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남자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85
빅토르 위고 지음, 이형식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레 미제라블>과 <노트르담 드 파리>를 읽었다. 난 보통의 독자다. 그럼 이걸로 빅토르 위고는 졸업, 혹은 땡! 맞지? 나도 위고 졸업장을 받은 줄 알고 살았다. 그런데 세상 일은 아무도 모른다. 존애하는 다이허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를 읽는데 이 이모가 위고 작품 가운데 딱 <레 미제라블>하고 <노트르담 드 파리>만 빼놓고 이야기하는 거다. 그러면서 아주 곳곳에 유럽의 낭만주의에 대해 토론하면서 <웃는 남자>의 등장인물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또 가끔은 <93년>을 짤막하게 짚고 넘어가니 어찌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있었으랴. 그리하여 올 1월 다이허우잉의 책을 읽는 도중에 급하게 인터넷 접속해서 카드 긋고 산 책이 <웃는 남자>와 <93년>.

 상,하권 합해서 본문만 950쪽에 달하는 <웃는 남자>를 정말로 읽어보니, 물론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완전 개인적 감상에서 얘기하자면, <레 미제라블>과 <노트르담 드 파리>를 능가하는 재미와 감동의 진짜 낭만주의 작품.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이리하여 19세기는 프랑스 소설의 세기로 규정하는 것이다.

 먼저 그림 좀 보시고.

 

 


 앞의 것이 위고의 희곡 <환락의 왕> 속 궁정광대 리골레토, 뒤의 것은 유랑 익살광대극단 단장 카니오. 내가 생각하는 등장인물의 캘릭터하고는 좀 맞지 않는 사진이지만 하여간 목적상 가져왔다.


 리골레토는 연극 또는 익살극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둘째 사진은 내가 확실히 아는데, 젊은 마누라는 동네 총각하고 눈이 맞고 배가 맞았고, 하필이면 그걸 자기 눈으로 직접 봐서 이 작것들을 죽여 말아 마음 속엔 눈물과 질투와 분노와 악마의 꿈틀임이 바글바글 끓고 있는데 바로 그 순간 바야흐로 익살광대극을 시작해야 하는 희극 광대다. 그가 만면에 웃음기가 가득하게 분장을 하면서 노래하는 "의상을 입어라", 희대의 테너 아리아, 아마 한 번은 다들 들어보셨을 걸?

https://youtu.be/rRhmogBs-gU

 


 근데, 저 익살광대의 얼굴이 분장을 한 게 아니라 그렇게 보이기 위해 외과수술을 해서 일부러 얼굴을 만든 거라면? 어린 아이를 유괴하지 않고 법적으로 돈을 주고 사서 목적상 외과수술을 하는데, 중국에서 천년 전부터 시행하던 마취술을 써 아이를 잠들게 해놓고 눈꺼풀을 아래 위로 찢고, 코뼈를 제거한 다음 나머지 살덩이도 콧구멍만 빼고 뭉개버리고 입술을 귀 아래까지 절개해 잇몸이 드러나면서 피수술자의 기분과 관계없이 언제나 함빡 웃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면.

 실제로 야만족들이 득시글거렸던 유럽에선 17세기까지 이런 행위를 해서 수술한 아이를 비싼 값에 되팔아 수익을 올리는 '콤프라치코스'란 조직이 여럿 있었다는 보고가 있으며 17세기 말에 들어서야 영국의 제임스 몇세던가 하는 작자의 치하에 이르러서야 이를 불법으로 여겨 처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책에선 위 문단에서 내가 예로 들었던 외과수술을 받은 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파란만장한 일생을 사는 모습을 그린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저 위 위고의 <환락의 왕> 리골레토는 거기다가 곱사등 시술까지 받은 후천적 기형이 아니었던가 의심이 가는 것이, 자신의 어여쁜 딸 질다에게 유독 자신의 가족관계와 자기 이름까지 알려주지 못하는 정경 때문이었다. 어려서 팔려와 기형수술을 받은 후 만토바 성의 익살광대로 되팔린 신세. 가족은커녕 자신의 진짜 이름도 모르는 광대가 리골레토 아니었을까.

 하여간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 얼굴에 중점적으로 기형수술을 받아 기괴한 웃는 모습을 지니게 된 그윈플레인은 열살 때 콤프라치코스 일당이 잉글랜드에서 바다 건너로 도망치던 한겨울에 콤프라치코스 무리에 의하여 얼어 죽거나 굶어 죽으라고 외딴 잉글랜드 땅에 버려져 황량한 포틀랜드 일대를 방황하면서 인생을 시작하는데, 당시 지구를 뒤덮던 소빙하기를 맞아 눈내리는 밤 꼬마 그윈플레인이 제일 먼저 맞닥뜨린 것이 터무니없이 엄정한 법에 의하여 교수형을 당한 다음 온 몸에 타르를 뒤집어 쓰고 교수대에 대롱대롱 매달려 썩지도 않으면서 오랜시간 인민들로 하여금 경계하라는 교훈을 내리고 있는, 바람에 흔들리는 시신이었고, 두번째가 젖먹이를 품에 안고 길을 가다가 기아와 추위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죽은 여인이었으며, 깊은 밤에 도착한 조촐한 시내의 두드려도 두드려도 결코 열리지 않던 시민들의 안식처로서의 집 혹은 도시였다.

 이것으로 책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마친다.

 위고가 어떤 사람인가 하면, 곳곳에 예상치 못한 장치를 숨겨놓아 앞의 것이 뒤의 장면과 연결되는 은밀하고 교묘한 거미줄이 함빡 쳐져있어 서툰 독자가 자신이 이 소설을 읽었다는 증거를 대기 위해 스토리를 조금 이야기하다보면 여차했다간 세밀한 복선이나 열쇠의 끄트머리를 내주는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나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날 자신이 있다고 어깨에 힘 줄 이유가 없는 바, 이쯤에서 끝내는 것이 서로를 위해 바람직하다.

 다만 한 가지, 꼭 이야기하고 싶은 건, 왠만하면 한번 읽어보셔. 소위 말하는 작중 클라이막스에 가서 당신의 가슴도 내것처럼 안타깝고 찌르르하고 가슴 아프고 가엽고 그럴 때가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