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버린 지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1
아베 고보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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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를 읽어보고, 사실 제목이 '모래의 여자'가 뭐야 모래의 여자가. 별 기대하지 않고 읽었는데 왠걸 거참 새삼스럽고 참신하지만 좀 오래된 고랑내도 나는 거 같고,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뭘까 싶다가 혹시 카프카? 했는데 출판사 책소개에 '일본의 카프카' 운운해서 어깨 후까시 좀 돋았던 바로 그 작가, <모래의 여자>를 다 읽는 순간 곧바로 아베 코보 검색해서 시판중인 유일한 책을 샀으니 바로 오늘 소개하는 <불타버린 지도> 되시겠다.

 주인공이 사설 탐정. 하여간 무슨 이유가 됐건 간에, 돈 팍팍 꿔서 갚지 않고 냅다 도망간 사기꾼, 보스의 아내를 자빠뜨린 거 까지는 좋았는데 현장을 걸려버린 잘 생긴 스물 한살 짜리 조폭 쫄병, 아빠한테 양복 사달라고 조르고 조르다가 허락 안 받고 아빠 양복 줄여입고는 아빠한테 맞아 죽을까봐 겁이 덜컥 난 철부지 하이틴 소년, 하도 졸라서 딱 한 번 했는데 그만 덜컥 애가 들어서 부모한테 얘기 안 하고 미혼모 보호시설로 도망친 스물 네살 아가씨, 사업 잘 하다가 난데없이 납품하던 대기업 발행 어음이 부도 어음이라 야밤 도주해버린 중소기업 사장님, 이렇게 한도 없고 끝도 없는데, 이번에 의뢰받은 실종 사건은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날라버린 한 유부남 좀 찾아달라고 아내가 조폭 중간 약간 아래 보스 비슷한 동생을 시켜 계약서에 서명을 한 건이다.

 근데 이 남자, 무슨 속셈으로 잘 살다가 도망친 거야? 약간의 알콜의존증이 있어서 맥주를 입에 달고 사는 마누라가 그렇게 비싼 맥주를 장복해도 살이 통통하게 오르거나 하다못해 B컵 젖가슴도 갖지 못해 열받아 새로 사귄 님따라, 이제야 진정한 사랑을 찾았네 염병을 떨기 위해 도망간 것도 아닌 거 같고, 직장에서 열라 여어어어어어어얼쒸미 일해 봤자 알아주는 사람 조또 없어 내 능력 갖고 여기 아니면 뭐 먹고 살 데 없냐, 한 바탕 난리를 부리다가, 여기 아니면 먹고 살 데 없는 걸 그제야 눈치채고 갑자기 허망, 허탈, 자포자기에 빠져 불과 1 킬로미터 앞에 놓여있는 태평양에 빠져죽기 위해 기어간 것도 아닌 거 같고. 하다못해 마누라 몰래 빠찡코에 빠져 조폭이 뒷배 봐주는 고리대금 업자한테 돌려 쓴 약간의 돈이 이자에 이자가 붙어 대신 간의 2/3, 신장 한 개, 각막 한 개 뭐 이렇게 대충 떼주다가(김혜수, 김고은 나오는 영화 <차이나타운> 참조) 기어코 죽음에 이르러 발목에 시멘트 덩어리 달고 태평양에 던져진 거 같지도 않고, 도대체 왜 자족하면서 잘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느냐고.

 자, 어느날 이 남자처럼 자신의 일상에서 갑자기 사라지고 싶으신 분, 거수. 내가 가장 효과적으로 일상이란 동심원에서 탈출하는 법을 가르쳐드리는 바, 감사한 마음으로 귀 기울여주시면, 일찌기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발견한대로 당신의 삶을 한 번 미분하시라. 그리하여 미분한 함수 f'(x) = 0 이 되는 점에서 두 번 생각하지 말고 그냥 튀어나가면 가장 멀리 탈출하는 효과를 즐기실 수 있다. 그게 삶에서 뭐냐고? 흐이그, 알면 내가 먼저 튀어나갔지 여태 가만히 있었겠는가.
 왜 헛소리만 계속 하느냐 하면, 말 그대로 어느날 문득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삶에서 아무 대책없이 그냥 한 번 사라지고 싶었던 적이 한 번도 없으셨던 분, 혹시 계셔? 만일 당신이 그러하다면 정말 행운아이던지 백치일 확률이 아주 높던지 지금의 상태에서 벗어나면 오늘 낼 하는 부모 세상 하직하는 날 거액의 상속을 받지 못하던지 하여간 이 비슷한 환경일 것이다. 그러니 사실 아베 코보는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그냥 보통 인간들이 마음 속에서 숱하게 저질러보는 일탈을 실제생활에서 진짜로 일어났다고 전제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이 실종된, 아니 자발적으로 실종한 사람을 찾는 의미 기타등등에 대하여 묘사해놓았다. 그냥 이런 것들만 있으면 좋은 책까지는 안 될 텐데, 그를 찾는 사람들과 실종자, 심인자 의 주변 사람들에게서 벌어지는 또다른 사건들, 하여간 일본의 겨울, 소도시에서 볼 수 있는 스산한 풍경을 잘 그려놨다. 아베 코보의 또다른 작품을 검색해봤는데 아직 신간은 없고 전부 품절도서라 올 하반기까지 기다려봤다가 중고책이라도 한 권 더 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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