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 타이완 여행기 - 2024 전미도서상 번역부문 수상, 2024 일본번역대상 수상, 2021 타이완 금정상 수상
양솽쯔 지음, 김이삭 옮김 / 마티스블루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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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쐉쯔楊双子. 양씨 성을 가진 쌍둥이라는 뜻의 이름. 1984년생 타이완 쌍둥이 여성 맞다. 자매 가운데 언니는 창작에, 동생은 번역과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가, 동생이 2015년에 암으로 먼저 갔다. 그러니까 이 책의 작가 양쐉쯔는 언니 쌍둥이 양뤄츠다.

  위키피디아 검색해보면 타이완 타이중에서 나서 어느 학교를 졸업하고 정치적 운동을 하고 뭐 이런 복잡하지만 책을 읽기 위해서는 필요 없는 정보만 좍 쓰여 있다. <1938 타이완 여행기>를 읽기 전에 작가에 대해 그래도 좀 알고 싶으면, 양솽쯔가 어느 종족인지를 찾아야 하지만 그런 건 찾을 수 없다. 2020년에 타이완의 만다린어로 이 책을 써서 2021년에 상을 받았고, 일본말로 번역 출간해 2024년에 일본에서 최우수 번역상을 받았으며, 영어로 번역한 건 미국에서도 국가도서상을 받았다는 내용만 나온다. 좋겠다. 여기저기서 상 잔뜩 받아.

  타이완에 가장 많은 인구는 한족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직전에 장제스와 함께 중국의 보물을 잔뜩 싣고 도망한 한족이 한 20퍼센트 되나? 그 전에도 주로 푸젠성 출신 한족이 대거 타이완 섬으로 이주해 처음부터 타이완에서 살던 원주민들을 무지하게 차별하며 섬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다. 원주민의 고달픈 삶은 탕푸루이가 쓴 <바츠먼의 변호사>에 잘 드러난다. 여기에 더해서 1938년이라면 일본이 타이완을 식민지로 삼아 내지內地, 그러니까 일본 섬사람들이 이주해 타이완의 지배계급과 부르주아 계급을 독차지하고 있었을 당시. 소위 내지인들은 조선에서 그러했듯이 타이완 본섬 사람들, 혼도진本島人을 아래로 착 내려봤겠지. 그러면서 말로만 내지인과 혼도진, 그리고 조센징 모두 천황의 자식들이니 어쩌니 떠들어댄 건 안 보고도 비디오 아냐?

  위키피디아에도 나오지 않은 내용을 책을 읽고 짐작하건데 양솽쯔 역시 타이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는 푸젠성 출신의 한족 집안의 따님일 듯하다.

  그런데 타이완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하고 조금 달리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그렇게 많이 열 받지 않는다. 아 정말이라니까! 타이완 사람들이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들을 일본 사람들보다 더 싫어한다니까! 경제 수준이 우습게도 자기들 한참 아래였다가, 비슷했다가, 우리가 추월했다가, 다시 비슷해지는 것도 기분 나쁘고, 특별히 1991년에 우리나라하고 국교를 끊을 때 되게 기분 나쁜 방식으로 당했다고 여긴 듯하다. 사실 그때 좀 심하긴 했지.

  여기에 타이완 섬이 사실상 수백년 이상 중국의 지배를 받았던 터라, 식민지라고 해봐야 그저 지배계급이 바뀌었다고 여길 수 있는데, 이것 역시 사실이 아니고 내 생각이니 믿지 마시라. 하여튼 식민 지배에 관해서 우리만큼 자만심 상해하지 않는 건 정말인 듯하다. 작품 속에 자꾸 타이완 식민지 사람들 이야기를 일제강점기 당시의 우리나라 사람들을 섞는 장면이 나오면 속이 편하지 않다.

  양솽쯔도 일본에 우호적인 것처럼 보인다. 타이완 사람이면서 ‘솽쯔’의 한자어 표기를 대만 표준에 입각해 ‘雙子’ 대신 일본식 약자인 ‘双子’를 쓴 것으로 미루어 보면 그러하다.

  위키피디아 되게 웃겨. 내가 알고 싶어하는 건 나오지 않고, 몰라도 전혀 상관없는 사생활 정보는 쓰여 있다.

  “Yang is married to her wife Lai Ting-ho.”

  양솽쯔가 와이프 팅호와 결혼했다고? 그러면 양이 허즈번드, 남편이야? 아니다. 양도 와이프. 와이프만 둘 있는 결혼방식. 이건 독자가 굳이 알 필요 없잖아? 알건 모르건 상관은 없지만.


  작품의 주인공은 화자 ‘나’, 1938년 5월에 25세인 엄청 키가 큰 일본 소설가 아오야마 치즈코. 여행을 좋아해 사실상 일본이 아니었던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를 다녀왔다. 특히 오키나와에서 남국 특유의 정취에 반해 언젠가는 타이완에도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은 바 있다. 특히 올해가 적기다. 아오야마가 쓴 소설 <청춘기>를 영화로 만들면서 거금의 고료가 들어왔던 거다. 게다가 잡지사 한 군데에서 남양南洋을 배경으로 연재소설을 써주는 조건으로 여행비용 일체를 부담하겠다고 제시한 바 있다. 다만 소설이 일본의 남진南進에 협조하는 내용이어야 한다고. 아오야마 입장에서 일장기를 흔들며 제국을 선양하는 어용 작가가 될 수 없어 이를 싹 거절했다. 그래도 가보고 싶은 치즈코.

  아오야마 치즈코는 165cm로 키가 엄청 크다. 웬만한 남자보다 더 크다. 몸집에 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골격도 만만하지 않아 엄마가 치즈코를 낳다가 세상 떴다. 아빠도 일찌감치 갈 곳으로 갔다. 숙부집에서 살게 됐는데, 기쿠코 숙모가 친딸처럼 키워 정이 돈독하다. 그래서 숙모한테 돈을 좀 한 5백엔 달라고 했다가 깔끔하게 거절당했다. 여행은 무슨. 스물다섯? 우리 때는 그때까지 시집 못 가면 목 매달아 죽었다 이것아! 숙부가 선 자리 알아보고 있으니 하나 골라라. 사실 혼기를 놓쳐 이제 중매가 와도 중년 홀아비 밖에 안 들어온다. 치즈코는 결혼할 생각이 별로 없다. 그러니 이런 말이 지겨울 수밖에. 9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지 뭐.

  어린 시절에 트라우마가 좀 있다. 잠깐 작은 절집에서 혼자 등이 꺼지지 않게 지켜야 할 때가 있었다. 한 열흘에 한 번 말라 비틀어진 중이 등에 쓸 기름을 가지고 올 때 음식도 조금 들고 와 그걸 먹으며 다음에 다시 올 때까지 버텨야 했던 기억. 뭔 일이 있었던지 하여간 그렇게 몇 달을 지냈는데, 그때 너무 배를 곯아 절에서 내려올 때 심각한 각기병에 걸린 적이 있다. 이후에 키 큰 아오야마 치즈코는 식탐 많은 먹보 밉상이 되고 말았다. 밉상은 하도 먹을 생각만 해서, 1938년이면 일본은 물론이고 식민지 조선과 타이완 사람들 모두 굶주릴 때인데, 더군다나 1930년대 중반이라면 세계적인 기근이 휩쓸 당시인데도 그저 먹는 거만 밝힌다는 뜻이다. 책에서는 한 번도 밉상이라고 나오지 않는다. 반대다. 쾌활하고 화통한 장부의 모습이라고만 나온다. 내 눈에 그렇다는 거다.

  그리하여 아오야마 치즈코는 등장할 때부터 일본 찹쌀떡인 모찌를 한 입에 두 개나 쑤셔넣고 우물우물. 아오, 정말 밉상이라니까.


  딱 이때 타이완 총독부 타이중 주청州廳에서 아오야마에게 초청장을 보낸다. 영화로 만든 <청춘기>가 1년이 지나 타이중에 개봉됐고, 이를 본 현지의 부인단체 ‘닛산카이’ 여사님들이 감동감화 받은 바 너무 커서 작가를 초청해 타이완 각지를 돌며 순회 강연을 해달라는 거였다. 사례금은 물론이고 뱃삯을 비롯한 모든 교통비, 숙박비, 식비, 기타 비용 일체를 부담하겠다는 거다. 이게 웬 떡이냐 싶은 아오야마가 이를 거절할 이유가 없다. 그리하여 엄마 같은 숙모가 마련한 맞선은 한 번도 안 보고 그 길로, 1938년 초여름에 규슈 북쪽 끝의 모지항에서 출발, 타이완 북쪽 끝 지룽항에 도착한다.

  지룽항에서 타이베이로 가 일박을 하고, 기차로 타이중으로 향한다. 이때부터 아오야마는 먹는 타령이다. 먹고, 먹고, 먹고, 또 먹는다. 하도 많이, 자주 먹어서 이를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들이민 것이 어린 시절 등불 꺼지지 않게 지키라고 꼬마 여자 아이 혼자 절에 몇 달 동안 틀어박혀 있게 만든 거다. 하여튼 지독하게, 지겹게 먹는 타령이다. 타이중과 부인회 닛산카이에서 준비한 거의 최상급 일본 요리에는 별 관심 없고, 로마에 갔으면 로마 음식 맛을 봐야 하는 것처럼, 타이완에 왔으니 혼도진, 본지 사람들이 먹는 걸 자기도 먹어야겠다는 이미 불이 붙은 신념만 굳세진다.

  여기에 등장한 인물이 왕첸허王千鶴. 이름 첸허千鶴가 아오야마 ‘치즈코’와 우.연.히. 같다. 21세 여성. 아오야마를 위하여 닛산케이 부인회가 고용한 통역사다. 그런데 음식 장만도 하는 식모이기도 하고, 여행 가이드이기도 하고, 비서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또 뭐 있어? 하여간 뭐든 다 하는, 말로만 친구, 사실상 하녀, 이 정도면 하녀 가운데도 몸종 아닌가? 전직 공학교 국어교사. 공학교? 일본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소학교. 혼도진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공학교. 따라서 공학교 여선생은 내지인 눈으로 보면 인간도 아니다. 당연히 내지 본토에서 온 아오야마 치즈코 눈에는 자기 자매처럼 친근하지만 식민지 땅에서 사는 일본 여자들한테는 그게 아니다. 절대 아니다. 짐작하시겠지? 전직 공학교 국어 교사. 국어 교사라면 일본어 교사라는 말. 일본말 잘 하고, 내지인과 다름없을 정도로 잘하고, 타이완 내 각종 언어도 당연히 잘하고, 영어도 잘하고, 프랑스어도 소통 가능할 정도. 언어 귀신.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때려 치웠다. 학교 교사도 그만 뒀다. 왜? 결혼 준비. 인텔리 남편감은 일본에서 일하고 있단다. 타이중의 유수한 왕씨 가문 첩실이 낳은 딸. 똑똑하지 않았으면 학교도 보내지 않았을 터. 교사를 할 정도니까 거의 영재 수준이다. 음식도 잘하고, 음식에 관해 많이 안다. 더 이상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안다. 그래 본격적으로 지금부터 타이완 음식 기행이 펼쳐지는데….


  머리 속에서 팍 떠오르는 이름 하나. 일본 작가 무라이 겐사이. 그가 쓴 사부작 <식도락>.

  양솽쯔가 일본에 친숙하니 틀림없이 무라이를 읽었을 터. <식도락>을 보고 타이완에도 일본과 비견할 만한 다양한 음식이 있으니 나도 한 번 써볼까? 더구나 무라이의 음식은 거의 다 서양에서 들어온 것을 일본식으로 다시 만든 것에 불과하니, 타이완의 유구한 세월을 버틴 음식 이야기를 하면 적어도 <식도락>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셈량도 했을 수 있다. 여기에 시대가 다르니까 과거 제국주의 일본의 남진정책과 전쟁 등에 반대하고 양념처럼 페미니즘을 좀 뿌려주면 어떨까?

  이런 생각은 정말 하나도 안 했을까?

  그런데 말입니다, 음악을 문자로 설명하기 쉽지 않듯이, 음식도 문자로만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환경이 다른 우리나라 독자가 알지도 못하는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글로만 읽어 감흥이 오겠느냐고? 양솽쯔도 무라이한테 배울 것이 하나는 있었다. 문자로 설득하기 쉽지 않은 것을 짐작했다면, 무라이처럼 삽화라도 그려놓았어야지.

  게다가 양선생의 글 자체가 가볍다. 좋은 말로 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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