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초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209
조지 버나드 쇼 지음, 이후지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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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겨. 책 제목 쓰다가 <인간과 초임>이라고 썼다. 써놓고보니 인간이란 것이 엄마 배속에서 나올 때부터 초임을 받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요새 대한민국에서 회자되는 금수저 흙수저 논란. 난 그것도 웃긴다. 세상이 평등해? 진짜 왕후장상과 걸뱅이가 평등하다고 믿어? 영주 부석사에 올라 무량수전을 등에 지고 눈을 크게 뜨면 광활하게 펼쳐지는 산맥들의 파노라마가 가슴을 뻥 뚫어준다. 정말? 그럼. 근데 그게 하필 늦가을이라서 부석사 은행나무 숲 바닥 가득 은행알이 떨어지고 관광객들이 또 하필 은행알을 밟았다면 호연지기를 가득 담은 당신의 폐에 은행 고랑내가 잔뜩 파고들어 별로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 하필이면 그때 늦가을에 당신을 영주 부석사로 가게 만드는 힘. 권력을 행사하는 자. 누구? 바로 초인? 부석사 까지 꾸역꾸역 기어 올라갔는데 보도 저편에 뚫려있으나 교묘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샛길로 흰 BMW를 타고 땀 한 방울 없이 무량수전에 오른 늙수그레한 인간. 그가 그러더라. 왕후장상과 걸뱅이가 어떻게 평등할 수 있느냐고. 세상이 만들어진 다음부터 단 한 번도 인간은 평등해본 적이 없었다고. 재수없는 인간이고 누군지도 모르고 이젠 생긴 모습도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아 썅, 지극히 맞는 말이기도 해서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그거 자체가 인간과 인간이 처음 세상에 나올 때부터 받는 초임에 관한 거 아니겠는가.

 서론이 길었다. 이래서 마누란 내가 쓴 글은 절대로 읽지 않는다. 그리하야 엄처의 눈길을 피해 마음대로 독후감을 쓰고 서재에 올릴 수 있으니 세상에 다 나쁜 건 없는 법.

 오늘 유독 '초임'에 관해 말이 많았다. 버나드 쇼가 희곡을 간행한 것이 1903년. 초연은 1907년. 버나드 쇼가 우울하고 고집세고 한 주먹하는 아일랜드 태생에다가 제법 밥 잘 먹고 사는 집안에 태어났으나 중간에 쫄딱 망해 잉글랜드로 옮겨 고학 비슷한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인간과 초인>에선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하는 걸 참지 못하는 인간들에 관해서, 즉 초임 높은 애들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를 써놨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목에 '인간'이라고 해놓은 것이 대단히 마땅하지 않다는 말씀. 1900년대 지극한 초반에도 노동하지 않고 모든 관심이 사랑과 연애와 결혼과 여행과 예술과 철학에만 정열을 쏟을 수 있는 부류는 전체 인간들의 천분의 일도 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기서 쇼가 말하는 '인간'이란 저 옛날, 기원전 몇 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말한 '인간', 즉 '탁월한 사람'과 비슷한 부류라고 할 수 있을까. 아 고정하셔. 돈이 많아서, 노동을 하지 않고도 삶을 즐길 수 있고 탐구할 수 있다는 의미일 뿐이지 걔네들이 특별히 고결하다는 뜻은 절대, 절대, 절대, 그리고 또 절대 아니니까.

 그럼 초인은? 이게 골때린데, 제일 긴 막, 3막에서 책의 주인공 잭이 앤의 사랑과 대시(dash 이걸 우리 말로 뭐라 해야 하나?)를 피해 1900년대 초에 스페인 시에라 산맥으로 '차 타고' 도망쳤다가 산적을 만나 산에서 야영을 하다가 꿈 속에 나타나는 인물들, 돈 후안, (대리석상의)기사장, 마왕(혹은 메피스토펠레스), 그리고 돈나 아나가 한 바탕 굿거리를 펼치는 광경이 나온다. 이미 천국과 지옥으로 간 인물들이 지옥에 모여서 참 징글징글한 담론을 나누는 장면. 여기서 인간과 초인에 대한 무지막지한 설레발을 펼치는데 1907년에 초연을 한 연극에서 배우들, 대사 외우느라 고생 깨나 했겠다는 짜한 마음이 들 정도다. 다 아시다시피 버나드 쇼가 니체에 경도되어 있었다고 하지만, 평소에 니체하고 친하지 않아 난 기본적으로 초인이 뭔지, 아니면 초인이 누군지 여태까지도 모르겠다. 난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유물론자. 아직 초인을 본 적이 없어서. 아! 몇 번 봤다. 볼테르가 쓴 <미크로메가스>에서 천체를 여행하는 거대한 존재. 이탈로 칼비노의 <우주만화>에 나오는 크프우프크. 얘네들이 혹시 초인 아녀? 아님 말고. 난 솔직히 이 책의 백미라고들 하는 3막의 꿈 얘기가 도무지 반갑지 아니했고, 읽기에 편하지도 아니했으며, 내용이 무슨 뜻인지 알 도리를 찾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하마터면 읽다가 잘 뻔했다.

 책의 내용은 앤 화이트필드가 자신을 사랑하는 옥타비어스를 물리고 남편감으로 딱 찍어 놓은 존 태너를 얻느냐 마느냐 하는 간단한 얘기다. 여기서 재미난 건 평생 결혼에 관해 무지막지하게 비판적인 견해를 유지했던 버나드 쇼의 촌철살인적 멘트를 구경하는 일. '최대한 결혼을 일찍 하는 것이 여자들의 비즈니스고 최대한 결혼을 늦게까지 미루는 것이 남자들의 비즈니스'라는 등 여러가지가 나오는데 두 개만 옮겨볼까?

 산적 두목이 산에서 내려와 사업체를 하나 만든 다음 존 태너를 만나는 자리가 생겼다. 여기서 인생 선배로 존에게 한 마디 쾅.

 "인간에겐 두 가지 비극이 있소. 하나는 마음 속 욕망을 잃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것을 이루는 것이오." (296쪽)

 돈나 아나의 아버지 기사장도 젊은 시절이 있던 건 당연한 일. 이 양반이 한땐 무지하게 여자들을 유혹했던 전력이 있었단다. 그 시절에 여자들에게 퍼부었던 유혹의 말들을, 마지막 가까이 가서 난데없이 옥타비어스가 앤에게 속삭인다.

 "나도 늙어요. 앤, 여든이 되면 난 가장 아름답고 젊은 여자의 가장 숱 많은 황금빛 삼단 같은 머리털보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의 흰 머리털 하나에 더 가슴 떨릴 거예요."

 재미난 희곡이긴 하지만 위에서 얘기한 3막의 꿈 속에서 벌어지는 담론이 암만해도 부담스럽다. 하지만 니체 좋아하시는 분들은 역시 이것도 마음에 들지 않을까 싶은데 읽어보시고 싶으면 읽으시고 아니면 마시라.


 마지막으로 한 마디. 내가 별점을 두개 밖에 주지 못한 사연. 이건 지적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려 했다가 심통이 나서. 책 번역한 사람이 이후지 씨란다. 번역의 질에 관해선 왈가왈부하지 않겠다. 과문한 나도 쇼를 번역하기가 녹록지 않다는 얘길 많이 들은지라 그건 넘어가고, 책 초반 13쪽에 이런 무대 묘사가 나온다.

 "왼편엔 존 브라이트의 흉상이며, 오른 편의 다른 하나는 허버트 스펜서의 흉상이다. 두 흉상 사이에 리처드 코브던의 판화 초상이 있으며 마르티노, 헉슬리, 조지 엘리엇의 확대된 사진이 걸려 있고……"

 독자들이 위에 써있는 영국 사람이 누군지 알 도리가 없으니 당연히 각주를 달아 대강 누군지 설명을 해놓았는데, 헉슬리 설명을 한번 보시라.

 "7. Aldous Huxley(1894~1963), 20세기 영국 소설가, 비평가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 등의 작품을 썼다."

 이거 정말이야? 정말 올더스 헉슬리 얘기하는 거야? 좀 이상하지 않으신가? 책이 나온 시기가 1903년. 그럼 올더스 헉슬리의 나이가 장장 만 9세. 우리나이로 열 살. 초딩 3학년이다. 이 아이가 나중에 영국의 훌륭한 작가가 되리라 조지 버나스 쇼가 일찌감치 떡잎을 알아봤다면 쇼 스스로가 초인이다. 막 그냥 생각나는대로 번역하고 각주달고, 설마 누가 눈치 채겠어? 그지? 

 

 

 

* PS.  위에서 말한 '헉슬리'가 누군지 아시려면 허버트 조지 웰스가 쓴 <모로 박사의 섬>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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