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의 겨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1
안토니오 무뇨쓰 몰리나 지음, 나송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에 참 재미나게 읽은 책 중에서 <폴란드 기병>이 있다. 얼마나 재미나던지 다 읽은 즉시 인터넷 책방 '알라딘'에 쳐들어가 <폴란드 기병>을 띄운 다음 작가의 이름을 클릭했더니 그가 쓴 다른 책이, 없었다. 그런줄 알고 근 일년을 보내다가 민음사에서 '안토니오 무뇨쓰 몰리나'가 쓴 <리스본의 겨울>이란 책이 있는 걸 발견했다. 흠. 중간 이름 '무뇨스'와 '무뇨쓰'가 이렇게 중요한 차이구나.

 각설하고, 책 얘기하자.

 습기가 가득하고 어두운 실내. 더블 베이스가 마치 퍼커션 처럼 둥둥 울리고 그 위를 체념한 듯한 피아노가 불협화음으로 절뚝거리며 거닐기 시작할 때 쯤해선 아직 악기를 손에 들고만 있는, 시거를 입에 문 트럼펫 주자의 목엔 주름을 따라 땀이 투명한 선으로 그어진다. 흐를듯 말듯.

 듀크 엘링턴이나 텔로니어스 멍크 같은 이들만 피아노를 하는 건 아니어서, 즉 뉴 오를레앙, 아 실례, 뉴올리언스에서 시작한 재즈는 시간이 흐르며 북상을 거듭했고, 순식간에 대서양을 건넜다. 유럽에선 자연스럽게 백인 재즈가 만들어지는데 가장 높은 곳엔 트럼펫의 성인聖人 빌리 스완이 있으며, 평생 그를 흠모하게 되는 우리의 주인공이자 피아니스트 비랄보, 또는 자코모 돌핀이 있다. 돌핀. 입에 문 담배 연기가 위로 올라 눈을 자극하고 그래서 가득 눈을 찡그린 것도 모자라 허리를 한껏 뒤로 젖혀 오직 팔과 가는 손가락만으로 무심한 듯 건반을 두르리는 남자. 잠깐 자리를 더블 베이스나 트럼펫에 물려주는 틈을 타 오리지널 버번 위스키를 크게 한 모금 마시며 늘씬한 웨이트리스의 엉덩이와 종아리를 감탄하듯 바라보는 것 같은, 그러나 사실은 강한 조명 때문에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오직 무대 앞쪽 취객들의 발목이상이 아닌 알콜중독자.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뇌쇄적인 육체와 아름다운 얼굴의 루크레시아. 물론 우리의 주인공 비랄보의 눈에 그렇다는 얘긴데, 이름만으로도 이미 한껏 능욕을 당했을 것같은 색다른 매력의 여인. 그녀의 동업자이자 동거인이며 동시에 범죄자, 심지어 살인자이기도 한 말컴. 그의 엄중한 눈길에도 불구하고 비랄보와 루크레시아는 어느새 돌이킬 수 없고, 세월마저 희석시키지 못한 정열로 서로를 사랑하게 되니 이 또한 인생이 아닌가. 여기에 말컴보다 더한 권위를 갖는 범죄자 커플이 등장하여 절도와 사기와 살인, 그로 인해 범죄자들이 얻어낸 결과물은, 범죄자 집단과 이런 류의 소설, 영화 등이 거의 언제나 그러하듯 한 사람의 손에 들어오고 나머지 악당들은 바로 그 한 사람을 찾아내 취득물의 회수와 동시에 복수를 위해 접근한다.

 얘기 돌리지 말자. 재즈의 블루, 우울하고 퇴폐적이고 알콜에 푹 전 삶의 모습과 기막히게 어울어진 범죄 이야기. 루크레시아라는 이름의 팜 파탈. 진정한 재즈의 성인 빌리 스완이 죽음의 침상까지 자신의 가장 순수한 혼을 불사르는 재즈 트리오. 내겐 범죄 이야기 보다는 재즈 연주가들의 삶에 훨씬 관심이 갔고, 오직 그거 하나만을 위해서라도 이 책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의 근간은 범죄 스릴러. 이런 쟝르의 책에 관해 여러 얘기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얻어맞을 만한 일이다. 그걸 알기 때문에 오늘은 여기서 스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