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 결탁 - 퓰리처상 수상작
존 케네디 툴 지음, 김선형 옮김 / 도마뱀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그네이셔스 라일리. 32세 미혼. 루이지애나 뉴 올리언스의 습기 많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초록색 사냥 모자를 언제나 쓰고 다니는 거구의 뚱보. 석사 학위까지 받아놓고도 홀어머니한테 얹혀사는 룸펜 프롤레타리아 인텔리겐챠. 기하학과 신학이 사라져버린 현대 사회에 대한 통렬한 증오에 가득하여 모든 것에 관해 독설을 내뿜는 스콜라 철학자이자 사회 부적응자. 스스로 짐작하건데 유문 괄약근에 문제가 있어 거대하게 먹어치운 음식들이 위장에서 발효한 가스가 시도 때도 없이 끅, 꺽, 심각한 냄새와 함께 트림으로 분출하는 메머드 취향의 폭식증 환자. 코밑 두툼한 수염엔 언제나 음식 찌꺼기와 침, 콧물이 매달려 있는 인간. 지상 최고의 미덕은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는 것. 이 사람이 <바보들의 결탁>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책의 작가는 콜럼비아 대학에서 석사를 하고, 박사과정 중에 세계대전에 참전. 와중에 <바보들의 결탁>을 쓰고 대박을 예감했으나 출판사마다 거절. 이후 루이지애나 주 뉴 올리언스 소재 어머니 집에서 숱하게 개작. 홀어머니한테 얹혀 살며 날이면 날마다 어머니와 신경전. 그러나 주로 일방적 잔소리. 어머니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존 케네디 툴의 자존감은 날마다 곤두박질. <바보들의 결탁>을 출간해주겠다는 출판사는 결코 등장하지 않음. 절망과 우울 사이에서 드디어 1969년 12월이 오고 자살을 감행하여 서른 두 해 인생에서 처음으로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성공을 거둠.

 존의 이름 미상의 어머니 툴 여사. 존이 죽고 7년 가까이 흐른 1976년. 무턱대고 루이지애나 소재 로욜라 대학의 워커 퍼시 교수 앞에 아들이 쓴 소설 <바보들의 결탁> 원고뭉치를 들고 등장. 이거 한 번 읽어보라 떼거지를 씀. 착한 퍼시 교수는 가뜩이나 바빠 죽겠는데 여사의 부탁이 하도 강고하여 부탁을 들어주기로 함. 읽어갈수록 글의 매력에 빠져들어 이 책을 출간해줄 출판사를 수배함. 드디어 책이 나오고 나오자마자 퓰리처 상을 수상. 이후 뉴욕타임스 선정 최근 25년 이내에 출간한 최고의 미국 소설 리스트에 오름.


 지독한 코메디. 외국 코메디 소설의 맹점은 그들의 웃음 코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스꽝스런 표지를 한 이 책 <바보들의 결탁>을 읽어보시기 권한다. 한 엉뚱한 뚱보가 뉴 올리언즈 온 도시를 헤집으며 사고를 치고 다니는 걸 볼 수 있다.

 내 경우에, 처음엔 아무리 책의 주인공이라고 하더라도 이리도 자신의 생각 속에만 몰두하는 사회 부적응자의 이기심 넘치는 파렴치 짓을 계속 구경할 필요가 있을까, 라고 혹평을 했다. 골통짓도 한두 번이지 자신과 이웃과 더 넓게 한 공동체에 전혀 책임감 없고, 소속감 없는 난리법석. 거기다 범상치 않은 지식과 지성을 무기로 온 세상을 향해 무참하게 퍼붓는 융단폭격. 단 한 명으로 인해 그가 사는 동네, 아주 짧은 기간 그와 함께 일을 한 모든 사람들이 당할 수밖에 없는 황당한 곤경. 아무리 코메디 소설이라고 해도 이거 너무한 거 아냐? 역시 좋다고 소문이 났더라도 외국 코미디 물은 함부로 읽는 것이 아니었어.

 그러나.

 자신이 하는 일은 하나도 빼지 않고 완전한 실패로 돌아오고, 그와 함께 엮이는 모든 시람을 극도로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한 이그네이셔스. 머나, 라는 이름의 대학 동창생 아가씨가 무위에서 그를 구출하기 위해 어머니 집 침대에서 빼내려 뉴욕에서 자동차를 1박2일 동안 잠 한 숨 안 자고 달려오고, 작가는 이 책을 쓰며 주인공, (외모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처지에 관해서는) 자신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투영한 이그네이셔스, 그의 실패를 작가는 바라보면서, 비록 그가 만들었으나 이그네이셔스의 모든 행위는 바로 이그네이셔스 스스로가 하고 있는 것임을 충분히 인식하는 작가는, 글을 쓰면서 철저한 외톨이, 거구의 뚱보이자 사회 부적응자, 더러운 신체와 의복, 시도 때도 없이 큰 소리와 지독한 냄새의 트림을 뿜어내는 괴멸해가는 지식인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해, 그래도 살아야 해,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야 해, 격려도 하고 갈망도 하고 굳센 의지도 주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자신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것, 책을 쓰면서 작가는 자신도 얼마나 더 살고 싶었을까, 얼마나 더 살고 싶었기에 이토록 절절하게 살아야 해, 그래도 살아야 해, 라고 몇번에 걸쳐 이야기를 했을까, 그 상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난 책을 읽으며 가슴의 많은 부분이 한 순간에 확 비어버리고, 이 지독한 코미디 소설을 읽으면서도 갑자기 숨이 컥 막혔으며 기어이 떨어지려고 하는 물방울 하나를 눈꺼풀 밖으로 흘리지 않기 위해 하염없이 눈을 깜박이지 않을 수 없었으며, 책을 읽은지 일주일이 지나 독후감을 쓰는 지금도 그 생각을 하니 다시 가슴이 먹먹해지고 또다시 입천장 뒤쪽부터 눈가 까지의 한 줄기 선腺이 매캐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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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5-24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석사 학위까지 받아놓고도 홀어머니한테 얹혀사는 룸펜 프롤레타리아 인텔리겐챠.‘에서 그냥 끌려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17-05-24 10:56   좋아요 0 | URL
외아들이라서 사실 엄마도 기꺼이 아들한테 주눅들어 하면서 함께 살려고 하는데, 문제는 괜찮은 영감이 하나 등장한다는 것이지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