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 ㅣ 창비세계문학 6
딩링 지음, 김미란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평점 :
.
딩링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소피의 일기>와 비교하면 두 권 책의 다름이 실로 하늘과 땅 차이다. 하긴, <소피의 일기>가 1928년.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에 실린 세번째 작품 <발사되지 않은 총알 하나>가 1937년, 두번째 작 <병원에서>가 1938년, 첫번째 표제 작품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가 1940년이다. 이 사이에 무엇이 있었을까? 당연히 전쟁. 국공 내전 말고 항일 전쟁이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1960년대에 초안을 쓴 것으로 보이는 1978년작 <두완샹> 과의 사이에는 또 반우파투쟁과 악명높은 문화혁명이 있었다.
1904년에 하필이면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딩링의 평생 팔자가 참 고단했을 거란 점은 명백한데, 애초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 푸이처럼 일찌감치 모든 자격을 박탈당하고 재교육을 거쳐 평범한 정원사의 삶을 살았으면 기중 (마음이나마)편했겠지만 명백하게 부르주아 소설인 <소피의 일기>를 쓰고 불과 4년 만에 공산당 입당을 해 늘그막까지 그 고생을 하느냐고?
1932년에 일단 공산당에 입당을 해서, 34년엔 국민당에 체포당해 옥중에서 딸을 낳아야 했고, 당연히 여전히 속으로는 부르주아이면서도 다시는 <소피의 일기> 같은 소설은 써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이젠 적극적인 체제 협조적, 그러니까 그들이 말하는 대로 거꾸로 말하자면 정권에 부합하는 어용소설만 죽자사자 써야 하는 처지가 됐다. 솔직히 말해 그래서 나온 것이 <발사되지 않은 총알>이고 <병원에서>이며 이것들이 찬란하게 피어 눈부신 어용소설 <두완샹>이 태어난 것 아니냐는 말이지.
나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공산주의 핑계를 대고 숱하게 저지른 혁명, 혁명도 아니고 혁명을 빙자한 장기집권과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숱한 마르크스의 후계자들이 벌인 전략이 너무도 지긋지긋하다. 더 쉽게 말하자면 레닌과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카스트로 등이 주장한 권력장악과 지속을 위한 숱한 재교육, 획일화, 숙청 등등 이런 종류의 단어가 너무도 싫다. 그리하여 남은 것이라고는 국토와 삶과 인민의 황폐화밖에 더 있었나? 결국 남은 것이라고는 버킹검. 아무것도 없다. 러시아가, 중국이, 북한에서 혁명 이후에 잽싸게 독재를 포기했다면 어땠을까? 그래, 역사와 사람과 삶을 망치는 건 결국 권력이다.
그걸 딩링이 증명해주고 있는 듯. <소피의 일기>가 찬란한 부르주아 소설도 아니면서, 그냥 찌질한 20년대 상하이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어떻게 <소피의 일기>를 쓴 작가가 <발사되지 않은 총알>이나 <병원에서> 그리고, 그리고 <두완샹>을 쓰느냐고! 그렇게 쓸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체제를 위하여 딩링도 당에 가입을 하고, 나름대로 열성 당원으로 일하다가, 반우익운동에 걸려 죽을 고생도 하고, 감방에도 가서 5년 동안 옥고도 겪고, 하여튼 다양하게 죽을 고생을 하다가 저 북간도 멀리멀리 다싱안링 산맥 근처 베이다황까지 가서 노동을 했으니. 춥고 거친 일을 해서 안 됐다가 아니고, 자신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작가를 하지 못한 채 농사일을 했다는 것 자체가 비극이다. 각 인민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그게 공산주의 국가지, 펜대 들 손과 머리로 밀 농사를 지으라 하면 어떻게 평등 세상이 작동되느냐는 질문에 어찌 대답을 할꼬?
딩링의 책, 창비세계문학 6번에 빛나는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를 별 다섯 개 만점으로 채점하면, 작품 전체는 빵점. 그걸 작품이랍시고 번역한 김미란이 말끔한 우리말로 바꾼 실력과 노고를 위하여 두 개의 별을 준다. 거의 찾을 수 없는 오탈자 수준을 보여준 창비의 편집부 담당자의 수고도 포함하여. 내가 아무리 돌팔이 아마추어 허접한 독자일지언정, 권력에 아부하는 어용문학에는 단 하나의 별도 주지 못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