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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필즈 1
마틴 에이미스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오늘부터 3일간 출판사 열린책들과 웅진[뿔>에서 발간했으나 절판된 장편소설 세 편을 올린다. 이 책들은 적어도 내가 읽은 바로 얘기하자면, 대단한 성가를 누릴 만한 참신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출판사를 잘못 만나 광고에 실패했든지, 출판의 방향을 달리해(웅진은 요새 어린이 책과 비문학 도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듯하다) 하여간 제대로 명을 누리지 못하고 한국의 독자로 하여금 이젠 찾아보기 힘들게 된 것들이다. 오늘은 첫순서로 마틴 에이미스가 쓴 문제작 <런던 필즈>. 일찌기 서구적 유머로 유럽인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든, 그러나 극동 아시아 독자에겐 웃음의 코드를 제대로 전해주지 못한 <럭키 짐>을 쓴 킹슬리 에이미스의 친아들인 마틴이, 이번엔 세계 누구라도 참 흥미롭고 재미나고 가끔가다 웃음을 참지 못하게 만드는 작품을 썼다. 난 런던엔 가보지 못해 잘 모르지만 거기 가면 런던 필즈라고 하는 공원이 있는 모양이다. 제목은 그 공원에서 따왔으나 소설의 무대는 그냥 런던의 거의 전지역을 망라하며 진행한다. 굳이 제목에 집중할 필요는 없을 듯.
책은 한 관찰자, 즉 소설을 쓰는 에이미스의 분신이랄 수 있는 '샘 영'이란 이름의 미국 소설가. 근데 이 인간은 소설가이기는 하지만 자기의 뇌로 하여금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딱 자기가 런던에 체류하려는 기간에 벌어지는 두 남자와 한 여자가 벌이는 엽기 살인사건을 그대로 취재하여 소설을 쓰려고 하는 삼류인간이다. 이 인간 앞에 런던의 젊은 난봉꾼이자 양아치이자 제대로 되지도 못하는 잡사기꾼이자 임균성 요도염에 걸려 이에 항의하는 아내를 무조건 패버림으로 해서 자기로부터의 전염을 부인하는 파렴치한 남편이자, 어여쁜 젖먹이 딸아이의 엉덩이를 담배불로 세군데 지져버리는 비정의 호로새끼이자 기타등등을 다 합쳐 개 썅노무새끼인 키스 탤런트란 살인 예정자가 등장한다. '키스'라고 하니깐 두 사람이 입술 맞대고 쭙쭙쩝쩝대는 그 키스가 생각나시겠지만 그거 말고 재즈와 바흐의 연주에 일가견이 있는 키스 쟈렛의 그 키스Keith를 말하는 것인데, 그가 앞으로 죽이기로 예정되어 있는 인간은, 키스가 세상의 파렴치한임을 감안하면 무쇠팔 무쇠주먹을 가진 남자가 아니라 연약하기 짝이 없거나 적어도 완력으로는 체력 빌빌한 자신이 그나마 해치울 수 있는 상대로서, 여성이란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바와 같으며, 그녀는 또한 가히 한 소설의 주인공이란 타이틀에 걸맞을 정도로 재색을 겸비한 뛰어난 미모와 어려서부터 일찌감치 정조관념 따위는 개한테 던져준 이른바 개방적 또는 여혐자들의 개삐딱한 의미에서 이른바 진보적 여성의 최첨단에 우뚝 선 미모의 니컬라 식스. 우리가 흔히 범하곤 하는 잘못 가운데 가장 큰 거 하나가, 주로 소설에 등장하는 경국지색 미모의 주인공은 마음씨가 비단이거나 아니면 운명의 장난으로 말미암아 비련의 수렁텅이에 빠지겠거니 하지만 니컬라 식스는 가히 20세기 말인 1989년에 등장한 히로인답게 무참하게 한 남성 가이 클린치를, 그것도 태어날 때부터 은수저 입에 물고 빨아대며 나온 귀족출신에다가 제대로 된 집구석의 제대로 된 부자님 도련님이 대개 그렇듯이 인간 하나 진국이라 반듯하기 그지없어서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답답하기 짝이없단 평을 듣는 무골호인 하나를 치명적으로 유혹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 두루두루 여러방면으로 되돌릴 수 없는 수렁으로 푹 빠뜨려버리고 만다. 작가 마틴 에이미스 혹은 화자 샘 영이 말하기를 천하의 잡놈 개썅노무새끼 키스 탤런트를 살인자, 미모의 팜파탈 니컬라 식스를 피살자, 순진한 멍청이 가이 클린치를 조연이라 칭하며 이 세명이 대책없게 벌이는 좌충우돌을 정말 재미나게 그리고 있다.
몰론 내가 오늘 비교적 상세하게 책의 이것저것을 소개하는 건 이 책이 절판 상태라서 따로 읽어보실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이겠으나 사실 이 정도의 양념으로 책 읽는 재미를 넘겨짚기란 일곱명의 봉사가 코끼리를 더듬어 어떤 동물인지 분간하려는데 하필이면 그 큰 부랄 하나를 콱 쥔 거하고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라 등장인물 소개만 읽고 그저그런 소설이려니 생각하다간 부랄을 잡혀 난리를 치는 코끼리 코에 한 방 얻어맞을 수 있듯이 책이 주는 진짜 재미를 전혀 알지 못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점.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해선 솔직히 말씀드려서, 좀 건전한 대중소설인줄 알았다. 나란 인간이 원래부터 대중적인 것도 좋아하고 특히 허리 아래쪽으로 대중소설적 묘사 나오면 좋아 죽어넘어가지만 그것도 아니면서도 대중소설이라 분류할 수밖에 없겠다 싶었을 즈음부터, 그게 1권의 한 150쪽 쯤이었는데, 그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걸, 1권 150쪽 가량에서 확실하게 알아차렸다. 뭐랄까, 내가 문학적 소양이 아직도 부족해서 정확하게 뭐라 콕 집어 얘기하기 쉽지 않지만, 위에서 얘기한 등장인물들의 개차반 생활과 삶의 조건들을 난삽하게 그리는 와중에도 바로 사람(들)의 사는 모습과 그들을 향한 블랙 유머 그리고 그 유머 속의 애잔한 동정 같은 것들이 숨어 있었던 거다. 물론 이 이야기는 전혀 믿을 필요는 없지만 내 감상이 그렇다면 적어도 나한텐 그런 거니까. 이런 나홀로 감상 같은 거 한 두 번 지껄인 것이 아니라서 비록 내 감상이 어림도 없고 유치하기 짝이 없더라도 이젠 쪽팔리지도 않다. 그러니 감안하시기 바람. 근데 말씀이지, 더 솔직히 말해서, 혹 이 책이 절판이라 적어도 당분간 다시 나올 확률이 별로 없으니까 내 감상을 쓰는데 더 용감한 거 아냐? 에이 몰라, 감안해서 읽으시면 되지 뭘 그려.
분명하게 말씀드립자면, 이 책, 좋다. 요샌 비록 중고책이라도 이름만 중고책이지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그런 중고책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까 한 번 큰 맘 먹고 찾아 읽을 만하다. 마틴의 아버지 킹슬리가 쓴 <럭키 짐>이 어디어디 추천 세계 75대 영문소설이란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지만, 내가 읽기론 이 <런던 필즈>가 훨씬 더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