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의 개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2
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외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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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교유서가에서 펴낸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선” 세 권을 다 읽었다. 취향에 맞는 독자들은 열광할 수 있는 작가. 나처럼 취향은 아니라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내기, 도박, 사기, 엽기 이야기들.

  이번 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인기있는 역자 가운데 한 명인 정영목이, 자신이 교수로 있는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제자 박종윤, 손명희, 이혜정, 정해영, 최희영, 이렇게 다섯 명한테 작업을 시켰다는 점. 정영목 자신도 역자 제일 위에 이름을 박았으니 뭔가 작업을 하긴 했겠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이런 것 가지고 시비냐고? 지금 시비하는 거 아니다. 오해 말라. 눈에 띈다고 했을 뿐.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 근데 스승과 제자 다섯 명의 문장이 구분이 가지 않는다. 거 참 잘 배웠네. 다만 좋은 스승한테 배웠으면 청출어람의 미덕을 보여야 하건만 마치 한 명의 글을 읽는 것 같아 좀 그랬다는 거다. 책 뒤에 습관적으로 싣는 “역자해설” 또는 “역자의 말” 같은 것을 달고, 그 속에서 어느 작품을 누가 번역했다는 표시를 왜 하지 않았을까? 아예 “역자해설” “역자의 말” 같은 건 있지도 않다. 이거 큰 건 아니지만 조그만 반칙 아냐? 네 명의 제자들도 섭섭하겠네. 기껏 작업해 놓았더니 내가 무슨 작품을 번역했는지 표시도 안 해주고. 당연히 받았겠지만, 번역비는 두둑하게 챙기셨지, 들?


  《클로드의 개》는 로알드 달의 전매특허인 크고 작은 내기, 도박, 사기는 별로 없고 대신 그로테스크한 엽기 소설이 많다.

  이 책에 실린 작품을 보면, 크게 《클로드의 개》라는 타이틀 속에 다섯 편의 단편소설이 있고, 따로 일곱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제작이 1953년 발표작이니 당시 출판 관행으로 보면 《클로드의 개》 다섯 편의 단편으로 책 한 권을 찍었을리 없지만, 그래도 요즘 독자는 혹시 그러했고, 여기다가 일곱 편의 작품을 보태 우리나라에서 한 권으로 편집한 것인지, 아닌지 궁금하기도 하다. 뭐 중요한 건 아니다. 신경쓰지 마시라.


  《클로드의 개》는 주인공 가운데 좀 덜 주인공인 화자 고든과, 고든이 운영하는 중고차 판매점과 주유소에서 일하는 고용인이자 진짜 주인공인 클로드, 두 명이 자기들이 살고 이는 그레이트 미센든 주변에서 벌이는 일종의 도둑질, 사기도 있고, 동네 사람들이 저지르는 엽기도 있다. 끽 해야 달의 소설집 두 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처음 읽은 달인 《맛》이,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워낙 감명깊어 달, 하면 기발한 내기와 도박 이야기이겠거니 하는 기대가 있었다.

  《클로드의 개》의 첫번째 작품 <세계 챔피언>은 도둑질. 달스럽다. 두번째 <피지 씨> 딱 이런 걸 기대했는데 사기fraud 그리고 사기 위에 또 사기. 역시 달스럽다. 그런데 세번째 <쥐잡이 사내>는 돈 걸고 내기해서 겁나게 큰 쥐를 깨물어 죽이는 사내. 이렇게 그로테스크 또는 엽기를 시작한다. <러민스>는 지미 씨가 동네에서 사람 좋기로 이름이 났지만 술꾼인 러민스 씨를 건초 작업 중에 살해해버리고 건초 속에 숨겼다가, 날이 흘러 건초를 해체하는 작업 중 지미의 아들 버트가 건초 절단용 전기톱으로 이미 죽은 러민스 씨를 토막내는 이야기 역시 엽기. 아, 장소는 영국이다. 전기톱 나왔다고 B급 영화 <텍사스 전기톱> 연상하지 마시라. 마지막 <호디 씨>는 주인공 클로드가 애인 클라리스 호디의 아버지 집에서 결혼 승낙을 받는 촌극. 클라리스한테 장가만 들면 손 끝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해주겠다고 큰소리 뻥뻥 치다가, 자기가 구상중인 혁신적인 아이템의 사업 이야기를 하는데, 그 빌어먹을 혁신 아이템이 낚시꾼들에게 미끼용 구더기를 길러 판매한다는 것. 돈도 별로 들지 않는다나? 그저 뚜껑 절단한 드럼통 두 개와 썩은 고기 몇 덩이, 양머리 하나만 있으면 똥파리들이 알아서 알을 까고 토실토실한 구더기가 몽글몽글 기어다닐 거란다. 이건 코믹 그로테스크 맞지?


  그리고 《클로드의 개》 아래 붙인 일곱 단편도 거의 그로테스크 또는 엽기 작품이다.

  갖난 딸이 분유를 통 먹지 않아 배배 마르기 시작하자 양봉업자 아빠가 로열 젤리를 먹여 아이가 가슴에 솜털이 돋는 등 점점 꿀벌의 외양을 갖추기 시작한다는 것도 있고, 하여간 여러가진데, <윌리엄과 메리>가 제일 엽기였다.

  외모에 자신이 없는 옥스포드 교수 윌리엄은 두뇌 하나만큼은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살다가 덜컥 암에 걸렸다. 길어야 몇 달 밖에 못 산다는 판정을 받고 병실에 누워 있는데 신경외과 전문의이자 친구인 랜디가 방문한다. 그리고 곧 고인이 될 환자를 살살 꼬드긴다.

  죽으면 뇌에 인공심장을 달아 피와 산소를 공급해 보관하자고. 그러면 길면 4백년 정도 아무 삶의 고통 없이 당신의 지적 사색이 가능하게 될 것이니 허락을 해달란다. 뇌에 유일하게 연결할 수 있는 감각기관은 시각. 즉 볼 수만 있고, 말, 청각, 촉각 즉 신체적 고통, 감각 즉 정신적 고통 없이 유일하게 뇌에 연결되어 있는 눈을 통해 몇 백 년 동안 책을 읽으며 지식을 확장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래서 그렇게 한다.

  윌리엄이 1950년대 보수적인 옥스포드 교수였던 만큼 아내 메리한테 완벽한 가부장적 독재를 펼쳤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기타 등등. 그래 자기 사후 처리에 관해 메리한테 서신을 통해 죽고 일곱째 날에 알게 해, 메리는 윌리엄이 지시한대로 의사 랜디에게 전화해 죽은 자기 남편 윌리엄의 뇌가 아크릴 세수대야에 담겨 동동 떠 있으며 눈알 하나가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현장에 가서 직접 목격한다. 당신 같으면 어떻겠어? 징글징글하니 정이 똑 떨어지겠지?

  메리는 어땠을까? 안 알려드린다.

  읽기로 했던 달의 세 권을 다 읽었다. 앞으로 그의 책을 더 읽는 일이 생길까? 있을 수 있겠지만 쉽지는 않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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