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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들은 밤에 찾아온다
세스 노터봄 지음, 김영중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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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 2009년에 출간한 책이니 노터봄의 나이 76세 때. 계유생이지만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아 지금 92세네.
나이 일흔여섯이면 이제 죽음이 보이려나? 그럴 수 있겠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근데 가끔 죽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는 한다. 이제 몇 년 남지 않았겠구나. 뭐 이런 생각. 가끔은 얼른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고.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나는 전혀 들춰보지 않는데 노터봄은 가끔 앨범을 넘기는 모양이다.
어떻게 영정사진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는 젊은 시절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쓰고 싶다는 의견이 꽤 많다. 더 보기 좋으니까. 몇 살 때 찍은 거? 너무 젊으면 또 그러니까 한 마흔에서 쉰 사이가 좋을 듯하단다. 난 싫다. 지금쯤 찍은 게 더 좋다. 마흔에서 쉰 넘어까지 예순에도 너무 뚱뚱했다. 지금 살이 쏙 빠지니까 보기 좋다. 쪼글쪼글해도 마음에 든다. 뚱보들이여, 무지 힘든 건 내가 해봐서 아는데, 살 좀 빼 봐라.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 다만 입던 옷 다 버리고 새 옷 사야 해서 돈이 좀 든다. 살 빼는 게 무지 힘들어서, 그래서 기회가 생기기만 하면 진짜로 20kg 뺀 걸 자랑하고 싶다. 괜찮지? 귀엽게 봐줘.
노터봄, 하면 여행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서도 고향 네덜란드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 않는다. 세계를 다니며 여러 나라 사람들과 마주치고, 어울리고, 사진찍고, 기억하고, 기념한다.
제일 앞에 실린 <곤돌라>. 곤돌라니까 이탈리아 베네치아 이야기일 터.
막이 올라가면 암스테르담 출신 예술담당 프리랜서 기자가 베네치아에서, 캘리포니아 밀스밸리에서 온 1960년대 플라워파워 시대의 여자 아이와, 그리스 해안에서 만났다. 기자는 일종의 이혼 기념 여행이었다. 이혼한 것을 딱하게 여긴 친구들이 그리스 어느 섬에 있는 한 친구 소유의 집을 소개해주어 떠난 길이었다. 그 섬에서 만났다. 이탈리아 이름을 가진 미국인. 열여섯? 열여덟? 뒤에 정확한 나이가 나오는데 열일곱이었다. 손과 팔에 12궁 별자리를 문신한 자칭 마법사 소녀. 마녀는 그의 집에서 묵기로 했다. 같이 자되 잠자리는 하지 않는 조건으로.
프리랜서 기자는 이혼남. 이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욕망이 끓었단다. 기자 입장에선 약속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시도조차 안 해보는 것도 찜찜했겠다. 마녀의 머리를 잡고 키스를 했고, 입술을 떼자마자 마녀는 손으로 그를 밀어내고 마법의 힘인 것처럼 곧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스의 섬에서 며칠 지낸 기자와 마녀는 기차를 타고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 가서 하루 묵는다. 맥주집에서 슬로보비치라는 술도 마시고 빈 잔을 어깨 넘어 깨뜨려 우정을 쌓기도 했다. 다음날 다시 기차에 올라 베네치아로 갔다. 어느 호텔에 묵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마녀의 사진을 어디서 찍었는지는 안다. 원양어선도 묶어둘 수 있는 선박 계류용 말뚝. 그 위에 올라 앉은 열일곱 살짜리 작은 아가씨. 여러 사진 가운데 한 장.
그러나 이것이 40년 전 이야기이다.
세월은 흐른다. 그간 암스테르담에서 청탁을 받아 글을 하나 썼다. 많은 글을 썼는데 하필이면 이 글을 미국에 사는 예전의 그리스-유고슬라비아-베네치아 마녀가 보고 읽었다. 네덜란드 화가,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이너, 그래픽 아티스트인 야코바 판 헤임스케르크에 대해 그가 기고한 평론을. 옛 아가씨도 간혹 기자를 생각해왔는데 마침 글과 이름을 만나니 반가웠겠지. 그래서 기자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 속에는 사진도 두 장이 동봉되어 있었다. 마녀는 결혼을 했다가 이혼했으며 아들이 둘 있고, 야코바 판 헤임스케르크 같은 그림을 그리며 산다면서. 마녀의 얼굴은 명상 센터의 벽면에 걸릴 법한 얼굴의 여인. 집 인근의 수도원에서 큰 위안을 찾았으며 불교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알려왔다.
기자는 옛 시절의 마녀를 만나러 갔고,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드디어 만났다. 한순간 서로를 평가하는 번개같이 빠른 눈빛을 교환했으며, 극도의 날카로움이 담긴 내적 사진, 눈가 주름, 붉은 빛이 도는 머리칼, 갑작스런 연민과 다정함을 부르는 세월의 흔적 또는 할퀸 자국을 확인했다. 그녀는 편지를 써야 한다는 암시를 받아 그렇게 했을 뿐 그가 정말로 오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왔다. 와 버렸다.
마녀를 만나고 시간이 더 지났다. 20년. 그동안 마녀는 죽었다. 기자는 편지를 주머니에 넣어 베네치아에 왔다. 사진을 찍은 곳. 베네치아의 석호 계단. 마녀의 사진들 가운데 한 장을. 기자는 편지를 읽지 않은 채 석호에다 슬쩍 버렸다. 뒤에서 누군가 그걸 보고 말했다.
“석호가 편지를 버리는 쓰레기통이로군.”
석호에다 편지를 버린 남자가 기자 한 명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세상 누구라도 비슷한 추억이 있었던 것이겠지.
이렇게 죽음을 주제로 하는 작품 여덟 편. 그런데 “여우들은 밤에 찾아온다”고?
그렇다. 예전에 할머니가 해준 이야기. 어둠 속의 두려움. 어둠 속에서만 찾아오는 당신에 대한 두려움. 이미 죽은 당신의 이야기. 당신의 등장, 당신의 모든 것에 대한 두려움. 그것 모두 그냥 여우라고 해 두자. 죽음과 죽은 다음에 관한 책. 그리하여 여우는 밤에만 찾아온다고 할머니가 저 옛날 화롯가에서 말씀하셨지. 얘야, 여우는 밤에 찾아온단다. 그러니 얼른 자거라. 자장자장 자장자장… 자장자장 자장 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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