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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볼루셔너리 로드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6
리처드 예이츠 지음, 이삼출 옮김 / 민음사 / 202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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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예이츠. 1926년생 미국 남자. 뉴욕주 연커스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부모가 이혼하고 여러 마을을 전전하며 여러 후견인 아래에서 컸다. 작중 주인공 휠러 부부 가운데 아내 에이프릴처럼. 26년생이라 1945년경에는 당시 기준으로 전쟁하기 딱 좋은 열여덟~아홉 살이 되어 대 독일 마지막 춘계 대공세에 투입되고, 전쟁이 끝난 후 1년 더 유럽에 주둔했다가 1946년에 돌아왔다. 이건 또 작품 속 남편 프랭크 휠러의 경험과 같다.
예이츠는 영국 유명 배우의 딸 실라 브라이언트와 결혼해 잘 먹고 잘 살다가 딸 둘을 낳고 1959년에 이혼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주인공 부부는 결혼해서 딸과 아들을 낳고 살다 컬럼비아 대학을 나온 프랭크는 뉴욕의 알아주는 극예술대학을 졸업한 아내 에이프릴과 사는 동안 가끔 격렬하게 싸움을 하다가 불행한 파국을 맞는다. 아마 이혼을 하고나서 아니면 이혼 즈음에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것 같다. 독자가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주인공 부부의 갈등이 실감난다.
나는 하필이면, 그런 줄도 모르고 이 책을 읽을 때 잉게 보르크가 쓴 <말리나>를 함께 읽기 시작했다. <말리나>는 한 20년 전에 사놓고 읽다가 포기, 한 번 더 읽다가 포기해서 지금 세번째 도전하는 중이다. 오직 읽기에 집중하느라 집에서 메모하지 않고 글자, 단어, 절, 문장 하나씩 해체해가며 읽고 있다. 근데 이 책/작가와 비교하면 세상에나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같은 1926년생인데.
예이츠는 승전국과 물산이 넘쳐나는 시절에 동물원 산보하듯 중산층 속물들의 사는 모습을 까발린 반면에 보르크는 패전국 오스트리아 빈 사람들의 우울한 사람 관계를 붓질하고 있었다. 그래서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더 재미있게 읽은 것일 지도.
당시, 그러니까 1950년대 미국의 전형적인 중산층 사회는, 남자는 밖에 나가 일을 해 돈을 벌어오고, 여자는 집에서 가사와 육아에 전념하는 형태였다. 이런 중산 계급이 몰려 사는 곳, 1955년의 코네티컷 주 서쪽에 있는 ‘로럴’이라는 동네. 이곳에 사람들이 뜻을 모아 아마추어 극단인 “로럴 극단”을 만들어 첫 공연으로 로버트 셔우드의 <화석 숲>을 올리기로 하고 주1회 연습에 돌입했다. 아마추어라도 대충 즐기려는 보통의 아마추어가 아니라 상당한 자금을 지원받아 정말 극 다운 극을 공연해보겠다는 의지로 뭉친 극단이어서 뉴욕에서 그래도 이름이 있는 연출자를 초빙했다. 암만해도 처음 해보는 연극이라 버벅거리던 배우들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결국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에 시달렸다. 이게 이 극단, 첫 공연의 기본적인 문제점이었다.
하여 단원들은 주 1회였던 연습을 2회, 3회, 급기야 4회 이상으로 늘렸지만 상황은 여간해 좋아지지 않아 배우들은 자신들이 실패하리라는 사실만 거듭 확인할 뿐이었다. 서로 미안해하는 서먹한 눈인사를 나누면서. 어쨌거나 드디어 공연 전날 드레스 리허설을 했다. 그런데 웬일? 공연 복장을 갖추어서 그런지 연극 자체의 흐름에 올라타 분위기가 제대로 유지되는 거였다. 마치 배우들이 영혼을 다 쏟아 부었달까 싶을 정도. 이 이상을 어찌 더 바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꽉 차올랐다. 리허설이 끝나고 연출이 말했다.
“솔직히 저는 많은 걸 바라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포기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 밤 여기 무대 위에서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여러분이 처음으로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아주 깊이 깨달은 것입니다. 내일 밤에도 이렇게 합시다. 그럼 우린 아주 기막힌 공연을 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면서 로버트 셔우드가 썼다는 <화석 숲>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 희곡이 어떤 내용인 줄 알아야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런데 셔우드의 희곡작품은 원서밖에 없었다. 이런.
그러나 다음날 밤. 공연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제일 중요한 건 남자 주인공을 할 배우가 급성 대장염에 걸려 도저히 공연을 할 수 없는 상태라서 다시 차 타고 집에 갔다는 거. 대역으로 누가 나왔나 하면, 나이들고, 배 나오고, 안경 끼고, 머리 벗겨진 연출가. 관객이 아무리 집중하려 해도 그렇게 되지 못할 인물. 연출과 배우는 또 엄연히 다른 것이라 극을 처음부터 망쳐버렸던 것. 초보 배우들 역시 처음부터 계획이 무너지니 잘 하던 것들도 버벅거릴 수밖에. 극예술대학을 졸업한 에이프릴 휠러도 1막 앞부분에서는 상대역이 바뀌었을지라도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자기 역을 소화했지만 조연급을 비롯해 거의 모든 배우와 스탭들이 엉뚱한 소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헛갈리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연극은, 망했다.
완전한 실패. 더 실패하려도 실패할 것이 없을 정도의 실패. 하지만 중산층 출신 배우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어.” 극예술대학을 졸업한 에이프릴은 이들과 속내가 다르다. 다를 수밖에. 객석에서 에이프릴의 연기를 지켜보던 남편 프랭크는 무대가 비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배우 대기실에 찾아간다. 서먹서먹. 그래도 남편이니 위로의 한 마디가 없을 수 없다. 하지만 그냥 내버려둘 것을. “나는 괜찮으니 조금만 나 혼자 내버려둘래? 더 말하지 말고.” 그래도 남편은 좀 미진한 거 같다. 또 종알종알. 너는 잘했어. 다른 배우들이 문제였지. 아 씨, 입 좀 닥쳐주지 않으실래요? 이렇게 본격적인 부부싸움의 순서를 밟는다.
이 문제 하나가 아니었겠지만 하여간 소설은 연극의 실패와 연극의 주인공이었던 에이프릴의 자존감 상실에서 시작한다. 남편 프랭크는 아버지가 전에 다니던 녹스 사무기기, 아마도 제록스를 염두에 두고 지은 이름인 거 같은데, 녹스 사무기기에 취직하여 당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할 최강의 미국 회사 답게 출근해 하루 종일 빈둥빈둥거린다. 그래도 3만5천 달러의 연봉을 받고, 뉴욕의 좁은 아파트에서 탈출해 코네티컷 서쪽의 신흥주택가 레볼루셔너리 힐 이스테이트 옆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있는 작고 아름다운 집에 살고 있다. 녹스 사무기기는 자기 두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프랭크와 에이프릴이 원해서 취직하고, 출산한 건 아니었다. 프랭크의 인생에서 그때 이후로 죽 일어난 모든 일은 실제로 자신의 의지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다. 여느 다른 가장처럼 자신도 책임감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지독하게 따분한 직장에 취직했고, 단정하고 건강한 삶의 중요성에 대한 성숙한 자세를 갖고 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비싼 중산층 동네로 이사했으며, 첫째 아이가 실수로 낳은 아이가 아니라는 걸 주장하기 위하여 둘째 아이를 낳았다.
이 동네 사람들이 다 마찬가지일 걸? 내 말이 틀리면 세 명만 나와봐.
이게 프랭크가 하고 싶은 주장이었겠지.
하여튼 연극은 엉망진창으로 끝나버렸고, 어린 시절을 여기저기 떠돌며 여러 어른들에게 후원을 받아 자란 에이프릴은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그날도 부부싸움의 여파가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뉴욕시로 출근하려 차고에서 차를 후진해 경사진 언덕 위 도로까지 몰고가는 남편 프랭크의 후줄근한 모습을 창밖으로 내다본 에이프릴은 생각한다.
불쌍한 사람. 저렇게 하기 싫은 일을 꾸역꾸역 해야 하는 남자. 가고 싶지 않은 직장에 아침마다 차를 몰고 역까지 가고 거기서 기차로 갈아타고, 또 지하철을 타서 출근해 하루 종일 빈둥거려야 하는 남자. 남편이 짠하다.
에이프릴은 한 가지를 생각해낸다. 만일 내가 돈을 벌면 어떨까? 남편은 그냥 쉬라고 하지 뭐. 내가 돈을 벌어 가사도우미를 고용하고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만일 그런 게 있다면 말인데, 하라고 하고. 하지만 미국에서는 쉽지 않을 거야. 프랭크가 유럽이라면 환장하게 좋아하니까 이 기회에 영구히 유럽으로,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파리에 가서 살면? 전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미국의 외교관도 있고 문화관도 있으니 거기에는 하다못해 타자수나 속기사가 필요하겠지. 자격증이 있으니 내가 벌면 되지. 우리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자유롭게 사는 거야!
이게 생각보다 대박이다. 아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대박이다. 그리하여 직장 프론트 아가씨와 바람을 피우고 들어온 프랭크한테 프랑스 이민에 대해 설명하고, 그동안 회사가 재미없어 미칠 지경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게 엄살을 떨어온 처지라 에이프릴의 제안에 반대할 이유를 대지 못하는 프랭크. 그래서 부부는 이번 가을에는 반드시 파리로 이민을 가겠다고 뜻을 함께 한다. 프랭크는 속으로 미치겠지.
그러나 하늘은 이 부부와 아이들을 비행기에 태울 마음이 없다. 연극이 끝나고 부부싸움 열라 했지? 그 1차부부대전이 끝나고 화해의 밤을 맞아 이들은 기념으로 한 침대에 올랐는데 에이프릴의 페서리에 문제가 있어서 그만 셋째 아이가 탁! 착상을 해버렸던 거다. 아싸, 됐다! 프랭크가 속으로 이렇게 외쳤을까?
빼먹으면 아쉬운 등장인물이 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 옆의 작은 집을 소개해준 부동산업자 기빙스 부인의 아들 존 기빙스. MIT를 졸업하고 서부 해안에서 수학을 강의하던 영재인데, 영재에게 자주 보이는 정신병변이 있어 병원에 입원해 있다. 상태가 좀 나아져 의사가 존에게 (부모집은 안 되고) 친한 친지나 이웃의 집에 방문해보기를 권한다. 그래서 이 휠스 부부의 집을 방문해 이들과 불과 몇 분 만에 사태를 파악, 정확하게 문제점까지 딱 말해버리는데, 그게 이 부부의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가는 롤러코스트로 작용한다.
재미있는 소설. 다만, 에이프릴과 프랭크가 같은 나이의 부부임에도, 프랭크는 아내에게 말을 낮추고, 에이프릴은 남편에게 존칭, 가끔은 극존칭을 쓴다. 다른 부부도 마찬가지다. 아내가 세 살이 더 많은 친한 이웃 캠벨 부부도 마찬가지다. 그게 눈에 거슬린다. 1955년에 미국인들이 그렇게 살았다면 뭐 할 말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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