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짐승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9
모니카 마론 지음, 김미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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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참 잘 읽은 연애소설. 역시 소설의 기본은 연애소설이고, 연애소설 가운데서도 제일 매력이 있는 건 불륜이다. 아, 고정들 하셔. 난 불륜을 저질러본 적도 없고 앞으로는 신체기능 상 매우 어렵겠지만(물론 약물의 도움을 받는다면야!), 아니 오히려 그래서 그런가 아무것도 모르는 처녀 총각들이 사랑인지 육체적 갈망인지 가늠하기 힘든 충동 때문에 야밤에 담 넘고 테라스까지 기어올라 온갖 환상적인 싯구를 읊는 것보다 세상살이 왠만큼 아는 지긋한 것들끼리 어떻게 지펴놓은 은근한 군불이 어느새 활활 타올라 뒤늦은 사랑 말고는 나머지 몽땅 다 태워버리는, 노래가사 말마따나 탈대로 다 타시오, 타다 말진 부대마소, 그런 불륜 얘기가 맘에 든다.

 모니카 마론. 그의 책은 당연히 처음 읽는 것이고 이름마저 처음 들었다. 그러나 <슬픈 짐승>의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이거 말고 그의 책 중 2017년 2월 현재 발매하고 있는 유일한 다른 책 <올가의 장례식날 생긴 일>을 보관함에 담아놨고 올해 10월 정도에 읽을 거 같다. 물론 내가 잘 읽은 건 역자 김미선의 유려한 한국어 문장의 덕도 크겠지만 마론이 그려내는 사랑과 삶의 스펙트럼이 내 혼을 완전히 빼놨다.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젊었을 때는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시작하는 <슬픈 짐승>. 첫 문장을 읽을 땐, 하이고 타령 하네! 더이상 상투적일 수 없는 유치한 작품일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들었다는 걸 고백하고, 지금부터 차근차근 내가 <슬픈 짐승>에 빠져들었던 이유에 대하여 얘기해보겠다.....까지 썼는데, 완전 아마추어 독자가 책에 빠진 이유를 밝히는 것이 대한민국의 문화창달과 시민복지에 이바지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그냥 감상만 적어보기로 한다. 역시 사람은 제 주제를 잘 알아야 하는 거니까.

 위 문단에서 첫 문장을 써놓았지만, 바로 이어지는 것이 현재 자신은 젊었을 때의 생각과는 달리 죽지 못하고 지금 백살이며 아직도 살아 있고 어쩌면 아흔 살일 수도 있는데 아마 백살이 맞을 거라고 하면서 누군가로부터 받는 약간의 연금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다는 걸 밝힌다. 내가 원래 눈치없는 아마추어 독자라서 이런 정보를 접수하자마자 주인공 '나'는 빼도박도 않고 나이가 최하 90살이라고 확정한 상태에서 글을 읽기 시작했다. 이 작품의 처음 간행 연도가 1996년. 그럼 '나'는 적어도 1906년 이전에 태어난 여자다. 맞지? 처음엔 불륜에 관한 소설이라며 왜 나이 같은 걸로 변죽을 울리느냐 하면, 사실 이건 변죽이 아니라 심각한 진실을 이야기한 것인데, 인간 혹은 작가 혹은 책의 주인공 '나'의 경우 자신의 인생에서 더 이상 "사랑"이 들어올 수 없는 상태, 또는 치명적인 사랑이 나로부터 떠나버린 상태를, 살고는 있으되 살고 있지 않은 구십세나 백세의 노인이라 칭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설의 기본에 입각해 주인공은 틀림없이 1906년 이전 태생의 독일 여인이라고 가정하고 책을 읽었으니 앞부분의 매 순간 곳곳에 지뢰밭처럼 두뇌가 펑펑 터지는 거 같은 느낌이 들었을 수밖에. 아, 난 아직 멀었다.

 짧은 소설이라 그나마 좋은 얘기로 '불륜'이고 미국드라마 과학수사대CSI 식으로 얘기하자면 '치정'이 내용이란 거 말고는 스토리에 관해서 더 소개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몇가지 책을 읽는 힌트만 살짝, 힌트래봐야 진짜 노인이 주인공인줄 알았던 아마추어가 내놓는 힌트에 불과하지만 하여간 그런 걸 좀 얘기하자면, 나를 둘러싼 터무니없는 조건 때문에 불가능했던 소망이 정작 가능해지자 그 소망을 이루고싶은 간절함이 사라지는 모습. 스코틀랜드 경계에 로마 황제가 세웠던 하드리아누스 방벽과 독일을 베를린 장벽으로 대신하는 분단상황과 분단 해소 후 사람들 간에 얽히고 설킨 애정관계 인간관계 가족관계 기타등등의 관계, 관계, 관계들. 만일 1970년 쯤에 갑자기 대한민국이 평화통일이 되었다면 남으로 내려와 (북으로 올라가) 새로 혼인을 하여 가족을 이룬 자들 간의 관계, 관계, 관계, 그 혼란함. 이런 것들 다 숙고해봄직하지만(마치 출판사 책소개에 나온 거처럼) 그러나 두 남녀의 불륜에만 촛점을 맞추어 나름대로 아름답지만 끔찍한 연애를 보는 것도 에이그, 짜리리리 하다.

 참고하실 건, 죽여주는 베드 씬 같은 건 나오지도 않는다. 그런 기대 애초 접으실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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