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이 왜 바다에 있지
브리기테 슈바이거 지음, 박광자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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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브리기테 슈바이거의 내력을 읽어보니 <소금은 왜 바다에 있지>와 딱 같다고는 할 수 없어도 상당한 부분이 섞여 있다. 이 책이 슈바이거의 첫번째 작품이어서 자신의 경험을 많이 포함시켰겠지. 브리기테 슈바이거는 1949년에 오스트리아의 작은 도시 프라이슈타트에서 출생했다. 우리가 아는 오스트리아의 대도시 빈과 짤스부르크 사이에 있는데, 직선 코스는 아니더라도 하여간 두 도시와 거의 비슷하게 떨어진 곳이다.

  책의 내용과 비슷한 건, 아버지가 소도시의 유지였던 의사라는 것과,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해 심리학, 독문학, 영문학 등을 공부했지만 다음 해인 1968년에 결혼을 하는 바람에 때려 치웠고, 4년 만에 이혼했다는 거. <소금이 왜 바다에 있지>는 주인공 화자인 ‘나’의 결혼 당시부터 이혼이 종결될 때까지를 그리고 있다.

  실제의 슈바이거는 1968년부터 72년까지 스페인 출신의 남편을 따라 마요르카 섬과 마드리드에서 살다가 73년 이혼하자마자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교육학을 공부한 반면에, 작품 속의 ‘나’는 결혼 이후에 줄곧 린츠에서 살다 이혼한다. 린츠? 출신지인 오버외스터라이히주의 주도이자 오스트리아 제3의 도시이며, 아름답기로 이름이 높아 모차르트가 자신의 서른여섯 번째 교향곡의 표제를 붙인 도시.

  나는 린츠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니, 린츠를 발음하면 어딘지 밝은 기운이 나는 것 같아서, 좀 산뜻한 작품 아닐까 하는 기대도 했으나, 슈바이거는 생전에 책 속의 ‘나’처럼 우울증에 시달렸고, 신경정신과 쪽으로 질병이 있어서 2010년, 61세의 나이에 빈의 도나우 강변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단다. 투신 자살로 판정해 종결한 걸로 보인다. 책에서도 ‘나’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건 확실하고,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입원을 권유할 정도는 아닌 약한 수준의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 같다.


  ‘나’의 결혼생활을 그린 작품이란 건 위에서 이야기했다. 첫 장면을 결혼식 날 아침에 시작한다. 가족은 할머니와 부모, 그리고 ‘나’. 이렇게 4인 가족. 의사이자 동네 유지인 아버지는 어제 이발소에 가서 이발도 하고 면도도 깔끔하게 했다. 대개 남자들이 그렇듯이 벌써 식장에 들어갈 준비를 마친지 한참이건만 엄마는 오래 시간을 끌면서 꽉 끼는 드레스의 지퍼를 올리기 위해 애를 쓰다가 간신히 잠글 수 있었다. 할머니는 시실리 화산에 관광을 다녀온 이후에 관절염이 심해져 이젠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비스듬히 발을 디뎌야 한다. 그래도 시간에 맞춰 아래층으로 내려왔는데, 정작 새신부인 ‘나’는 여전히 2층 ‘나’의 방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상태로 침대에 발랑 자빠져버렸다.

  남편 롤프. 아버지는 롤프가 참하고 괜찮은 녀석이라 하고, 어머니는 폴프를 보면 자랑스럽다는데, 할머니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얌전한 혼인이라고 말한다. 근데, 할머니의 삶의 지표인 얌전함과, 이 ‘얌전한 혼인’은 얌전한 결혼식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얌전한 ‘결혼생활’을 말하는 걸까? 책을 다 읽은 다음에 생각해보면 좀 헛갈린다. 이것일 수도 있고, 저것일 수도 있다. ‘나’는 확실하게 얌전한 결혼식에 임하려 한다. 놀랍게도 1960년대 후반에 벌써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는데, ‘나’는 말 그대로 남편이 될 롤프 외에는 성교를 해본 경험이 없다. 그러니 적어도 이쪽 방면으로만 말할 것 같으면 할머니가 바라는 대로 얌전한 신부인 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결혼에서 독자가 제일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주인공 ‘나’가 결혼식 하는 날 출발할 시간에 웨딩드레스까지 입은 상태에서 그냥 다시 침대에 벌렁 누워 버렸다는 거. 결혼식장에 가기 싫다는 말이다. 당신이 여성이라면 대부분 인생에 많아야 서너 번 밖에 없을 결혼식날, 웨딩드레스가 혹시라도 구겨질까봐 애달캐달 하는 게 정상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나’는 절대로 하느님을 믿지 않지만 혼례미사 때 신부神父한테 거짓말을 해버린다. 신부가 뭐라 중얼거리더니,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또는,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뭐 이런 질문이었겠지, 대답을 하라고 해서 얼떨결에 “예”라고 말해 버렸던 거다. 속마음은 “아니요”였음에도 그렇게 말했으니 틀림없이 거짓말, 십계명을 어긴 거다.


  롤프와 ‘나’의 친구 가운데 두 명을 소개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먼저 카를. ‘나’의 부모가 롤프에 대한 평가를 할 당시에 ‘나’가 전하는 부모의 의견을 말했더니 카를은 이렇게 말했다.

  “너네 부모님하고는 다르게 생각하지만 (결혼을 앞둔 너한테는) 노 코멘트.”

  카를은 대학을 졸업하고 학생들에게 인권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 인권 관련해서 실제로 지역에 있었던 인물과 사건을 예로 들었더니 아이고 이런, 그날 이후부터 교사들과 학생들 사이에서 외톨이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실제로 있던 일까지는 모르겠는데, 아직 직계가족이 생존해 있는 사람의 실명을 거론했으니 뭐 그럴 수도 있기는 하겠다. 카를은 시인. 자주 ‘나’에게 편지도 보내고 그러지만 그걸로 끝인 나이 많은 친구.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여성이 있어도 집안 반대가 심해 부부가 되지 못하니 그건 전적으로 카를이 알코올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카를은 작품이 끝날 때쯤 자진해 알코올 치료 병동에 입원하고, 퇴원 후 2년 동안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으면 애인과 애인 가족이 결혼을 허락할 것이라는 기대에 차 있다.

  다른 한 명은 알베르트. 예전에 카를이 말하기를, 알베르트야말로 한 교실에 있는 게 창피하지 않은 유일한 친구, 라고 평가했다. ‘나’의 고종사촌, 고모의 딸 힐데와 연애를 했다. 힐데는 TV 아나운서를 꿈꾸었지만 그것도 딴따라라고 (1960년대니까) 집안에서 반대를 하는 바람에 깨끗하게 포기하고, 대신 크지 않은 집과 알베르트를 구입했다. 정말로 알베르트를 “구입했다”라고 슈바이거가 썼다.

  그런데 문제는 ‘나’가 롤프보다 알베르트를 훨씬 전부터 더 마음에 들었다는 점.


  왜 ‘나’가 롤프와 멀어졌을까? 롤프는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 독자가 읽기에 그렇다는 것이지 정말 롤프의 마음이 그런 거란 말은 아니다. 롤프는 꽉 짜인 인생을 사는 인간형이다. 규격이 있으면 규격에 맞춰 자신의 삶 전체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사람. 이것도 나쁜 삶이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나’하고는 극적으로 맞지 않는 취향인 걸 너무 늦게 알았겠지.

  롤프는 공대를 졸업했다. 1학기를 다니다가 자신이 의학에 더 흥미를 느낀다는 걸 알았지만 끝내 공과대학을 졸업한 걸로도 모자라 박사학위까지 취득했으며, 그것도 아쉬워 디플롬 엔지니어 Diplom-Ingenieur학위까지 얻어, 오스트리아의 국책 철강회사에 다닌다. 그러면서 몇 년 후에 어느 직급으로 승진하고, 또다시 몇 년 후에 임원, 중역이 되고 등등의 계획이 다 있다. 하지만 두 개의 학위를 취득한 날 ‘나’는 괜히 썰렁한 기분이 들어 이제는 화요일 저녁엔 더 이상 그와 잘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을 정도이니 애초에 결혼을 하지 않아야 했던 것일 수도.

  결혼 전에 어느 날, 롤프의 팬티가 심히 거슬려서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으니, 이제 마법이 풀린 순간이었다. 마법이 사라지면 사랑은 어떻게 되지?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마법이 사라지면 사랑은 삶이 되고, 더 곰삭아서 정이 되는 거지. 원래 사랑의 유효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건 다들 아시잖아? 사랑만 파먹고 살 수는 없어 다시 먹고 사는 삶이 이어지는 거고, 시간의 이끼가 부드럽게 껴서 “사랑보다 더 슬픈” 정이 돈독해져 평생 그걸로 사는 거지.

  그러나 아직 19세, 너무 젊거나 어렸던 ‘나’는 몰랐다. 스무살이 되고, 스물한 살이 되고 더 나이를 먹어도 롤프는 그저 돈을 벌어오는 남자일 뿐. 반면에 ‘나’는 다니던 대학도 때려치우고 한 남자의 살림 도우미, 즉 식모이면서 벌어오는 돈을 사용하는 창녀. 근데 창녀한테는 포주가 있어야 하는 법. 좋다, 포주는 롤프, 네가 해라. ‘나’는 의사가 된 알베르트와 정신없이 외도를 시현하기에 이른다.

  이 장면에서 ‘나’가 가사도우미와 창녀와 다를 바 없다는 걸 롤프에게 따지고 드는 일로 이 작품을 페미니즘 소설로 읽는 독자가 무척 많아 데뷔작임에도 출간과 더불어 오스트리아와 유럽에서 큰 선풍을 일으켰다는데, 그건 1970년대에 그랬다는 것이지, 지금 관점에서 보아도 페미니즘 소설로 읽힐까? 내가 읽기로는 그저 처음부터 잘못된 결혼이 망해가는 모습을 그린 소설인 것 같다. 롤프 입장에서는 애초에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여자를 사랑해 결혼하고, 어쨌거나 돈을 벌어와 복지를 주면서 결혼 초부터 계속 삐걱거린 여자를 만나 이마에 뿔이 돋는 결과만 얻은 남자. 이를 전적으로 주인공 화자 ‘나’의 시각으로 보니까 원래 밴댕이 소갈딱지를 가진 속 좁은 남자로 보이는 불운한 사람이다. 이이가 정말 불운한 이유는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하여 차마 밝힐 수 없어 아쉽다.

  작품의 앞 부분을 읽으면서 그냥 그런 소설, 별점을 잘 주어도 셋 정도로 여겼다가, 후반을 읽기 시작했는데, 확 느낄 수 있던 것은 건조하면서도 공감을 전해주는 문장이 매력적이라는 거. 신경이 서서히 몰락해가는 과정을 실감나게 묘사하는 것 등등, 명작은 아닐지언정 한 번 읽어볼 만한 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드릴 말씀은, 한 번 읽어보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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