죔레는 거기에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30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김보국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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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작품. 모두 11장으로 되어 있다. 그러면 다 합해 11개의 문장이겠지? 아니다. 나도 놀랐다.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한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다 읽어봤는데, 모든 작품 가운데 가장 짧은 문장으로 <죔레는 거기에>를 시작한다.


  “더 이상은 불을 때지 않겠다.”


  이렇게 결심한 사람은 주인공 카다 요제프. 오늘 1월 6일에 92세가 된 노인이다. 이 정도로 나이가 든 노인이 주인공이면 많은 소설작품 속에서 주인공이 사망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크러스너호르커이도 그럴까? 안 알려드린다. 재미있는 책이니 직접 확인하시라는 의미에서. <뱅크하임 남작의 귀향> 때부터 알아봤는데, 그거 말고도 <헤르쉬트 07769>처럼 크러스너호르커이 역시 종말론적인 무게감 넘치는 작품이 아닌, 읽으면서 키득거릴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 작품도 썼다. 이 책에서는 주인공 자체가 익살극이다.


  카다 요제프의 가계를 이해하기 위하여 헝가리 역사를 13세기까지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이 당시 몽골의 오코타이 칸이 헝가리 왕국을 점령하고 벨러4세에게 철군의 조건으로 아름다운 공주 욜란더를 자신의 아들이자 위대한 칭기즈칸의 손자인 카단 칸의 아내로 맞았다. 그런데 혈통이 문제다. 카단 칸은 노랑머리 여인과의 혼인 사실을 몽골의 왕족한테 보고하지 않았고, 벨러4세 역시 이 혼인을 교황이 승인하지 않을 것임을 알아 숨겼으나, 카단 칸과 욜란더 사이에 아들이 생긴다면 헝가리의 아르파드 왕가를 이어갈 보험으로 사용할 수 있겠다고 여겼다.

  카단 칸이 욜란더를 지극히 사랑해서 철군과 함께 돌아가지 않고 헝가리 땅에 살며 성姓 ‘카단’에서 n자를 삭제해 카다라는 이름으로 가계를 이루어, 아름다운 욜란더의 남편이자 아들 카다 벨러의 아버지로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카다는 5년 후에 숟가락을 놨다. 아직 법적으로 혼인한 적이 없는 욜란더는 이후에 폴란드의 한 공작과 다시 결혼해 갔고, 아들은 헝가리 왕 벨러4세가 거두어 철통 같은 보안 속에서 자라며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신자가 되려면 세례를 받아야 하는 법. 이때 헝가리 왕가 아르파드 가문의 카다 벨러라는 이름을 받아, 이후 750년간 혈통을 유지해왔으나, 망한 왕조의 왕가들이 늘 그러하듯, 이 후손들도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숨겼으니, 마지막 아들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카다 요제프 되시겠다.


  문제는 1944년의 일. 19세기 후반부터 1차세계대전 종전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란 이름으로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의 황제들에게 지배를 받은 헝가리 사람들은, 2차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자 다시 합스부르크 왕가의 망령을 떠올렸다. 불안은 근거 없이 찾아오는 법. 과거의 그들이 종전과 혼란의 틈을 타 다시 헝가리를 넘볼지도 모른다는 다급 및 조급증이 생겨 1944년 6월, 당시 왕이 없는 헝가리 왕국의 섭정을 맡은 호르티 미크로시가 아르파드 왕가의 유일한 후손인 젊은 카다 요제프를 부다 성으로 불러서 갔더니, 그곳에는 호르티 섭정을 위시해 총리와 장관들, 독일국가를 대표한 사복입은 사람 한 명과 국회의장, 세르디 유스티니안 대주교 추기경 등이 모여, 카다 요제프를 헝가리 왕국의 적통을 이어받은 왕위에 오르는 대관식을 거행해주었다. 이렇게 주장한다.

  즉 자신은 벌써 왕이며, 이때 에스테르곰 대주교 추기경이 자기 머리 위에 아르파드 왕조의 창업군주 이슈트반1세가 만든 왕관을 씌어 주었으며, 대관식이 끝난 후에는 섭정이 직접 관을 내려 다시 추기경에게 보관하라고 당부했단다. 호르티 섭정은 카다 요제프가 헝가리 왕국의 왕임은 사실이지만 지금 세계정세가 급변하고 있어 이를 널리 공포하지 못하는 점을 감안하여 이 영광스러운 대관의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은, 신임 왕 카다 요제프1세를 포함하여 모두 대관식과 새로운 왕의 즉위를 엄중한 비밀로 유지하기 바란다고 당부, 사실상 명령을 내렸다.


  다른 것도 아니고 왕위에 관한 것을 함부로 입에 올렸다가는 한 생명 골로 가는 건 식은 죽 먹기라서 누구보다 당사자인 카다 요제프 본인이 이 나이가 되도록 합죽이가 됩시다, 합! 입을 다물고 살았건만, 21세기 들어 세월이 하수상해지고 헝가리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자 위기감을 느낀 일부 세력들이 어떻게, 어떻게 카다 요제프의 정체를 알아내 일차 왕림하면서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익살극 또는 피카레스크 소설의 막이 올라간다.

  그들은 92세의 노인이지만 그 나이치고 상당히 건강한 수준이며 정신도 멀쩡한 것처럼 보이는 할배를 꼼짝도 하지 않고 상당한 시간을 그저 쳐다보고 있다가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경의를 표하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고, 이제부터 당신을 섬길 것입니다, 폐하, 당신 앞에서는 앉지도 않겠습니다, 이렇게 예를 차리는 거였다. 이때까지 만해도 노인은 불을 때지 않는 실내에서 난로 위에 전기 풍로를 올려놓고 감자국수를 끓이고 있었는데, 그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다시 전열기로 달려가 국수가 냄비 바닥에 눌어붙지 말라고 휘휘 젓고 있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겠지.

  그들이 결국 알아낸 걸까? 이제 막 영국 여왕으로부터 성 조지기사단의 검을 받았고, 오래전에 이미 그 기사단에 선출되었다는 것을?

  그럼 이들은 누구일까? 첫번째 방문에는 모두 여덟 명이 왔다. 늙은 요제프는 일곱인지 여덟인지 헛갈리지만. 그들을 직업별로 보면 전기 관련 기술자, 기타치는 유랑가수, 자동차 도장공, 토종 종마 사육사, 말단 경찰, 고문 회계사, 체구가 다부진 퇴역 원사, ‘교수’라고 불리는 전직 고등학교 역사 교사. 이들 가운데 기타치는 유랑가수의 이름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이 양반이 시도 썼으니 유랑가수라고 해도 좋겠지. 기타도 치지만 동유럽 전통악기 발랄라이카도 연주하고 작곡도 한다. 이들 가운데 가장 오래 폐하께 충성을 바치는 인물. 그럼, 이름이 어디서 왔는데!

  이 모임의 이름은 KP. 헝가리어로 Koordinalt Platform, “조율된 플랫폼.” 왕정복고 플랫폼 회원들이다.


  KP 단원이 두번째로 방문을 했을 때, 요제프는 옷장 위에서 성 조지기사단의 검을 꺼내 보여주며 영국 여왕이 기사 작위를 수여하며 자신한테 보낸 편지, 사실은 편지 봉투를 보여준다. 에게를로바 시, 탄치치 미하이 거리 23/d번지. 아, 또 주소가 나온다. 헤르쉬트 07769에 이어. 세번째 방문 때는 훨씬 많은 단원들이 모였는데, 이때는 헝가리인이 미국으로 밀반출했던 이슈트반1세의 왕관을 1978년 1월에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가 되돌려줄 때 요제프에게 보낸 편지의 복사본도 보여준다. 당연히 원본은 훼손 방지를 위해 숨겨 놓았단다.

  카다 요제프의 집안도 헝가리의 세게드에서 살다가 19세기 말에 미국 디트로이트에 자리를 잡았고, 마지막에는 카다 집안의 법적 상속자로 아내와 함께 지금 살고 있는 동네의 언덕 제일 꼭대기에 있는 집, 미하이 거리 23/d번지로 옮겨왔다. 슬하에 딸 하나만 두어 카다 가문의 맥은 자신 대에서 막을 내려야 할 터. 그래도 자기가 카다 가문이 헝가리 아르파드 왕조의 맥을 이은 것처럼 두 외손자 가운데 하나가 대를 이어 왕조를 물려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신이 아무리 위대한 아르파드 왕조를 계승하고 이미 1944년에 대관식까지 한 정식 왕이기는 하지만 세월이 변했으니 폐하라는 거북한 호칭 말고 그저 “요지 아저씨”라고 불러주기를 청한다.


  여기서 독자가 결정해야 할 것은, 요지 아저씨가 주장한 것들, 성 조지기사단의 검을 영국 여왕으로부터 받았고, 이미 기사단 신분으로 기사 작위도 얻었으며, 벌써 대관식을 거행한 정식 왕이기 때문에 새롭게 대관식을 여는 번거로운 절차 말고, 그냥 왕의 자리, 왕의 의자가 있으면 뚜벅뚜벅 걸어가서 앉기만 하면 끝난다는 주장을,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거다. 이에 따라 소설을 이해하는/따라가는 방법이 다를 수 있을 텐데, 한꺼번에 두 가지 선택을 다 감안하면서 읽으면 더 재미나다. 한편으로는 정식 왕으로서 안타까운 일이 될 수도 있고, 또 한 편으로는 노망난 후안무치의 설레발꾼이 벌이는 난장판을 구경할 수 있어서 넘치게 즐길 수 있으니까.

  근데 자신이 왕이라고 주장하거나, 왕을 참칭하는 행위는,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서 사실 목숨을 내놓고 주사위를 던져야 할 만큼 무시무시한 작업이다. 아무리 헝가리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고 경제적으로도 불안하지만 감히 21세기 민주공화국에서 왕정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다니,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크러스너호르커이 말고 다른 한 명을 고르라면 작가가 직접 감사의 말을 전한 토마스 핀천 정도. 또 있나? <황제를 위하여>를 쓴 이문열?

  크러스너호르커이의 팬이여, 일독을 망설이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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