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 필로소픽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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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두 권을 읽었는데 모두 10년을 훌쩍 지나버렸다. 두 권 가운데 <소멸>은 책을 붙들고 금요일 밤 꼬박 새워 읽었다는 것 말고는 전혀 기억나지 않고, <몰락하는 자>는 하필이면 글렌 굴드와 동문수학하게 된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천재 굴드 때문에 절망할 수밖에 없게 되는 이야기 정도로만 남아 있다. 둘 가운데 한 명이 아마 목매달아 죽어버리지? 이 수준이다. <소멸>은 독후감 쓰기 시작한 초기에 읽어서 작품의 정보도 제대로 써놓지 않았다. 당시에 토마스 베른하르트가 조국인 오스트리아와 대판 쌈박질 한 번 하고 정나미가 뚝 떨어져 자기가 쓴 무슨 책을 오스트리아에서 출판하지 말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거 같다. 그게 시간이 지나니까 아 씨, 나 죽기 전에 조국 오스트리아 땅을 밟지 않을 거야, 이렇게 희뿌연 기억이 자가발전을 해 여태 오해하고 있었고. 그러니 누구나 자신의 기억을 믿으면 안 된다. 그래서 기록을 해 놓아야 하는 법이다. 일기를 써라. 일기 속엔 거짓이 없다고 할 수 없어도 제일 작은 거짓을 적었을 터이니 가장 정확한 기억일 터.


  작품은 오스트리아의 국가대표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5촌 조카 파울 비트겐슈타인과 토마스 베른하르트 작가 본인. 이렇게 두 명이 주인공이고, 이 둘의 우정 주변에 있던 인물 몇 명이 조연으로 우정출연한다. 알다시피 베른하르트는 결핵을 품고 살았다. 하필이면 폐 근처에 있는 심장까지 좋지 않아 평생 고생한 거 같은데, 결국 1989년에 58세의 나이로 심장에 문제가 생겨서, 갔다.

  죽기전에 병 때문에 황천길 제일 가까운 곳까지 갔다가 다시 온 경험이 있다. 빈Wien 서쪽에 드넓게 펼쳐진 빌헬미네 산지를 두 구역으로 나누어 불렀는데 하나는 베른하르트가 입원한 폐병 환자들을 위한 작은 구역인 ‘바움가르트너회에’이고, 넓은 구역은 ‘암 슈타인호프’라고 하는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구역이었다. 이곳 병동은 전부 남자 이름을 붙인 건물이어서 베른하르트가 길어야 한 두 달 정도 더 살 수 있다고 판정을 받아 일생일대 큰 수술을 받은 곳이 헤르만 병동이었고, 하필이연 같은 시기에 약 5백미터 떨어진 암 슈타인호프의 루트비히 병동에 ‘수감’되어 악명높은 전기치료 같은 걸 감내하고 있던 이가 파울 비트겐슈타인이었다.


  파울이 베른하르트(이하 “토마스”)와 친하게 지내게 된 건 음악 때문이었다. 빈의 블루멘슈톡가세, 여기서 ‘가세Gasse’는 큰 길 말고 좁은 거리나 골목 같은 걸 칭하는 말로, 하여간 그곳에 음악에 대단한 관심, 아마도 프로페셔널한 비평을 할 수준의 소양이 있는 여성 이리나의 집이 있어서 토마스가 불쑥 찾아 갔더니 마침 카를 슈리히트가 지휘한 런던 필하모닉의 하프너 교향곡에 관해 이리나와 파울이 열라 재미있게 토론을 하고 있었나 보다.

  책에는 슈리히트라고 성姓만 부르는데, 이이는 19세기에 출생해 20세기 중반에 전성기를 구가한 지휘자이다. 나치가 집권하고 전쟁에 돌입하자 스위스로 몸을 피했다가 종전 후 주로 독일에서 연주한 걸로. 우리나라 클래식 골수팬들 가운데 이이가 연주한 베토벤을 제일 좋아한다고 떠드는 사람도 많다. 음악 포털 “고전은 가라”에 가보시면 꽤 모여 있을 듯.

  이 슈리히트가 언제 죽었느냐 하면 1967년 1월. 그러니까 토마스는 폐병 병동에, 파울은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을 때 죽은 사람이다. 하여간 토마스가 몇 년 전에 이리나의 집에서 자기도 무척 좋아하는 하프너 교향곡, 모차르트 K.385 공연을 직접 관람한 바로 그 공연에 대해 침을 튀었으니 방에 모인 세 명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슈리히트와 모차르트와 K.385 찬양에 날밤을 새웠다는 거 아니냐.

  흠. 나는 모차르트 교향곡 중에서는 딱 두 개밖에 없는 단조, 그것도 우연히 둘 다 사단조 교향곡인 25번과 40번이 좋던데 말이지. 특히 40번 3악장의 미뉴에트, 경쾌한 발랄함이라니!


  그런데 토마스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 하면, 뭐 독자야 작가가 하는 말을 웬만큼 믿을 수밖에 없지만, 이 파울 비트겐슈타인으로 말씀드리자면, 당대 최고 수준의 음악과 문학과 철학과 미술과 수학과 기타 등등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뇌활동에 관한 한 거의 최고 정점에 위치한 인물로,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탁월한 자”의 수준에 완벽하게 도달한 인물이다. 그리고 겸양의 말씀이겠지만 자신,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이 파울 비트겐슈타인에 조금, 아주 조금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약간 덜 탁월한 자이고.

  게다가 파울은 무기 제작 회사를 가업으로 하는 비트겐슈타인 가문의 직접 상속자로 어마어마어마한 재산을 상속받은 백만장자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젊음을 소진한 중년이었다가 나중에는 노년이 되고 결국 그렇게 죽는 인간으로, 살면서 노동이란, 그 많던 재산을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는 불쌍한 사람들한테 다 나누어 주거나 사기도 당하면서 완벽하게 거덜이 난 상태에서 이때는 벌써 낼 모래 환갑상 받을 때인데 처음 보험회사 사무직으로 ‘취직 당해’ 근무해본 것이 유일하다.

  음악을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아해 모든 오페라하우스의 시즌을 다 경험해보기 위하여 세계일주를 감행했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쓴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에서 체르비네타 역과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을 노래한 미국 소프라노를 애인으로 두기도 했다. 자기가 언제나 묵을 수 있는 호수가 딸린 대지가 있는데, 호수 위에 수상 무대를 짓고 그 무대에서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R. 슈트라우스의 <그림자 없는 여인>을 공연하는 걸 결국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게 되는 사람. 말러와 브루크너와 바그너 같은 대규모 편성을 좋아하다가 나중에, 내가 보기에는 너무 늦게 실내악으로 되돌아가 줄리아드 사중주단과 부다페스트 사중주단을 즐겨 듣게 되었을 때는 이 백만장자 거부가 방 하나에 부엌, 화장실과 작은 욕실이 달린, 언제나 고장나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의 꼭대기에 씻지 않은 접시가 쌓인 산더미와, 빨래하지 않은 천들이 널부러져 무더기 지어 있는 욕실에서, 부자 친척이 입다 버린 고급 비단 옷을 입고 남의 눈에 띌 새라 장 본 것을 비닐 봉지에 담아 비척거리며 계단을 올라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죽었다. 이때가 1979년.


  3년이 더 흘러 1982년.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자신이 말하기를 거의 유일한 친구였던 파울 비트겐슈타인과 함께 했던 1967년부터 1979년까지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이제 내가 읽었다. 2026년에. 그리하여 이들과 나 사이에는 화해하기 어려운 배타적인 매개체, 시간이 놓여 있다. 나름대로 받아들이려 감안은 하겠지만 그래도 쉽지는 않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내 스타일을 버렸다. 메모하지 않았다. 대신 책갈피를 몇 장 꽂았다. 첫 번째 책갈피가 42쪽에 꽂혀있다.


  “그를 만나지 못하는 동안 나는 참으로 파울의 머리가 그리웠다. 그동안 수백 개의 다른 머리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유감스럽게도 오직 앙상하고 황폐하기만 한 그 머리들 때문에 질식할 만큼 괴로웠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흔하게 마주치는 머리들을 상대하는 것은 다 자란 감자 알갱이들과 대화하는 것처럼 지루할 뿐이다.”


  그러니까 월등한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자기보다 눈썹만큼 더 월등한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제외한 오스트리아 빈에 사는 (아마도 지식계층) 사람들의 지능수준이 그저 다 자란 감자 알갱이 수준이라는 말이다. 세상을 이렇게 오만하게 살아도 된다고 인정받은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정작 그렇게 인정을 받은 사람이 만약 진짜 있다면, 그 오만해도 되는 사람이 정말로 오만하게 살았을까? 오직 덜 떨어진, 좀 아는 새끼들, 혹은 아는 척하는 새끼들이나 이런 마음을 갖는 거 아냐? 여태 베른하르트 선생을 이렇게 보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거 참 진정한 개 호로새낄세.

  그런 토마스가 경애했던 파울 비트겐슈타인의 젊은 시절을 되살려보는 토마스.


  “그가 한때 전 유럽, 구 유럽뿐 아니라 신 유럽의 모든 최고급 호텔까지도 최고 신사의 신분으로 들락거렸던 사람이라는 것도 좀처럼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또한 수십 년 동안 빈 오페라 극장에서 환호성을 지르거나 휘파람을 불어댐으로써 오페라 공연을 절정으로 끌어올리기도 하고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했던, 바로 그 당사자라는 것도 전혀 믿어지지 않았다. (중략) 자신이 몇 번이나 파리에 갔는지, 몇 번이나 런던과 로마에 갔는지, 샴페인을 몇 천 병이나 비웠는지, 여자들을 몇 명이나 유혹했는지, 읽은 책은 도합 몇 권이나 되는지를 헤아려보곤 했다.” (p.84)


  노동하지 않고 즐기기만 한 파울 남작 비트겐슈타인. 유럽의 귀족 자재이자 은수저를 입에 물고 난 부르주아 꼭대기에서 자진해 비렁뱅이로 추락해 쓸쓸하게 죽은 자.

  이 책의 목적은 117쪽에 직접 토마스 베른하르트가 밝혔다.

  “내 친구 파울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내 인상을 종이에 옮기는 것이 전부.”

  스스로 자기 둘이 대도시 스타일의 우월한 자, 탁월한 자. 그래서 일반 대중을 다 자란 감자 알갱이, 감자 덩어리도 아니고 거기에서 부스러져 나온 감자 알갱이로 알고 평생 산 두 인간의 관계 이야기를, 우리 가운데 누구는 돈 주고 사서 읽었고, 누구는 빌려 읽었다.

  내 스마트폰에 깔린 앱 북적북적에 별 셋 반을 올렸다. 탁월한 자 가운데 한 마리인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한 문단짜리 글이 몰입감 있게 스토리를 끌고 나가는 힘에만 준 별점이다. 내용에 관해서는 하나도 아깝다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 토마스와 파울, 너희들 만의 샹그릴라. 그 속에서 행복하라. 나, 감자 알갱이 하나는 개똥을 밟아도 땅 위에 좀 더 있을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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