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 작품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2
오스카 와일드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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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이어 두번째 읽은 와일드 책. 동화 <행복한 왕자>와 단편소설 네 편, 희곡 한 편을 담았다. 솔까? 21세기 독자들에게 <살로메> 말고는 그리 대단하지 않은 작품(아니면 와일드하고 내가 궁합이 영 맞지 않는 거다). 허, 내가 지금 너무 무모하게 얘기하는 거 아닌가 싶다. 와일드 팬이 워낙 많아 이러다 싸다구 한 방 얻어 걸리지? 참, '싸다구'란 말 나온 김에 이 생각이 난다. 우리동네 타이어 가게 간판이 '싸다구'다. 다른 타이어 가게보다 한 푼이라도 비싸면 싸다구 맞겠다는 의미로 '싸다구'란 옥호를 내걸었는데 이 양반 장사는 잘 안 되는 눈치다. 그래도 제목 잘 지었다. '비싸다구'보단 '싸다구'가 가게 이름으론 제격 아닌가.

 <도리언....> 부터 이 책에 수록한 <아서 세빌 경의 범죄> <캔터빌의 유령> <모범적인 백만장자>에 이르기까지 와일드의 전매특허, 유미주의 혹은 예술지상주의 혹은 예술을 위한 예술을 푹 감상할 수 있으나 짧거나 긴 소설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와일드의 유미주의 세계를 펼쳐내고 있는 것이 당연 <살로메>.


 이쯤에서 또다른 극작가 호프만슈탈이 대본을 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 마지막 부분을 한 번 보자. 영국 로열 오페라 하우스 공연 장면이다.


https://youtu.be/XwSoRQSr5dY

 

 


 이 오페라 연출의 아쉬운 점은 요카난의 잘린 대가리가 허벌 가볍다는 거. 해골과 그 안에 들은 뇌와 유독히 빽빽하게 채워진 혈관과 신경다발을 포함한 인간 대가리가 생각보다 무겁다는 걸 연출자들이 가끔 잊는 거 같다.

 며칠 전에 쓴 프리드리히 헤벨의 희곡 <헤롯과 마리암네>에서도 살로메가 등장하지만 와일드의 살로메가 워낙 강렬해서, 그리고 헤벨의 작품 속에선 살로메가 완전 조연, 없어도 무방한 역할에 그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와일드의 살로메를 진짜 이야기인줄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 전부가 희곡 <살로메>를 읽거나 R 슈트라우스의 오페라를 본 것이 아니라 아마 영화 <왕 중 왕> 예전에 연초 3일간 법정 공휴일이었을 때 TV를 통해서 수십번 방영했던 더빙영화에서 브리짓 바즐렌이 헤롯의 연회에서 춤을 추고는 세례 요한의 목을 달라고 청하는 장면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도 젊은 시절까지 정말 살로메가 은쟁반에 요한/요카난의 대가리를 담아 오라고 해서 그렇게 됐는 줄 알았으니까.

 살로메는 팜 파탈 정도가 아니라 끝간 데 없는 소유욕의 화신. 내가 아무리 썰을 풀어도 와일드의 죽여주는 미문을 제대로 표현할 도리가 없다. 재주가 없으면 다음 순서는 컨닝. 살로메의 대사를 옮긴다.


 (손에 쥔 은 방패 위에 요카난의 머리가 놓여있다. 살로메가 그것을 움켜쥔다)

 아! 당신은 당신에게 입 맞추지 못하게 했지, 요카난. 흠! 이제 나는 당신에게 입 맞출 거야. 잘 익은 과일을 깨물 듯이 내 이로 당신 입술을 깨물 거야. 그래, 당신에게 입을 맞출 거야, 요카난. 내가 그렇게 할 거라고 말했잖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렇게 말했어. 아! 이제 당신에게 입을 맞출 거야……. 하지만 어째서 나를 보지 않는 거지, 요카난? 그렇게 무시무시하던 당신의 두 눈, 분노와 경멸이 가득하던 두 눈이 지금은 감겨 있네. 왜 두 눈이 감겨 있지? 눈을 떠! 눈꺼풀을 들어 올려, 요카난! …… (중략) …… 나는 당신의 아름다움에 목말라 있어. 나는 당신의 몸에 굶주려 있어.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요카난? 홍수도 큰물도 내 뜨거운 감정을 끌 수가 없는데. 나는 공주였어, 그런데 당신은 나를 경멸했지. 나는 처녀였어, 그런데 당신은 나한테서 순결을 빼앗았지. 나는 정숙했어, 그런데 당신은 내 핏속에 불을 채웠지……. 아! 아! 당신은 나를 보지 않았나? 나를 보았다면 당신은 나를 사랑했을 거야. 틀림없이 나를 사랑했을 거야. 사랑의 신비는 죽음의 신비보다 위대하지 ……(중략)……

 아! 나는 당신에게 입을 맞추었어, 요카난, 당신 입에 내 입을 맞추었어. 당신 입술에서는 쓴 맛이 나네. 피의 맛인가? …… 아니, 어쩌면 사랑의 맛일지도 몰라……, 사람들은 사랑에서 쓴 맛이 난다고 하지……,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무슨 상관인가? 나는 당신에게 입을 맞추었는데, 요카난, 당신의 입에 내 입을 맞추었는데.

 (달빛이 살로메에게 떨어지며 그녀를 환하게 비춘다.)


 <살로메> 한 편을 위해서 이 책을 살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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