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끝줄 소년
후안 마요르가 지음, 김재선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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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안 마요르가는 5년 전에 두 편이 실린 희곡집 《비평가 / 눈송이의 유언》으로 처음 만났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설마 우리말로 인사했을까,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이미 정치적으로 웬만큼 민주화되고, 옛 시절의 악연마저 어느 정도 수습을 한 상태에서 등장한 스페인 86세대는 우리나라와 달리 다양한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구나. 거 참 부럽네. 프랑코 개자식들로부터 그들의 파시즘을 전수받지 않을 수 있었으니 지금 권력을 잡았을 스페인 86세대들은 마드리드에 있는 대통령 궁에서 여전히 죽창가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느라 목에 핏대를 세울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아니 부러운가.

  마요르카는 이제 달랑 두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이다. 그런데 좋다. 이제 도서관에서 POD 책은 사 주지 않겠다고 하니, 악마같이 비싸게 책값을 책정하는 지만지드라마의 희곡을 사 읽을 수도 없고, 도서관에다 사달라고 할 수도 없어 앞으로 마요르가의 다른 작품을 읽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아쉽지만, 세상에 아쉬운 일이 하도 쌔고 쌔서 뭐 그런가보다 하고 살아야지 별 수 있간디?


  책을 열면 제일 먼저 작가가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글이 들어 있다.

  자신은 한 번도 한국의 교실과 가정에 가보지 않았다는 것으로 시작해, 전제가 한국의 교실과 가정이 아마도 스페인과 다르면서도 비슷하리라, 만남과 헤어짐, 화합과 갈등이 벌어지는 공간이라고 추측한다. 근데 이거 조금 아니지 않은가? 중고등학교 교실에서 생활해본지 하도 오래라서 라떼와도 다르겠지만 여전히 지금의 한국 교실과 서유럽의 교실은 거의 딴 판으로 다르지 않을까 싶다. 근데 한 편으로는 조금 안 좋은 쪽으로 교실 역시 세계화되어 거기가 거기일 것 같은 생각도 들고. 그래도 스페인의 고등학교 교실 분위기가 오직 대학입시에 초점이 모이는 우리나라 교실하고는 많이 다를 것 같은, 아니면 말고.

  후안 마요르가는 스페인 국립연구원, 파리와 베를린의 뮌스턴 대학, 국립원격교육대학 등을 거쳐 긴 가방끈을 가졌지만 중고등학교 교사 생활도 제법 하는 바람에 당시 한 학생과의 작문에 얽힌 기억으로 <맨 끝줄 아이>를 썼다고 한다. 수학 교사였는데, 시험 볼 때, 한 학생이 답안지에 이렇게 썼다나?

  “선생님, 저는 공부를 하지 않아서 문제를 전혀 풀 수가 없어요. 하지만 최근에 저는 테니스를 아주 잘 쳐서 일요일에는 마르카 스포츠 신문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나갔어요. 등등.”

  이때 마요르카가 얻은 힌트. 학생이 시험시간의 시험지/답안지를 통해 자기 이야기를 교사한테 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


  <맨 끝줄 소년>은 말 그대로 학급의 제일 끝줄에 앉은 클라우디오라는 이름의 가난한 학생을 말한다. 수학과 과학 실력이 돋보이는 반면 철학과목에서는 비실비실하다. 같은 반에 라파라는 애칭의 부잣집 아들이 있었는데 얘는 또 철학 점수는 좋지만 수학은 거의 까막눈 신세다. 그래서 클라우디오는 라파는 서로 모자란 과목을 보충해주면서 함께 공부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합의한다. 공부할 장소는 물론 훨씬 잘 사는 라파의 집이 되겠지.

  이 두 아이를 가르치는 작문 또는 국어 교사가 헤르만. 헤르만은 요즘 학생들의 작문 실력에 거의 절망을 하고 있던 터. 주말 이틀 동안 있었던 일을 써보라는 콩트를 냈는데 거의 다 이런 식이다.

  “토요일에 나는 테레비를 봤다. 일요일에는 피곤해서 아무것도 안 했다.”

  딱 두 문장. 30분 동안에 메꾼 답안지. 이런 답지도 있다.

  “난 일욜이 실타. 토욜은 좋다. 하지만 이번 토욜에는 아버지가 나가지 못하게 하고 핸드폰을 빼섰다.”

  교사라는 직장인으로 헤르만은 절망할 수밖에. 그런데 갑자기 눈앞이 훤하게 밝아지는 답안지가 있었으니 바로 클라우디오 가르시아가 쓴 작문이다.


  “토요일에 난 라파엘 아르톨로 집에 공부하러 갔다. 그 아이디어는 내 머리에서 나왔다. 왜냐하면 오래 전부터 난 그집에 들어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략) 라파에게 돌아가려고 할 때 어떤 향기가 내 주의를 끌었다. 혼동할 수 없는, 중산층 여자의 향기다. 그 향기에 이끌려 난 거실까지 가게 되었다. 거기서, 소파에 앉아 인테리어 잡지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이 집 여주인을 발견했다. (후략)”

  상당한 글솜씨의 고등학생. 헤르만은 속으로 ‘아주 만족!’을 외치고 있었을 터. 그는 진짜 오랜만에 기쁨이 터져 마침 옆에 앉아 있는 아내 후아나한테 답지를 건네고 읽어보라 권한다.

  후아나는 불편하다. 남편한테 말한다.

  “나라면 이 글을 교장한테 가져가겠어.”

  친구의 엄마를 “혼동할 수 없는 중산층 여인의 향기”라고 하는 등 글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을 비웃고 있다면서. “얘는 도대체 자기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왜, 교실에서 큰 소리로 읽히고 라파가 그 친구 뺨을 한 대 갈기는지 보지 그래?”

  이젠 더 열을 받았는지 작문 교사인 남편 헤르만까지 볶는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남자 아이 열일곱 살. 내가 여자였던 적이 없어서 열일곱 살 먹은 여자 아이는 모르겠고, 남자애 열일곱이면 이게 말이 청소년이지 거의 완전한 성인이다. 백년 전만 해도 전쟁 터지면 제일 먼저 지원해 참전했다가 죽거나 평생 불구가 되어 돌아올 아이들. 열일곱 살이면 친구의 엄마일지언정, 그녀에게 욕정만 품지 않는다면, 사실 나이 든 엄마뻘 여성에게 욕정을 품는 소년은 내 평생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드물지만, 하여간 그렇기만 하면 친구 엄마 가까이에서 “혼동할 수 없는 중산층 여인의 향기” 운운한 게 뭐가 문제인지, 나는 모르겠다.

  게다가 클라우디오는 겁나게 가난한 집의 아이로, 집안에서는 식용유 찌든 냄새, 고기의 비계 냄새, 뭔가 희미한 부패 향기와, 빼놓을 수 없는 곰팡이 냄새에 익숙할 터, 새롭게 환한 비누와 세제와 분과 비싼 데오도란트 향기가 넘실거리면 얼마든지 그렇게 쓸 수 있는 거 아닌가? 하여간 나는 헤르만의 아내 후아나의 발언을 통해 이이의 전작 가운데 한 편인 <비평가>가 저절로 떠오르더라니까.

  그런데 후안 마요르카가 말하고 싶은 것이 이런 비평 또는 검열 한 가지가 아니었다. 작품을 읽어가다보면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는 걸 알 수 있다. 헤르만은, 보통의 남편들이 그렇듯이, 아내의 의견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내한테 비슷한 의견이 나오지 않을 쪽으로 아이를 지도하게 되고, 아이 클라우디오는 이런 선생 헤르만에게 반발하기 시작한다.

  근데 여기까지는 후안 마요르카가 “한국의 독자에게”에서 밝힌 두 가지 공간 가운데 교사-학생의 관계만 이야기한 것이다. 하나가 더 남았다. 가정 속 이야기. 라파와 라파의 부모로 이루어진 공통체와 클라우디오의 갈등. 헤르만은 클라우디오가 라파와 계속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위하여 절대 하면 안 될 부정한 짓을 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뭔지는 알려드리지 않겠지만, 넷플릭스 TV 드라마 교권수호국인가 뭔가에서 나온다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커넥션, 비슷하기는 하지만 절대 대가 없는 커넥션도 등장한다.

  내 경우에는 많은 문제 제기 가운데 헤르만이 아니라 교사 사모인 후아나가 벌이는 작문에 대한 검열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당신은 어떤 이슈를 재미있게 읽을 지 모르겠다. 후안 마요르카, 이 65년 뱀띠 아저씨, 거 참 재미있게 쓰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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