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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6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임종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8월
평점 :
언젠가 얘기했던 랄프 엘리슨도 똑같은 제목 Invisible Man 으로 소설을 썼다. 물론 투명인간에 대한 개념은 서로 다르다. 랄프 엘리슨은 1940년대 미국에서 흑인의 지위와 존재의 의미에 관하여 서술하며 흑인은 인간은 인간이로되 백인에겐 전혀 지위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고 따라서 아무 의미도 없는 투명인간이란 의미로 사용한 반면, 1897년에 발간한 웰즈는 물리학 가운데 광학의 경우 빛의 굴절과 반사로 인한 시각적 인식을 기초로 사람 몸에 화학적 처리를 하여 모든 빛을 그냥 통과시킬 수 있게 세포를 조작, 실제로 모든 빛을 통과하는 투명인간을 만들어낸다. 이는 19세기 초반 21세의 꽃다운 아가씨 메리 셀리가 창작한 괴기소설 <프랑켄슈타인>의 궤를 잇는다해도 아무 상관이 없을 터.
이렇게 얘기하면, 그리고 일찌기 여러가지 만화나 영화를 통해 좀 희화화한 투명인간을 하도 많이 봐서(나만해도 최근에 본 투명인간이 숀 코넬리가 주연을 맡은 <젠틀맨 리그>이고 가장 오래된 것이 소년중앙의 만화를 통해서였다), 이 책을 뭐 그냥 그런 동화나 청소년용이라고 가비얍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천만의 말씀. 아니나 달라 타임지 선정 100대 영문소설이란다. 이것 때문에 내가 그렇게 주장하는 건 아니고, 만화나 영화를 통해서 볼 때와 다르게 활자를 읽으면서는 생각해볼 만한 것이 있다. 나하고 다른 거. 그것에 관하여는 두 말할 필요 없이 적으로 간주하는 현상. 거기다가 내가 속한 진영이 절대 다수이면? 그럼 어떤 현상이 벌어지느냐 하면, 동성애하는 사람들은, 사회의 거의 대부분이 이성애자라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아주 불쾌한 존재들이고 그들이 저지르는 사랑의 현상은 폭력적이며 더이상 그럴 수 없을 만큼 불결한 것이며 그 존재들과 악수하는 거 하나 가지고도 동성애라는 전염병을 옮길 수 있는 위험스럽고도 부도덕적인, 잘못 태어난 비인간非人間이 되버리는 거다. 동성애자 말고도 장애가 있는 사람들, 주로 개발도상국에서 우리 사회로 일하러 또는 살러 온 사람들, (개인사 하나 포함시켜도 뭐라 하지 않겠지 뭐) 기업집단에서 소수의 나이 많은 직원이라는 이유 하나로 이 책 제목처럼 투명인간 취급 받는 직장인 무리, 도시빈민, 유기자녀 기타등등.
투명인간으로 몸을 바꾸는 의사이자 물리학자 그리핀이 원래부터 성격이 좀 괴팍했지만 그렇다고 병적으로 그런 건 아니고 일반사회적 견지로 받아들여질 수준의 충동성과 남향성(문제적 인간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특성 두 가지)을 가진 천재이지만 그의 모습이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되자마자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그리핀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 대한 위협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사람들은 투명인간을 공포스러워하여 집단적 피해망상에 빠질 수밖에 없고 드디어 집단 사냥에 나서게 된다. 처음엔 그리핀의 심성 속에 있던 작은 폭력성도 인간들에 의하여 적대적으로 취급을 받으면서 조금씩 커지다가 원래부터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도 엄연히 있다는 진리에 입각해서 크레센도 크레센도 몰토 크레센도 폭력의 충동이 지수함수를 그리게 되어 스스로 아무 거리낌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괴물로 변화하고 만다.
이러한 투쟁과 절망과 파멸의 전경이 책에 다 나와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다른 방면으로도 볼 수 있는데, 난 이 방법이 매우 마음에 들지도 않거니와 참 재수없는 감상이라고 여기는데, 그건, 내 몸이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아무런 도덕적 조심성 없이 행동할 수 있고, 거의 대부분 완전한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으며, 이런 것들을 다 합쳐 무한 자유를 보장하는 선망의 눈길이다. 난 안다. 누군가는 이런 시각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걸. 그러나 당부하노니, 그렇게 살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