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먹는 가족 1
모옌 지음, 박명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출판사 랜덤하우스 코리아에서 만든 책의 띠지를 보면 "21세기 중국 최고의 천재 작가"라고 설래발을 쳐놨는데, 그걸 약간 심술궂게 해석하자면 모옌이 1989년, 20세기에 쓴 이 소설은 절대 중국 최고도 아니고 그때 까지 모옌 역시 천재가 아니었다는 거 (물론 아직까지도 천재는 아닌 거 같다). 이거 말 돼? 아시다시피 모옌이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한 1987년이라면 마오가 죽고 강청을 비롯한 사인방이 체포됨으로 해서 개같은 문화혁명이 드디어 종말을 고하고 10년 세월이 지났을 때다. 이 10년 세월동안 중국의 소설판은, 나도 물론 들은 얘기에 불과하지만, 문혁 당시의 생경한 공산주의 문학, 문혁 이후 문혁의 상흔을 치유하기 위한 리얼리즘 문학(이 부류에 내가 경애하는 다이허우잉이 포함되는데 평론가들은 불경스럽게도 '상흔문학傷痕文學'이라고 부르나보다)으로는 중국개방 이후의 넘쳐나는 분위기를 더이상 담을 수 있지 않기 때문에 토속 전설, 노변爐邊의 옛이야기, 신화 등을 사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되지도 않는 이바구를 슬슬 풀어놓는 거 같다. 며칠 전에 독후감 썼던 나이지리아 작가 벤 오크리의 <굶주린 길>. 기억나셔? 어떻게 그렇게 두 소설가가 똑같은 말을 들을 수 있는지. 평론가들이 짠 거 아냐?

 실제로 작품해설에서 역자 박명애는 이렇게 얘기한다.

 "그러므로 현실적 리얼리즘이 더 이상 발을 붙일 수 없는, 소설이 설 자리를 잃고 사라져가고 있던 시대에 모옌은 산둥성 까오미 둥베이향의 황무지를 개간해, 아득히 먼 과거 속으로 숨어버린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를, 오늘을 살아가며 날마다 갈등하는 '나'의 일상생활과 접목해 이야기가 앞으로도 쉬지않고 계속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2권 367쪽

 박명애, 아쭈, 웃겼어. 인류가 이야기, 즉 소설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이래로 단 한 번도 현실적 리얼리즘이 발을 붙일 수 없는 시대는 없었고, 마찬가지로 소설이 설 자리를 잃고 사라져가고 있던 시대 역시 단 한 순간도 없었다. 박명애는 문화혁명을 이야기하고 있던 거 같은데, 천만의 말씀. 이야기를 만들고 그걸 남한테 들려주고, 또한 써서 보여주고 싶어하는 건 불행한 호모 사피엔스의 본능이고 구석기시대 이래로 인류 가운데 불행한 본능 또는 유전자를 지닌 직립보행인은 언제나 있어왔던 것이다. 그들이 입과 펜을 멈췄다고? 아니다. 다만 그걸 듣고 읽어본 사람이 지극히 적었을 뿐. 근데 그걸 모를 리 없는 박명애가 왜 이렇게 썼을까. 헤, 당연하지. 자신이 번역한 책 자기가 광을 내야지 누가 대신 해주겠어. 안 그랴? 이해한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얘기. 듣는 사람이 감안해서 들어줄게.

 책 속에 써있다. 모옌이 윌리엄 포크너와 가브리엘 마르케스에 경도됐었다고. 아메리카의 환상문학의 영향을 받아 이런 소설을 썼다고, 독자가 알아채게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는데, 아참. 이런 얘기 꺼내기 전에 이 책 <풀 먹는 가족>이 어떤 내용인지를 잠깐 얘기해야겠구나.

 '풀 먹는 가족'이란 베지터리안, 채식주의자들의 집단이 아니라 모옌의 마음의 고향, 산둥성 까오미 둥베이향에 띠풀을 약 1인치 가량으로 자른 다음 잘 볶아서 입에 넣은 다음 줄기차게 씹어 드디어 섬유질이 다 삭아 흐물흐물해지면 꿀꺽 삼키는 행위를 집안 내력으로 하는 가족을 말한다. 거친 띠풀을 씹으면 섬유질이 마찰해 이와 잇몸을 강화시키고 입냄새가 없어지며, 그걸 꿀꺽 삼키면 역시 거친 섬유질이 대장 내에서 습기를 충분히 머금고 원활한 운동을 유발해 영낙없이 바나나처럼 생긴 쾌변을 만드는데 바나나 닮아 굵고 길고 노란 황금색의 물질이 인간의 막창을 뚫고 드디어 대기를 호흡하는 순간 거친 섬유질이 바로 그 막창을 간질간질 자극하며 인간에게, 아니, 풀 먹는 가족의 식구들한테 지구상 어느 가족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자지러지는 쾌감을 준다고 한다. 참으로 아쉬운 건 이 가족들 사는 곳이 산둥성에서도 아주 격리된 오지에 자리잡은 늪지대로 혼인을 통한 인류의 이동과 교환에 참가할 기회가 별로 없어 누대에 걸친 친족 내 결혼으로 말미암아 독특한 문화를 만든 것은 그렇다치고 독특한 신체구조를 가지고 태어난 구성원도 많았으니 바로 손과 발에 물갈퀴가 돋은 채 태어나는 것이었다. 왠지 모르지만 어디서 한 번 본 거 같으셔? 모옌이 평소 존경해마지 않았던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과 은근히 분위기가 비슷하지 않나 싶다. 근데 내 말 믿을 필요 없다. <백년....> 읽어본지 하도 오래라.

 이쯤에서 앞 문단에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을 계속하자면, 그들의 영향을 받아 환상소설을 썼고 이것도 그 일환으로 본다는 건데, 참나. '환상'을 이유로, 그걸 깔고 하고싶은 얘기 다 하겠다는 일념하에 인류를 죽이고, 죽이는 것도 모자라 팔 다리 자르고 산 채로 눈알을 파고, 여태 살아있는 할멈의 살코기 네냥을 떼어 가지고 가서 삶아먹고.... 이런 것들이 다 환상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허용을 해도... 아니지, 허용 못할 건 없지만, 굳이 장면을 세세하게 묘사해야만 모옌이 하고 싶은 얘기를 성공리에 다 할 수 있었다는 건 동의하기 쉽지않다. 그리하여 읽는 내내 심정이 불편하고 소설적으로 읽는 재미가 분명히 있을 텐데, 내 기호상 너무나 극적으로 맞지 않아 읽는 내내 불편한 심정이 극을 달해 참 어렵게 읽었다. 그리고 기어이 본전 생각났다. 본전이 뭐냐고? 본전 = 책값.

 하지만 분명히 밝혀야 할 점이 있다. 이건 전적으로 내 취향의 결과다. 하드코어 좋아하는 분들은 너무 재밌어 뒤로 자빠질 수 있겠다는 거. 그건 밝혀야 공정할 터.

 또 하나 분명히 밝혀야 할 점. 군데군데 교정, 교열이 개판이다. 완성되지 못한 문장들도 보이고 철자법도 개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그런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군데군데. 이런 개판 무인지경의 책을 만드는 랜덤하우스코리아, 요새 이름을 RH Korea, 몽땅 영어로 바꾼 걸 보니까 이젠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려는 모양인데, 그나마 다행인 건 절판 상태인 이 책을 다시 간행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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