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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
요아힘 마이어호프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26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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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다. 책 읽고 저자를 위키피디아 검색해봤더니 전부 책에서 읽은 내용이다. 먼저 이야기해둘 것은 자기 살아온 것을 소설로 쓴 작품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 왜 그런가 하면 이 요하임 마이어호프가 딱 이 경우인데, 집안 대대로 의사, 장군, 기업가 등을 지낸 빵빵한 집안에서 아버지 역시 의사, 의사라도 그냥 의사가 아니라 독일 역사상 최연소 주립병원 원장을 지낸 헤르만 마이어호프 박사/교수로, 가족 모두 함부르크와 덴마크 사이에 있는 독일 북부 슐레스비히홀스타인 주에서 가장 큰 헤스터베르크 어린이청소년정신병원 구내의 원장 관사에 살며 하여간 남들 눈에 모자란 것 없이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살면서 자기가 겪은 지난 삶에는 나름대로 다 회한이 있는 법이라 쓸쓸하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암만. 자신이 살아온 내력의 쓸쓸함, 애잔함을 내가 무시하는 건 전혀 아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겪은 것이 가장 절실한 법이니까.
소설 속에서도 주인공이자 화자 ‘나’이며 작가이기도 한 요하임, 애칭 요세 마이어호프의 아빠 헤르만 마이어호프 박사가 병원장으로 취임할 당시 이 어린이청소년정신병원에는 환자 수가 무려 1천5백 명이 넘었는데, 입원 환자 전부 정신병, 즉 조현병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물론 많은 수가 조현병 환자였지만 적지 않은 지독한 수준의 기형, 정신지체 같은 사유로 사실상 버려진 환자들도 또한 있었다고 한다. 즉 요하임 마이어호프보다 더 험한 세월을 사는 최소한 1천5백 편의 장편소설이 병원에 있었다는 얘기. 이 가운데 어느 하나 요하임보다 절절한 내력을 가지고 있지 않겠느냐 하는 걸 생각하면 좀 그렇다는 거다. 입원 환자 가운데 누가 이 작품을 읽었으면 아마도 이렇게 한탄하지 않았을까?
“나 같으면 앓느니 죽겠다!”
이런 의미에서 노골적으로 자전적인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의미지 뭐 특별한 건 아니다.
요하임 마이어호프는 1967년에 중서/남서부에 있는 홈부르크에서 아들 삼형제 가운데 막내로 태어나 1972년부터 아버지따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헤스터베르크 정신병원의 원장 사택에서 자랐다. 자라도 오래 자랐다. 다 커서 훗날 연극배우가 될 때까지. 형제간 나이 차이는 각 3년. 당연히 다양한 놀이에 두 형들이 한 편을 먹고 어린 요하임은 다분히 따돌렸겠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으면 형들이 위로해주고, 달래주고, 뭐 그랬겠지.
이대로 계속 쓰다가는 작품의 스토리를 다 실토할 거 같다. 시기를 훌쩍 넘어가자.
고등학생 시절 미국 와이오밍 주에 교환학생으로 1년 동안 가 있었다. 이 시기에 세 형제 가운데 제일 공부 잘하는 작은 형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다. 다시 귀국해 학교를 마친 다음에 요하임은 연극계에 투신해 지금은 독일에서 가장 바쁜 배우, 연출가, 영화 감독 등으로 활동하고 있단다.
연극에서 가장 눈부신 활약은 2011년에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6부작 연극으로 만든 <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를 공연한 일로, 여기저기서 다양한 상도 받았다. 이후 6부작 가운데 (본문 이전의 “일러두기”에 따르면) 2부 <언제쯤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를 우리말로 번역해 사계절에서 출간했다. 위키피디아에 6부까지 모두 소개한 걸 보면 이 책 말고도 다섯 권이 더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것 한 권이면 충분할 듯하다.
안타깝게 2017년에 뇌졸중이 발병해 그의 경력사항을 봐도 2017년 이후의 활동은 상 받은 거 하나 말고는 없다. 그때 겨우 쉰 살이었을 텐데 안타깝지만 어떻게 하나. 사는 게 다 그런 걸.
나는 이 책이 자전적 이야기인줄 모르고 읽었다. 알라딘이 내게 말하기를 AI가 나더러 이 책 읽으면 좋다고 권하다 해서 딱 희망도서 신청했다가 거절당해 다른 동네 도서관에 상호대차 서비스 신청해서 읽었다. 제목 “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라니까 삶과 죽음에 관한 좀 심각한 이야기인줄 알았다. 뭐 사실 삶과 죽음에 관한 내용이라는 건 맞는 말이다. 그래도 첫 문장을 이렇게 써 놓으면 자전적 삶과 죽음, 둘째 형과 키우던 개와 아버지의 죽음은 아닌줄 안 게 당연할 수도 있지 않나?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죽은 이는 연금 수급자였다.”
사실 이 문장을 과하게 강렬하게 읽는 바람에 다음 문장을 놓친 내 잘못이기는 하다.
“사랑하는 가족이 사고와 질병, 노환으로 떠나기 오래전의 일이었다. 형과 너무 젊은 아버지, 조부모, 심지어 어린 시절 키우던 개까지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임을 받아들이기 오래전…”
요하임 마이어호프가 말하고 싶어하는 또는 공연하고 싶은 죽음은 가족의 죽음인데, 초장에 저 연금수급자의 죽음을 과하게 진지하게 얘기한다. 일부러 그랬을까? 나 같은 독자 헛갈리라고? 게다가 아직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일곱 살 먹은 주인공 ‘나’가 정신병원에 살고 있단다. ‘나’가 작가 자신이며, 진짜로 정신병원 구내에 있는 원장 관사에서 살고 있으며, 거의 매일 밤마다 커다란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이 크고 높은 목소리로 울부짖는 비명을 들으면서 잠에 든다는 걸 전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어린 화자 ‘나’가 정신병원에 살고 있다는 얘기만 들었으니 이거 뭔가 중요한 사연이 있는 거 아니겠느냐는 것이지.
아니, 이 색다른 구성은 뭐야. 이거 흥미진진한데…
‘나’는 엄마가 딱 정해준 큰 길로 등교를 하는 대신 일곱살 생일 일주일 후에 정신병원 시설 담장 밖의 주말농장 쪽에 혹시 다른 길이 있을까 싶어 그쪽으로 들어섰다가 길을 잃고 만다. 조금 헤맨 다음에 드디어 길을 찾았지만 주말농장 철문을 넘어야 한다. 그래서 넘었다. 넘고 보니 늙은 남자를 발견했다. 말쑥하게 차려 입은 모습이다. 모두 베이지색 옷. 퍽 고상해 보인다. 발과 종아리는 풀밭 위에 놓였고 나머지는 꽃 속에 파묻혔다. 괜히 주말농장 속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지각이다. 생일선물로 받은 손목시계를 보니 그렇다. (또 잠깐 헛갈림. 정신병원에 사는 아이가 험한 곳에서 생일선물로 손목시계를 받았다는 말이지?) ‘나’는 학교 정문을 통과해 교실까지 달려가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내가 죽은 사람을 발견했다!”
그래서 담임선생, 교장선생까지 한 바탕 난리가 났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어떻게 알아? 하고 물으니까 ‘나’가 대답하기를 “우리 아빠가 의사예요.”
아직도 이게 실명 자전 소설이라는 걸 모르는 독자는 거 참, 복잡하게 됐다. 다시 생각해봐야겠군.
이후부터 아버지 헤르만 마이어호프 박사/교수, 어머니 마리아, 큰형 헤르만, 작은형 마르틴, 키우는 대형견 한 마리의 지지고 볶는, 지겹게 지지고 볶는 게 아니라 재미있고 귀엽게 지지고 볶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예를 들어 식탁에서 가족들이 모여 퀴즈 시합을 하거나, TV를 보면서 어린 요하임(요세)는 9시에 올라가 자라고 해서 주둥이가 댓발 나온다거나, 형들이 병원의 입원환자들한테 바보, 미치광이, 병신, 천치, 백치, 멍청이, 머저리, 사이코, 도라이 등등 마음대로 별명을 붙여 부른다거나, 아빠의 마흔번째 생일 선물로 감자요리 마흔개를 하려다가 엄마의 과잉친절에 기분이 상해 다 없애버렸다거나 뭐 이렇게 그냥 좀 있는 집 사는 이야기. 501호나 502호나 비슷한 이야기를 주절주절.
뭐 색다른 것이 있다면 아무래도 장소가 정신병원이니까 환자들과의 교류, 신병동에 주지사가 직접 방문해서 생긴 요절복통, 정말로 열람실에서 키득키득 비져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든 슬랩스틱 코미디 같은 것이 본문 483쪽 가운데 300쪽 가까이 차지한다. 이중에서 유별나게 특징적인 것은 주인공 요세, 요하임 마이어호프가 전반성불안장애가 있다는 거. 즉 한 번 열을 독하게 받으면 거의 경련 수준으로 난리를 치는 증세가 있다. 발악 수준의 비명과 난장판, 그리고 경련, 실신까지. 이 장면이 몇 번 나온다. 작가 요하임 마이어호프가 쉰 살의 나이에 뇌졸중이 발병한 것도 이런 사유 때문이 아닐까, 라고 위키피디아를 보면서 조금 생각해봤다.
그러다가 제일 앞 장chapter에 나오는 대로 “형과 너무 젊은 아버지, 조부모, 심지어 어린 시절 키우던 개” 가운데 조부모 빼고 등장인물의 죽음을 차례로 경험하면서 일곱 살짜리 요세는 스물다섯 살 연극배우 요하임 마이어호프가 된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결말을 맺기가 좀 그러니까 죽음이라는 것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 것이지, 한 소년의 성장기라고 하면 딱이다.
청소년 문학작품 출간에 전력을 다하는 사계절이 찍었다는 것 때문에 혹시, 했다가 역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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