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리마 이야기 을유세계문학전집 76
바를람 샬라모프 지음, 이종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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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를람 티호노비치 샬라모프는 1907년에 러시아 블로그다에서 러시아정교 세습 사제의 아들로 태어났다. 모스크바에서 북서쪽에 나름대로 유명한 도시 야로슬라브가 있다. 거기서 정북 방향으로 모스크바에서 온 만큼 더 가면 조금 못 미친 곳에 있는 도시가 블로그다. 이곳에서 세습 사제를 했다니까 팔자 좋은 집안이었다고 생각하지? 조금은 맞는다. 하지만 1907년생 샬라모프가 열 살이 되자마자 러시아 혁명이 터져, 채 3년이 지나기도 전에 볼셰비키들이 모스크바에 있던 대성당을 폭파시키는 일이 벌어졌을 만큼 인민의 적인 종교를 거덜내기 시작했으니 이이의 팔자는 일찌감치 찌그러졌을 수밖에.

  1920년이면 샬라모프의 나이 열세 살 때. 그는 과감하게 신앙을 잃고 무신론자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러시아 정교 사제인 아버지가 벌컥 화를 냈을 거 같지? 그러지 않았단다. 이 사제님도 직업이 사제일 뿐 속마음은 왼쪽으로 팍 치우쳐 심지어 10월 혁명도 지지했다니까 말 다 한 거다.

  그러나 혁명으로 집권한 소비에트는 이제 전세계 공산주의의 어머니로 우뚝 서서, 무엇을 했느냐 하면 세상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권력투쟁에 돌입, 70년 후, 실패한 건 공산주의요, 성공한 건 1인 독재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열세 살에 무신론자를 주장한 샬라모프는 아빠가 교회 사제라서 국가로부터 교육지원을 받지 못해 모스크바 근교의 가죽공장에서 2년 동안 무두장이 일을 배우기도 했고, 이후 드디어 모스크바 대학에 진학 법학을 공부했다. 이 와중에 틈 나는 대로 시도 쓰고 러시아와 유럽, 미국 등의 문학작품도 탐독했다.

  좀 자세하게 말하는 이유는, 《콜리마 이야기》에서 작중 주인공급 등장인물이 콜리마의 산악지역에 있는 금광에서 채굴 작업자로 강제노동을 하는 먹물 출신 법학도 정치범이며, 굳이 법을 공부했다고 고백해 차별을 받을 필요가 없을 것 같을 지경을 만났을 때 하필이면 둘러대는 전 직업으로 무두장이를 선택한 일과 딱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건 절대 우연이 아닐 걸?


  그런데 샬라모프가 기껏 고른 정파가 하필이면 트로츠키파. 이러니 뭐 되는 게 있겠어? 급기야 소련혁명 10주년 기념 연설회에서 “스탈린 타도”를 외치다 잡혀 3년형을 받았는데, 스무 살의 젊디젊은 청년 샬라모프는 끝내 판사의 판결문을 인정한다고 서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1931년에 석방되어 식민지 개척을 위해 콜리마에 가서 일하지 않겠느냐고 권유를 받았을 때, 배포 좋게 호송인들에게 강제로 호위를 받지 않는 한 가지 않을 거라고 고집을 부렸다. 입이 방정이지, 그래 결국 1937년 자기가 말한 대로 그대로 됐다.

  1937년이면 1년여에 걸친 스탈린에 의한 대숙청 기간. 여기에 용코 없이 걸려들었다. 하물며 천재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조차 거의 언제나 한밤중에 체포하는 관행이 자신한테 닥쳤을 때 잠옷바람으로 달려가는 걸 바라지 않아 늘 외투 차림으로 침대에 들었을 때, 샬라모프도 예외가 되지 못했다. 죄목은 당연하게도 반혁명 트로츠키주의자. 그나마 사실상 처형을 의미하는 “가족과 연락할 수 없는 10년 유배형”이 아닌 5년 유형이었지만, 아뿔싸, 호송인들에 의하여 콜리마에 끌려가 금광에 투입되었던 것.

  그런데 《콜리마 이야기》를 읽어보면 모든 단편이 그의 두번째 투옥 때의 이야기는 아니다. 수용소에서 나온 후에 아직 모스크바에는 가지 않은 상태에서 1943년에 소련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자 이반 부닌을 “위대한 러시아의 작가”라고 했다가 스탈린 정부에 의해 다시 한 번 10년 교화형을 받아 다시 금광의 채굴꾼으로 끌려가 죽기 일보직전, 염라대왕 전에 들렀다 온 것까지를 망라한다. 영양실조와 발진티푸스가 겹쳐 샬라모프 본인은 깨어날 때까지 자기가 쓰러진 줄도 몰랐다고 하니 그것 참, 세상에 그런 일도.


  콜리마가 러시아의 어느 동네인가 하면, 일단 극동지역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북쪽으로 한참 올라가 캄차카 반도보다 더 높은 위도에서 시작해 북극해까지 잇는 콜리마 강과 콜리마 산맥 지역을 통틀어 말하는데, 이 지역은 몇 개의 코뮌이 나누어 관리하고 있을 만큼 넓다. 게다가 강제노동을 한 산악 지역은 평야 지대보다 섭씨 몇 십 도 정도 낮은 기온을 기록, 1년에 아홉 달이 겨울인데, 보통 영하 40도, 호흡하기 좀 거시기하면 영하 45도, 침 뱉으면 땅에 닿기도 전에 얼음으로 변했다 하면 영하 50도, 현지 사람들은 온도계가 없어도 거의 정확하게 현재 기온을 맞춘다고 한다.

  이런 곳에서 가장 조심할 것은? 졸면 죽는다. 근데 추우면 잠의 침략은 더욱 매섭다.

  열량 확보를 위하여 잘 먹어야 하지만, 기본으로 제공하는 부식이 워낙 하찮을뿐더러, 죄수 입에 들어가야 하는 정량의 대부분을 이놈이 떼 먹고, 저놈이 떼먹고, 다른 놈이 훔쳐가 거의 대부분은 아사 일보직전이다. 죽은 사람의 고기도 먹고, 덜 자란 병아리도 산 채로 뜯어먹는다. 그런 것이 다 용인되는 사회. 수감자들끼리 별 다툼도 없이 그냥 때려 죽여도 아무렇지도 않은 집단. 하물며 호송원이나 관리병들은 그러지 않기 망정이지 여차하면 살인을 취미생활로 할 수도 있는 곳.

  하지만 제일 중요한 수용자 살해는 수용자들 집단에서 자동적으로 지배 계급으로 떠오른 깡패 수감자들. 샬라모프의 유배지는 도스토옙스키 시대의 유배지가 아니다. 표도르 D. 선생이나, 네흘류도프가 졸졸 따라간 카추샤의 유배처와는 비교 자체가 힘들다. 우두머리 깡패 집단은 숙소에서 카드 도박을 하며, 최상위의 두목 깡패는 곧 숱한 무지렁이 수용자들의 생사여탈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에게 도착한 소포 등의 소유권까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둘째 손가락으로 지목하기만 하면 지목당한 죄수가 누구든지 간에 얼른 달려와 발뒤꿈치 각질을 살살 긁어주면서 감언이설을 속삭여야 한다. 소리 한 마당 해보라 하면 또 거절하지 못하고 쑥~대머리, 한 곡조 뽑아야 명을 보존할 수 있다. 그야말로 무소불위.


  이런 모든 광경이 적나라하게, 그러나 이런 비인간의 벌판에서 그곳에 떨어진 한 지식인의 감정은 모두 배제한 채 그냥 그런 광경을 드라이하게 묘사한다. 이런 측면에서는 또 같은 세대인 유형자의 아버지 솔제니친과도 다르다.

  혹시 이런 이야기에 흥미있는 분이라면 읽어보실 만하지만, 이제 지난 시절의 큰 슬픔을 다시 되돌아보는 일이 그리 탐탁하지 않다. 동상과 괴혈병 상처에서 멈추지 않고 흘러내리는 고름, 솔기마다 득실거리는 이, 닫은 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동안 문이 열리기 전에 죽지도 않은 어린 닭을 산채로 뜯어먹는 배고픈 죄수 이야기 같은 건, 거대 비극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그만 읽으면 안 될까 하는 마음이 드는 솔직한 심정을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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