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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멜 수녀들의 대화
조르주 베르나노스 지음, 정영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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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전적으로 프랑시스 뿔랑이 작곡한 동명의 오페라 원작이라는 이유로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서 읽은 책이다. 베르나노스가 소설가인 줄 알았는데 희곡도 썼구나. 어째 오페라를 들으면서 원작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거 참. 하긴 그거 가장 최근에 들은 게 못해도 15년은 됐겠다.
작품을 읽어보면 이건 연극 공연을 위한 희곡이 아니라, 희곡은 희곡인데 희곡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 대본 비슷하게 쓴 거 같다. 그렇다고 시나리오라고 보기 힘든 중간 정도.
조르주 베르나노스를 읽기 위해 내게는 진입장벽이 있으니 바로 종교의 벽. 내가 읽은 두 권의 베르나노스가 <사탄의 태양 아래>와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두 권. 제목부터 척 보면 독실한 천주교인이 쓴 작품이다. 유물론자인 나는 읽기가 그리 즐겁지 않다. 성서를 읽으면서도 성서는 오직 신자, 교인들을 위한 책이라는 생각을 한 종자라서 여간해 베르나노스하고 친해지지 않는다. 그래도 읽는 것은 뭐 작품이 매력이 있어서 그렇다.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도 영상이나 극, 딱 그것만 보고 읽으면 감동, 감화 가득한 작품이다.
사실상 프랑스 혁명이 시작하는 1789년 4월 27일과 28일, “부자들에게 죽음을!”이란 기치를 든 과격 시민들이 직공들의 임금을 대책 없이 깎아버린 벽지 공장 사장 장-밥티스트 레베용과 초석공장 소유주 사장 앙리오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화형에 처하고 그들과 다른 악덕기업의 사장 집을 차례로 약탈하기 바로 직전인 4월 26일에 이 드라마는 시작한다. 혁명 시작이 7월 14일이라고? 그건 시민군이 바스티유 감옥을 깨버린 상징적인 날짜이고 사실상 상퀴로트들의 폭발은 레베용과 앙리오를 비롯해 최고의 부자 동네 폴리 티통으로 쳐들어가 부잣집을 싸그리 약탈한 것으로 시작한다.
1789년으로 말하자면 가뭄이 극심해 시민들은 밀가루 구경도 못할 처지, 농사를 망친 농민들은 먹고 살자고 파리로 몰려들어 인구가 갑자기 많아지니까, 제조업 사장들이 임금을 후려쳐 대부분의 시민은 먹고 죽으려고 해도 하루에 수제비 한 그릇 구경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빵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다가 그래도 멍청했던 루이 16세가 모른 척하자 약탈을 시작했고, 그제서야 출동한 기마병들이 군중을 향하여 무차별 총격을 가해 본격적으로 뇌관을 터뜨려 버린다. 그게 1789년 4월 27일과 28일. 근데 솔직히 정확하다고 자신하지는 못하겠다. 지금 역사책 보고 베끼는 것이 아니고, 전에 썼던 프랑스 혁명 시기의 소설책 <7월 14일> 독후감 보고 쓰는 중이라서. 앗, 독후감 업로드 하는 오늘이 혹시 7월 14일 아녀? 이거 백퍼 우연이다. 그것 참.
시작은 비록 “부자들에게 죽음을!”로 했건만, 부르주아만 부자가 아니고, 귀족들도 당연히 부자인 동시에 대지주였다. 농업 부르주아인 귀족에서 천천히 상공업 부르주아인 신계급으로 사실상의 권력이 이동하던 시기. 상퀼로트들은 귀족 집안 역시 그간의 호의호식한 대가를 물어야 했다.
그리하여 첫 무대는 이런 정황을 밝히기 위해 들라포르스 후작의 저택에서 후작과 그의 아들이자 기사이자 주인공 블랑슈의 오빠가 어지러운 파리의 치안, 그리고 예민하고 겁이 많은 블랑슈가 하필 오늘 마차를 타고 나간 것을 걱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부자는 지금의 동요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수그러들 것이라 생각하고 싶어한다. 대부분의 귀족, 부르주아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조금 지나 블랑슈가 외출에서 돌아와 함께 이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 뒤에, 자신은 가르멜 수녀원에 들어가겠다고 고집한다. 그래서 들어간다. 무대극은 원래 쓸데없이 이야기를 길게 끌지 않는다.
처음이니까 견습수녀. 쉬운 얘기로 하면 새끼수녀. 다른 수녀들은 검은 캡을 쓰지만 견습은 흰 캡을 쓴다든가 하여간 그렇다. 수녀원에서도 귀족, 평민의 계급은 존재한다. 물론 천주의 관할 아래 평등하다고 주장하지만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 알게 모르게 다 그런 거지. 블랑슈는 후작 아빠가 특별하게 부탁해 일찌감치, 그걸 뭐라 그러나? 일종의 수계 같은 거, 정확한 말은 아니지만 수녀 수계를 받을 수 있게 조정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원장 수녀가 오늘 내일 한다. 그러다가 진짜로 죽는다. 죽으면서 사실상 수녀원에서 가장 영향력이 막강한 마리아 수녀에게 블랑슈 들라포르스를 공적公的으로 의탁한다. 이게 수녀원에서는 무서운 건가 보다. 한 번 의탁하고, 그러겠다고 했으면 정말로 돌봐야 하는 모양이다. 저 뒤로 가면 하여간 이 일 때문에 마리아 수녀가 목숨을 건지기는 했지만.
목숨? 수녀들의 죽음이 프랑스 혁명하고 관련이 없을 거 같은데, 천만의 말씀. 날짜가 조금 더 지나 혁명이 성공하는 쪽으로 접어들자, 주변 국가들이 왕실을 지켜주기 위하여 군대를 파병할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걸 눈치챈 시민군들, 그들 입장에서, 우두머리가 부르봉 왕가와 친밀해도 너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로마 교황청. 그리고 교황청의 졸개인 신부, 수녀들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 시민들이 그간 교회한테 고난을 받았지만 교육을 받지 못해 좀 무식한 시민군들은 교회가 그간 잘 먹고 잘 산 걸 무겁지 않게 징벌하는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 간혹 겉으로 왕따 당하기 싫으니 비슷하게 교회에 대고 지랄은 했지만 속으로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도 있었으니, 이런 자가 교회나 수도원에 밀려들어온 시민군에 속했으면 그나마 팔이 안으로 굽었겠지? 말하면 뭐해. 당연하지. 사는 일이 다 그래.
가르멜 수녀원을 보면, 원장이 죽고 새 원장으로 당연히 마리아 신부가 될 줄 알았는데, 이 와중에 귀족의 딸인 마리아 수녀가 원장을 하는 것보다 마리아는 마리아지만 시민의 딸인 성 아우수스티노의 마리아가 원장 자리에 오른다. 새 원장이 자신도, 자기가 시민 출신이라 아무래도 많이 배운 귀족의 딸, 강생의 마리아가 원장이 되어야 했다는 걸 새 이해하고 안다. 그래서 극을 진행하며 생기는 많은 일을 마리아 수녀와 상의하는 절차를 거치고, 가끔가다 새 원장 자신이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경우에는 마리아 수녀 역시 기꺼이 순종의 의무를 따른다.
당연히 블랑슈가 제일 어린 수녀. 바로 위에 콩스탕스 수녀. 덩치 좋고, 발랄하고, 늘 즐겁고, 낙천적인 성경이라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 앞으로 블랑슈 앞에 닥치는 많고 많은 겁나는 일, 우유부단, 어려움으로부터의 회피 같은 것을 하려할 때마다 자주 도와준다. 자주, 언제나. 물론 콩스탕스의 뜻대로 블랑슈가 늘 따르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수녀들. 이 가운데 호호 할머니 수녀도 있다. 세상 경험이 많고 이제 곧 이미 죽은 원장 수녀를 따라가야 하는 이. 어린 수녀들을 포용하는 그릇이 크다. 이이를 뺀 기타 수녀들은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듯이, 이런 수녀도 있고, 저런 수녀도 있다.
이들이 혁명기의 곤란을 겪으면서, 결국 기요틴 아래에서 목이 떨어지는 스토리.
따라서 수녀원이 배경으로 깔리는 순간, 천주의 뜻, 원장에 대한 순명, 순교에 관한 “대화”가 무진장 쏟아진다. 무식한 독자인 내가 도무지 모르겠는 것은, 수녀들의 아버지인 천주께서 시민, 상퀼로트들로 하여금 수녀원을 약탈할지언정 수녀들의 목숨을 살려주는 판결을 하게 하면 될 것을, 왜 수녀들로 하여금 순교를 하게 만들었을까?
그게 우습더라니까? 구약성서를 보면, 기껏 자기 아들 딸을 만들어 놓고, 틈만 나면 이들을 시험에 들게 해서 자식 가운데 제일 큰 아들을 칼로 후벼 죽여 자신한테 바치라고 하지 않나, 애굽의 모든 장자를 하룻밤 사이에 몰살시키고 애굽을 떠난 모세 무리를 광야에서 몇 십 년 헤매게 하지를 않나.
근데 이게 나 같은 집 나간 불쌍한 검은 양의 생각이지 독실한 가톨릭 환자인 막내 외삼촌네 식구들은 그것도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 하니 뭐 그런가보다 할 수밖에. 그건 이해하더군. 신자가 아닌 사람이 성서를 읽으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흠. 난 당연한 사람이야. 뭘 이해해야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성서는 이해해서 읽는 게 아니라며? 그냥 무조건 믿는 자에게 복이 온다며?
이 책을 읽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뿔랑의 오페라였다는 건 제일 앞에 썼다.
오페라 전부 다 감명 깊다, 이렇게 말하면 이건 생 구라고, 지루함을 참고 참으면 드디어 반가운 마지막 장면이 나온다. 가르멜 수녀 열여섯 명이 ‘성모 찬양 Salve Regina’를 부르며 기요틴 아래 대기하고 있다가 한 명씩 처형대를 향해 걷어 무대에서 사라지고 잠깐 후, 써~억, 하는 살 떨리는 소리가 날 때의 섬뜩함. 그럼 소름이 쫙 끼치는데, 그걸 듣기 위해 두 시간 동안 스피커 앞에 앉아 있는 거다. 제일 처음에 DVD로 당시 유행하던 홈 씨어터라는 장치로 봤는데 써~억, 하는 기요틴 도끼날이 자유낙하 하는 음향이, 아이구, 죽여줬다니까. 그래 곧바로 켄트 나가노가 지휘하는 버진 클래식 레이블 CD를 사서 듣기 시작했다.
듣다, 듣다 그렇게 소름끼치는 피날레는 처음 들어봐서. 당신도 한 번 경험해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유튜브 한 장면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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