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그리고 또 다른 <재즈 시대 이야기들>, 펭귄 클래식 펭귄클래식 11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박찬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부제가 "그리고 또 다른 <재즈 시대 이야기들>". 재즈시대, 라고 해도 쫄 거 하나 없다. 그냥 1910년대 말부터 1920년대 초반까지 아메리카, 그 중에 미 합중국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되는 거다. 이 속의 여러 작품이 아직 금주법을 발효하기 전(이렇게 쓰고 보니 좀 우습다. '금주법'을 '발효'하기 전이라니. 發效? 醱酵? 이 엄청난 '금주법의 발효'여!)과 막 시작해서 금주법이 아직 사회적으로 조금 덜 심각하게 받아들이던 시기다. 선술집에선 시큼털털한 싸구려 위스키를 팔고, 고급 호텔에선 코냑을 마실 수 있었으며, 야매로 하자면 최고급 버번과 스카치를 무한정으로 목구멍 속으로 퍼부을 수 있던 시기. 그럼! 허드슨 강이 말라봐라, 뉴욕 시내에 위스키가 떨어지나.

 비록 100년 이상이 흘러 핏제랄드의 단편들이 이젠 더이상 새롭지도 않고, 기발하지도 않고, 발칙하지도 않고, 엽기적이지도 않고,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지도 못하지만 다시 한 번 기억하시라. 이런 작품을 1910년대와 20년대 초반에 썼다는 걸. 그때 핏제럴드는 한 손에 위스키 병을 들고, 다른 한 손은 손가락 사이에 궐련 한 개비를 꼽은 채 포드 모델T의 핸들을 굳게 잡고 옆 좌석의 매혹적인 아가씨를 위해 극한속도 시속 70킬로미터로 뉴욕과 뉴잉글랜드의 간선도로에 먼지를 피우고 있었던 거다. 전쟁은 이미 끝나 극적이면서 낭만적이기까지 한 죽음의 기회를 놓쳐버린 프린스턴 졸업생들은 이미 금융계의 큰 부품이 되어 증권가를 휩쓸기도 하고, 할아버지의 유산인 거대한 농장, 거의 경기도만 한 농장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살진 송아지 고기에 입맛을 들여 피둥피둥 살이 오르기도 하고, 법과대학을 졸업한 다음 일찌감치 정치계에 투신해 유력한 상원의원의 보좌관이란 명함을 갖고 다니며 상원의원의 후임자리를 확언받아 벌써 정치적 근육과 알통을 자랑하기도 했으나, 한편으론 학창시절엔 대단한 실력을 자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실력과 재주가 실제 사회생활엔 별로 도움을 주지 않아 박봉을 감수하고 말단 공무원 창구에 머무르면서 불평과 불만으로 충일한 삶을 하루하루 꾸려가기도 했으며,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데다가 사철 발 벗은 마누라 하나 건사하지 못한 채 동창생들마다 돌아다니며 백 달러만 꿔줄래? 결코 갚을 수도 없고 갚지도 않을 돈을 빌어 목구멍의 거미줄을 걷어내는 부적응자도 당연히 있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가운데 낀 동창생은 전쟁 후 갑자기 변해버린 사회의식과 윤리와 종교를 포함한 모든 기존 문화 사이에 조금은 동요하면서 자유 혹은 자유와 비슷한 것들을 향한 그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신발을 찍찍 끌어 먼지를 일으키면서 재즈 선율을 휘파람으로 흥얼거리며 그의 슬픔을 전염시키기도 하고, 모든 계급들이 좌충우돌 하면서 화해하지 못하는 장면을 오히려 뜨끔한 유머에 섞어 그려보이기도 한다. 부유하게 사는 인간은 더욱 부유하게 살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할 수밖에 없는 1920년대 초, 좁혀지지 않는 계급적 간극. 그러나 희한하게 웃어야 하는 곤란한 지경. 이게 핏제럴드의 힘. 핏제럴드 후에 무수한 독자, 작가들이 그를 찬양하는 이유를 이 책의 처음 네 편의 단편소설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내가 홀딱 빠진 핏제럴드의 매력. 즐겁지 않은 얘기를 가볍고 우스꽝스럽고 재미나고 전혀 심각하지 않게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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