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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 브리스트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83
테오도르 폰타네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9월
평점 :
총 36개의 장으로 되어있는 장편소설. 1장, 좀 무딘 독자들도 2장 까지 읽으면 책의 스토리를 거의 알아챌 수 있다.
에피가 이런 장송곡을 엄숙하게 부르는 동안 네 명의 숙녀는 오솔길을 올라가 매어둔 보트에 올라탄 뒤 작은 돌맹이 때문에 무거워진 신문 봉지를 천천히 연못 속으로 밀어 넣었다.
"헤르타야, 이제 너의 죄는 가라앉았어."라고 에피가 말했다.
"이걸 보니 지금 생각나는데 말이야, 옛날에 불쌍하고 불행한 부인들이 이렇게 보트에서 수장 당했대. 그 이유는 물론 부정(不貞)한 행실 때문이지." (17쪽)
전형적인 19세기 독일 소설. 틴 에이지 아가씨들이 아무 생각없이 지껄이는 복선. 이 대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 열 일곱살 프로이센 아가씨는 집을 방문한 스물 두살 연상, 엄마의 첫사랑과 약혼을 하고 얼마 후 에피 인스테텐 남작부인이 된다. 그럼 얘기 끝난 거 아냐? 더구나 나이 많은 남편이 엄격하고, 교육적이고, 하여간 쉽게 얘기해서 잔정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진짜 독일 기계 같다면 그런 남편과 같이 사는 말괄량이 출신의 정 많은 부인. 여기다가 1장에 버젓하게 쓴 복선을 더하면 얘긴 끝. 처음부터 오직 하나, 이미 정해진 결말을 향해 줄달음치는 걸 독자는 그냥 편하게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만 59세에 처음 소설을 쓴 작가 폰타네는 구질구질하게 문장을 다듬어 아름답게 만드는 따위에다가 정력을 낭비하지 않는 미덕을 발휘하여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게 만들어주지만, 반면에 중세 문학 수준의 터무니 없고 끝내 소동의 원인이나 에피 인스테텐 남작부인과의 연관성에 관한 상세한 설명 없이 난데없는 중국인 남자 귀신 에피소드를 집어넣어 독자로 하여금, 에그 깜짝이야, 실소케 하기도 한다. 귀엽지? 그리고 조금 역겹지?
이 책, 어디선가 상당히 중요한 문제적 소설이란 평을 듣고 산 건데, 문제는 '어디선가'가 영/미에서 대단히 유력한 언론매체라는 거. 심지어 이 책을 발간한 문학과지성은 <에피 브리스트>를 일컬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와 함께 19세기에 여성의 관점으로 쓰인 결혼 이야기 3부작 중 한 작품으로 거론된다."
라고 해놓았다. '여성의 관점으로 쓴 결혼 이야기'라는덴 반 만 동의한다. 만일 전적으로 동의한다면 '여성 관점의 쓴 결혼'은 반드시 불륜이어야 하며, 비극적인 죽음을 동반해야 하니까. 아, 그러면 이 책에서도 주인공 에피가 비극적인 죽음으로 끝나느냐고? 에구. 결론을 말해버렸다. 라고 해야 할 거 같으시지? 설마 내가 결론을 그리 쉽게 얘기했겠나.
하여간 그건 그렇고 이 책을 <안나...> <마담....>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는 몰상식한 짓을 문학과지성도 자기네 책 팔아먹겠다는 심사로 아무렇지 않게 해버렸는데, 우리 독자들은 버~얼써 알고 있다. 러시아와 프랑스 소설과 비교해서 독일 소설이 얼마나 재미 없는지. 그래서 문학과지성의 위와 같은 찬사가 얼마나 개소리와 유사한지. 아! 개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이 책에도 충성스런 개가 등장한다. '롤로'라고. 물론 개보다 못한 인간도 무지 많이 등장하기도 한다.
느므느므 도식적인 불륜 이야기. 나이 차 많이 나는 결혼. 근사한 주변 남자 등장. (베드 씬 하나도 안 나오는 재미없는)불륜. 결투와 죽음. 이별. 결말. 딱 그려지시지? 바로 그런 책. 꼭 이 책 사서 읽어보시라. 단, 당신이 지겨울 정도로 돈도 많고 시간도 많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