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 열하 1
임종욱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거다. 1780년이면 바야흐로 아메리카에서 미국 독립을 위한 전쟁이 극렬하게 벌어지고 있어 지구 상에 거의 처음으로 인권 및 평등, 그리고 자유 사상이 싹을 트기 시작하던 때로 5년 후면 미국이 독립을 하고 그후 4년 더 있으면 드디어 자유, 평등, 박애를 기치로 바스티유의 공고한 벽을 인민의 힘으로 무너뜨리게 되는 그런 시점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눈을 아시아로 돌려보면 명조 시절 정화의 원정 이후 굳게 문을 닫아버린 중국은 폐쇄정책으로 인하여 국가경쟁력을 스스로 묶어버렸으며 교류가 세계최정상의 문명과 문화를 누리고 있는 자신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 없다는 판단으로 오히려 공고한 만리장성을 굳건하게 보강하는데 힘을 쏟았다. 이런 모든 조치들이 자신들이 세계에서 최강이라는 오만에서 나온 것이지만 바로 그 이유로 급격하게 중국과 동아시아의 세계적 정력은 흐물흐물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야말로 역사적 아이러니. 중국으로부터 총기제작술을 받아들여 이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이베리아 반도에서 아라비아 민족들을 먼저 쓸어버린 다음, 총과 대포기술과 더불어, 인류 발전 역사를 2차 함수 곡선으로 발전시킨 항해술의 발달을 기초로, 라틴 아메리카 인류의 대대적 학살과 희생을 바탕으로, 유럽이 그야말로 눈부시게 발전을 거듭, 세계사의 영광은 동아시아에서 한 순간에 유럽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후 3세기 가량이 흘러 유럽의 여러나라가 최종적으로 중국을 침탈할 목적으로 아시아에 접근을 시도하였지만 헛된 중화의식에 빠져버린 청조는 이를 유럽이 청조에 조공을 하기 위해 알아서 설설 기는 줄로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던 와중이었고, 하다못해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의 태평성대라고 곳곳에 함포고복의 격양가가 높았던 시절이다. 문명국 가운데선 가장 야만적인 수준에 머물렀던 조선엔 정조라고 불리울 젊은 왕이 등극해 나름대로 왕권을 강화하고 자신의 뜻을 세우기 위해 애를 썼으나 이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노론으로 대표하는 수구세력, 썩어자빠져 이미 멸망해 백골마저 흩어져버린 명나라를 잊지못해 대명의리론大明義理論에 입각해 청조를 치느니 마느니 헛소리로 날밤 까는지도 모르는 세력들을 견제하느라 자신의 친위대 양성에 힘을 쏟아 군권을 손에 쥐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던 와중이다.

 작가 임종욱이 딱 이 시기를 잡아, 그것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귀에 딱지가 앉을 북학파의 거두 연암 박지원을 등장시켜 제목도 근사하고 책 껍데기 역시 근사하며 900쪽이 넘는 화려한 디자인의 <1780 열하>를 썼으니 어찌 관심이 없을 수 있었으랴. 그리하여 일찌감치 이 책을 한 번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다가, 작년 말에 기쁜 마음으로 책을 산 다음, 드디어 지난 주에 금요일에 책을 읽기 시작해 일요일 오전까지 바득바득 책을 다 읽어치웠으니 어찌 감상 한 마디가 없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공들여 쓴 작가 임종욱은 "습작"을 자신있게 책으로 만들어, 즉 아무리 책일지라도 독자의 기대와 감동과 감동까지는 아니라면 적어도 동감을 주는 대신 자신과 출판사는 돈를 받을 '상품'으로 만들어냈으니 여기서 임종욱의 기개를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독자서평을 보니 나와 마찬가지로 습작이라고 표현한 독자가 한 명 있었고, 그에 대해 굳이 답글을 단 저자 임종욱은 '자신의 작업을 습작이라고 하니 민망하다'는 취지로 이야기 했다. 임종욱의 유감표현에는 동감을 한다. 나름대론 아니라고 여기겠지.

 내가 <1780 열하> 1권에서만 습작이라고 결론 낸 것들을 조금 이야기해보겠다.

 1. 프롤로그를 시작하면서 정문탁이 송지명 교수의 강연을 찾아가는 데애 대하여 무지막지 우연을 강요하고 있는 거 (45쪽)

 2.강원도 사람이 충청도 사투리 쓰는 거. "아부지, 거 정말 오랜만에 듣는 영양가 있는 소리구먼유. 어서 가서 성사시키세유."  53쪽. 아, 세계를 정복한 충청도 사투리. 잉글랜드 촌놈 토마스 하디가 쓴 <테스>에서도 미모의 여주인공 테스는 거침없이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한다.

 3. 강력계 형사가 한겨울에 난데없이 양복을 벗었다가 다시 입어서 지나가는 행인이 형사의 겨드랑이에 달려있는 권총을 보게해? (144쪽)

 4. "40, 불혹(不惑)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뜨신 아버지" 218쪽에 이렇게 나오는데, 바로 다음 페이지엔 "대학에 입학해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하자 조형사는 어머니와 작별할 수밖에 없었다. 병들고 야윈 아버지 곁에서 남편의 몸을 보살펴야 하는...." 이란다. 그럼 아버지가 스무살이 안 돼 조형사를 낳았다는 얘기. 219쪽에선 굳이 왜 아버지 얘기가 나와야 했는지 혹시 감정팔이 아냐?

 꿈 꾼 이야기가 너무나 자주 뜬다는 것 등 얼마든지 더 쓸 수 있는데, 수첩 옆에 두고 위와 같이 메모하다가 책 한 권 읽으면서 내가 뭔 지랄인가 싶어서 관뒀다.

 그리고 임종욱의 생각과 내 생각이 너무나도 극적으로 다른 것이 있었다. 나는 나와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을 경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임종욱은 예외다. 내가 아무리 나와 다른 의견도 받아들이지만 히틀러 개새끼나 스페인의 프랑코 개자식의 의견은 결코 수용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임종욱은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정문탁의 입을 빌려 자신의 의견임에 분명한 다음 발언을 한다.

 "나는 그때(주: 1945년 8월 6일과 9일에 있었던 원자탄 피폭) 좀 더 많은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두 발(주: 당시 일본에 투하한 원자폭탄 '리틀보이'와 '팻맨')로 정신을 차리기엔 일본인은 너무 교만하고 기억력이 좋지 않다. 저지른 짓은 다 잊고, 당한 일만 기억하는 아집은 뇌의 어느 한 부분에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다." (376쪽)

 이 부분을 읽고 임종욱이 순혈 아리안 족으로 독일 땅에서 태어나 1935년에서 1945년 까지 젊은 시절을 보내지 않은 것에 진정으로 안도했고, 같은 이유로 1910년에서 1945년 까지 조선반도에서 조선인으로 태어나 일본 경찰에 복무하지 않았던 것이 우리로서는 천만 다행이었으며, 1975년부터 79년까지 캄보디아의 권력층 바로 아래 행동파 책임자로 활동하지 못했던 것을 천우신조라고 여겼다. 뭐 이딴 자가 다 있는가. 20만 명의 일본인, 굳이 일본인이 아니라도 인간의 목숨이 그렇게 우습게 보인다는 거야? 그러나 더 이상 열을 내진 않겠다. 아침이라서. 나, 사람 됐다.

 한 마디로 이런 사람이 쓴 책은 읽을 필요가 없다. 비록 자신이 낸 책을 한 번 읽어보니 교정이 개판이라 백개의 단어에 육박하는 정오표를 따로 인터넷 책방에 깔아놓는 양심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것도 참 우스운 것이, 자기 책이 그렇게 소중했다면 책이 나오기 전에 교정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했어야지, 다 나오고 이미 독자도 그걸 끝까지 읽었는데 그제서야 기껏 성의표시를 하고, 교정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 그러니까 작가 책임이 아니라 출판사 교정 담당자 책임이다 이거지? 그것도 이해해주겠다. 책 나온 것이 기쁘고 즐겁고 우쭐하기 한량없어 더 좋은 퀄리티의 책을 발간하기 위해 교정을 본들, 틀린 단어 같은 것이 눈에 들어오겠는가 말이다. 아주 전형적인 습작 작가의 행태.

 2권 100쪽 못미쳐 난 심각하게 고민했느니, 이걸 마저 다 읽어? 말어? 습작작가의 전형적인 모습, 기본이 안 된 증거들이 끊임없이 발견되는데다가  위에서 말한 원자폭탄 이야기가 거슬르기 한이 없었지만 역시 아까운 건 책값이었다. 그래, 책값은 비교적 저렴하다. 두 권에 2만원. 그것도 아까워 끝까지 다 읽었으나, 읽자마자 곧바로 '버릴 책들'로 구분해서 책꽂이에 꽂히지도 못하고 그냥 방 구석에 옆으로 쌓아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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