 굽는다. 굽긴 굽는다. 그러면서 어찌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있었으리오. 부엌 바닥을 눈물에 발목이 잠길 정도로 울며 울며 또 울며 그러나 지성껏 성의를 다해 보기에도 먹음직하고 아름다운 케이크를 구워 결혼식 파티장에 내가니 하객마다 어찌 큼지막한 포크를 들고 크게 한 입 먹어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아, 기막힌 맛이여. 달콤하여 혀 위에 올려놓자마자 사르르 없어지는 부드러운 밀가루의 오비디우스 적인 변신의 맛이여. 그러나 차벨라 웨딩 케이크엔 억장이 무너진 티타의 마음과 넘쳐나는 눈물이 다 들어 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경탄할 수밖에 없는 미각을 주면서 동시에 견딜 수 없는 비탄의 맛은 하객들의 유문 괄약근에 갑자기 경색현상을 일으키게 하는 동시에 분문이 활짝 열려 파티 석상에서 위에 담은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시 식도와 구강을 통해, 먹었던 것과 정확하게 반대방향으로 뿜어내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저택의 넓은 정원엔 어디 한 구석 하객들이 분수처럼 뿜어낸 토사물을 뒤집어 쓰지 않은 곳이 없었고 수많은 하객들 모두 토사물을 뒤집어 쓴 채 서둘러 최악의 피로연에서 도망하게 만들어버렸다.

 여태까지 쓴 것이 소설의 도입부. 이제부터 진짜 이야기가 벌어지는데 난 언제나 진짜 얘기는 해주지 않겠다. 요리와 음식을 매개로 한 재미난 라틴 아메리카 소설. 그동네 특유의 환상문학적 요소도 적절하게 가미되어 있고, 특이하게 음식이름으로 된 모든 장章이 재료부터 레시피를 소개하는 시늉을 하면서도 할 얘기는 다 한다. 책은 티타의 손자가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쓴 형식으로 되어 있으니 티타가 어떻게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은 모양이지? 글쎄, 정말 그랬을까? 감질나게 약올리지 말고 시원하게 말 해보라고? 약오르면 직접 읽어보셔. 아 글쎄 재미난 책이라니까.



 * 로사우라와 페드로의 결혼식 전날 밤. 밤새 웨딩케이크 구울 준비를 하다가 시간이 잠깐 나서 마마 엘레나의 엄한 눈길을 피해 마굿간 한 구석에 쪼그려 앉아 눈물바람을 하고 있던 티타. 그녀가 노래한다.


 "이제 밤도 깊어 고요한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잠 못 이루고 깨어나서 창문을 열고 내어다 보니

  사람은 간 곳이 없고 외로이 남아 있는 저 웨딩 케익.
  그 누가 두고 갔나 나는 아네 서글픈 나의 사랑이여.
  남겨진 웨딩 케익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 흘리네." 


 이거 진짠지 거짓말인지 궁금하시지? 글쎄 직접 읽어보시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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