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 - 상 을유세계문학전집 85
볼레스와프 프루스 지음, 정병권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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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란드 작가가 쓴 19세기 소설. 폴란드 태생의 작가라면 번쩍 떠오르는 사람이 조지프 콘라드와 비톨트 곰브로비치. 이 사람들의 특징. 폴란드 떠서 글 썼다는 거. 콘라드는 영국으로 이민 가 아예 영어로 작품을 쓴 인간이고, 곰브로비치는 아르헨티나에서 오랜 동안 살며 그래도 폴란드 언어로 소설을 썼다. 딱 두 사람만 알고 살았는데 여기에 새로이 볼레스와프 프루스, 라는 생소한 이름을 추가한다.

 <인형>. 진짜 소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 괜히 철학적, 감상적感傷的 사유도 없고 사물에 관한 과도한 세밀화도, 인물 생김새에 관한 관상학적 주절거림도 없고 그냥 스토리가지고 밀어부치는 작품.(아 그렇다고 철학적 감상적 사유도 많고 세밀화적 묘사를 싫어한다거나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긴 절대 아니다) 두 권 1,250쪽. 꼬박 나흘이 걸렸다. 물론 그 중에 사흘은 쐬주 마시느라 밤 독서를 하지 못하긴 했지만. 진짜 소설이기 때문에 감각적인 문장이나 특별히 매력적인 서술방법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겐 권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난 이 책을 읽으면서 19세기 후반, 1870년대 폴란드의 상황을 알고 싶어서, 이 책에 묘사되어 있는 광경들이 어떠한 사회적 배경에서 벌어지는지 안다면 이 책을 더욱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서 폴란드 근대사의 대강을 검색해봤다. 주인공 보쿨스키Wokulsky, 한 대귀족 처녀를 얻기 위해, 모스크바 상인(얘 이름이 뭐더라? 잊었다. 근데 한국인 이름 비슷하다)의 도움을 받아 불가리아인지 터키인지 하여간 전쟁터로 달려가 군수물자를 공급해 떼돈을 벌어오니 무려 25만 루블.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어보신 분들은 딱 아실 것이다. 25만 루블이라는 돈이 바르샤바에선 무지막지하게 큰 돈일지 모르지만 상트 배째라부르크나 오스크바 대귀족에겐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 하여간 이 돈을 아가씨 이자벨라의 사랑을 얻기 위해 (책에 나오는 단어를 그대로 쓰자면) 개나 노예를 자임하면서 하나도 아낌없이 펑펑 써제낀다. 거액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을 가난에서 한 방에 구제해줄 수 있지만 좀 나이 많은 상인 계급의 홀아비. 어디서 보신 거 같지? 호프만슈탈의 <아라벨라>에 나오는 아라벨라와 만드리카. 정말 분위기 끝내주게 비슷하다. 완전 몰락한 이자벨라의 아빠. 어여쁜 이자벨라를, 내일 아니면 늦어도 모레엔 나무 상자에 담겨 땅 속에 들어갈 거 같은 이빨 몽땅 빠지고 발기부전 확률이 95% 이상인 호호 할아버지들, 의회 의장이나 남작에게 시집보내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이른 한없는 속물 아빠. 이자벨라로 말씀드리자면 아빠한테 가정교육 잘 받아 얼굴 반반하고 몸매 잘 빠지고, 19세기적的 혁신 사상을 가져서.... 이하 이자벨라에 관하여 짧지 않은 글을 썼다가 지금 지웠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가 저 멀리서 칙칙폭폭 달려오는 기차를 보더니....에서 독후감을 끝내는 심정으로.

 19세기 말 폴란드의 귀족. 왜 여기서 유럽 귀족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면, 책을 읽어보니 유럽귀족과 동일시하기엔 폴란드의 귀족, 특히 대귀족들은 유럽과는 너무 멀고 러시아 귀족들과 상당히 비슷하다. 기본적으로 노동과 돈을 벌기 위한 부르주아적 노력을 천시하면서 신흥 부르주아들로부터 갖은 방법으로 한 푼이라도 뜯어내려는. 동시에 한없이 그들에 비하여 '고귀한' 혈통에서 우러나오는 아우라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 천박하고 천박한 인종들. 이에 대하여 볼레스와프 프루스는 신랄한 말의 비수를 던지고 긋는다. 그리하여 근본적으로 폴란드가 현재 발전 불가능한 상황에 처한 가장 큰 이유를 한심하게 나태하면서 오직 허영에만 찬 지독한 계급주의, 영지에서 저절로 나오는 수입에 의존하여 탈봉건의 씨앗을 발뒤꿈치로 뭉개버리는 귀족들에게 전가하는데, 이쯤에서 난 폴란드의 근대사가 무지하게 궁금했던 것이다. 그래 좀 알아봤더니 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며 1863년 7월 봉기가 무참한 실패로 끝났고, 소설을 비롯한 창작물도 출간을 위해선 검열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쓸 수밖에 없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방법은 몇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주인공 보쿨스키와 이자벨라의 사랑이 어떻게 맺어지는지, 아름다운 이자벨라가 호프만슈탈의 아라벨라처럼 얼마큼 사내의 애간장을 태우면서 밀땅을 하며, 이자벨라보다 더 아름다운 연정을 불태우는 홀아비 보쿨스키가 사랑을 얻기 위해 독자의 마음 속에 얼마나 큰 아쉬움과 안타까움과 때에 따라 분노와 미움까지 일으키는지에 집중할 수도 있다.

 또한 이기심과 특권의식과 차별과 노동을 멸시하는 시각과 경제감각에 대한 극적인 무지까지 온갖 부덕이란 부덕은 다 갖추었으면서도 도덕적으로도 무지막지하게 해이한 귀족들의 파노라마를 구경하며 낄낄거릴 수도 있다.

 소설의 시공간인 1877년부터 79년까지도 봉건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폴란드 일반 사회의 안타까움을 1876년 제물포 항을 개방하면서 굴욕의 역사를 시작한 확장한 우리 근대사와 비교하여 비극적 동질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것들 말고도 이 재미있는 책을 읽는 방법은 여러가지일 것이고 당신이 <인형>을 읽으면서 나와는 또 다른 책읽는 법을 찾을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

 근데 '인형'의 뜻이 뭐냐고? 하나는 가르쳐드리지. 책의 여주인공 이자벨라를 '인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나 더? 에이 이만하면 된 거 같다. 더 이상은 안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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