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리 - 2024 공쿠르상 수상작
카멜 다우드 지음, 류재화 옮김 / 민음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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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 개띠 작가 카멜 다우드는 알제리 북서부 항구도시 모스타가넴에서 경찰관 아버지와 중산층 주부 어머니 사이의 6남매 가운데 맏이로 태어났다. <후리>를 읽기 위해서 독자는 작가의 바이오보다는 알제리 현대사를 먼저 훑어보는 것이 좋다.

  오랜 프랑스의 식민 통치에서 독립한 해가 1962년. 알제리의 식민지 추락은 우리나라처럼 몇 위정자들이 식민국의 작위를 얻어가며 합의서에 도장 콱 찍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프랑스는 알제리를 손에 얻기 위하여 알제리 전 지역에 흩어져 있는 모든 부족을 무력으로 점령해야 했다. 이 싸움에서 알제리인의 저항이 얼마나 뜨거웠는지는 아시아 제바르의 <사랑, 판타지아>에 잘 그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2차세계대전 승전국이었던 식민국으로부터의 해방 역시 (우리처럼)종전협정에 의해 그냥 얻은 것이 아니라 수많은 국민들의 목숨을 희생시킨 해방전쟁을 통해 이루어졌다. 처절한 대가를 치룬 알제리는 그리하여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17년이 지난 1962년에야 독립국의 국기를 올릴 수 있었다. 독립전쟁에 참가해 전투를 하고 상처를 입고 불구가 된 사람들은 당연히 베테랑의 품격을 지킬 수 있었으며 국민들의 존경을 받아 곳곳에 기념비의 암각문자로 자신의 이름을 전할 수 있었다.

  알제리의 정식 국호는 알제리인민민주공화국. 사회주의 국가로 시작한 이 나라는 당연하게 국민해방전선(FLN) 일당독재를 유지했다. 초대 국방장관이었다가 쿠데타로 대통령에 오른 부메디엔이 소련, 중국, 동유럽의 본을 받아 석유산업 등을 국유화하는 것은 물론 독재 장기집권을 확립해서 국제유가상승 등으로 1978년까지 잘 살다 갔다. 부메디엔 사후에 집권한 벤제디드 역시 높은 유가 덕택에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1985년부터 석유가격이 하락하는 바람에 국고가 비기 시작했고 동시에 높은 실업률을 기록했다. 독재자는 정치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배고픔 때문에 망가지는 법. 1988년부터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더니 1989년에는 일당제가 무너지고 이슬람해방전선(FIS)이 등장했다.

  다음해인 1990년에 치룬 총선거에서 해방전선이 의회의원 231석 가운데 188석을 차지하는 놀라운 압승을 거두었다. 모두가 생각하지 못한 압승. 이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해방전선이 독재를 시작할 것이 확실한 처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군부가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FIS를 불법화하고 이들을 강하게 탄압하기 시작하면서 이슬람 반군세력이 무장이슬람그룹을 이루어 10년간 본격적인 내전으로 치닫게 된다.

  10년 후인 1999년에 대통령에 오른 부테플리카는 이슬람주의자들을 사면하고 대신 해방군은 해산하여 내전의 종식을 맞았는데, 대 프랑스 독립 전쟁과 달리 내전은 죽이고, 불구로 만들고 재산을 빼앗는 등의 고통을 같은 민족끼리 서로 저질렀다는 데 더 큰 상처를 낼 수밖에 없었다. 부테플리카 정부는 2005년에 이슬람해방군의 죄를 묻지 않겠다고 선언해 그나마 남아있는 내전의 앙금을 지우려 했고, 실제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쨌든 내전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됐다. 이 일 이후로 내전에 관하여 논의하거나, 대화하거나, 입에 올리는 일은 암묵적으로 거부당하고, 백안시하고, 피해가야 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을 뿐.


  서론이 너무 길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카멜 다우드 역시 피가 끓는 10대 시절에는 이슬람원리주의에 마음이 기울었으나 오랑 대학에 진학해 프랑스문학을 공부하면서 원리주의의 폭력성이 지나치다는 걸 확인했는지 결별하고, 프랑스어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결혼을 했지만 아내가 히잡을 쓰기 시작하자 이혼한 경력도 있다. 이제 다우드는 확실하게 종교에서 멀어졌다. 그는 몇몇 원리주의 입장의 이슬람 지도자 이맘들에 의하여 사형선고인 파트와 선언을 받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슬람을 부정하며, 아랍 문자를 배신했다는 죄목으로. 그럼에도 계속 쓴다. <후리>가 2024년에 공쿠르상을 받았지만 알제리 내전의 참상을 다루었다는 이유로 알제리에서는 출판은 물론 읽는 행위, 반입도 할 수 없다. 나도 알제리,하면 프랑스 식민전쟁과 독립전쟁, 그리고 용감한 축구를 하는 나라로만 알고 있었지, 내전이 있기는 했으나 <후리>에서 읽을 수 있는 처참한 수준이었는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있었던 일은 언젠가 밝혀진다. 역사가 하지 못하거나 준비중일 때 가끔은 문학이 먼저 밝히려 애를 쓰기도 한다. 이 책이 그런 문학 가운데 하나이다.


  후리. 브리태니커 사전에 “천국에서 독실한 무슬림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처녀” 또는 “정화된 아내” “흠 없는 처녀”라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실제 생활에 존재하지 않는 일종의 영혼. 그러나 후리는 조금 뒤로 미루자.

  주인공 오브. 2018년에 스물여섯 살. 알제리의 아름다운 항구 오랑에서 어머니 하디자와 함께 살고 있다. 직업은 미용실 주인. 길 건너 맞은편에 모스크가 있고, 젊고 잘생기고 정말 하늘에서 내린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이맘은 아쉽지만 이슬람원리주의에 입각한 여성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히잡도 쓰지 않고, 바지를 입고 다니며, 몸의 여섯 군데에 한 문신 가운데 그게 드러나는 부위도 있어서 오브를 매우 마땅하지 않게 생각한다. 희생절에 맞춰 셔터를 내린 날 미용실 셔터를 부수고 난입해 기물을 부수고 쓸만한 것은 몽땅 훔쳐간 절도범의 뒷배에 혹시 이 이맘이 있는 건 아닐까 여길 정도로. 읽다보면 이맘이 시켜서 그랬다는 건 아니고, 강도를 당할 것을 미리 알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변호사 엄마를 두어 엄마가 출장을 간 사이, 전부터 사귄 동갑내기 어부 청년과 사랑을 해 몸에 수정란이 착상을 했으나, 청년은 그걸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지중해를 건너 스페인으로 밀항한 후로는, 갔는지, 갔으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상태이다. 이슬람 사회에서 여자가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의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임신을 했으니 이것 참. 그럼에도 오브는 자기 배 속의 아이를 딸이라 단정하고 ‘후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작품의 제목이 <후리>가 된다.


  오브. 원래 이름은 오브가 아니었다.

  오브가 살던 곳은 하드 셰칼라. 언덕 위에 집이 있고, 건천이 흐르는 척박한 땅에 농장을 지어 살았다. 부모와 언니. 너무 오래 전이라 파편 같은 기억뿐이다. 언니가 물잔을 가만히 들고 있으면서 물잔에 별을 담아 건네던 추억을 잊을 수 없다. 눈을 가리고 숨바꼭질을 하던 것도. 그리도 당연히 그날.

  1999년 12월 31일.

  산에서 산사람들이 내려왔다. 수염 난 사람들이라고도 하고 해방군이라도 하는. 수염 난 사람들은 하드 셰칼라 주민 약 천 명을 건천으로 데려갔으며, 오브의 가족들도 언덕 위로 데려 올라갔다. 내전이 끝나는 날. 그러나 모든 원리주의자들이 전쟁을 끝낸 건 아니었다. 아니면 아직 소식을 듣지 못한 집단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들이 마을을 통째로 점령하고, 종교적 판단에 의하여 천 명에 이르는 주민들에게 파트와를 선언했는지, 아니면 저 태초의 이브라힘처럼 자기 아들을 목 베어 신에게 바치려 했는지, 이들의 목을 베기 시작했다. 상징적 의미가 아니라 진짜로 목을 베는 참수를 말한다.

  한 남자가 다섯 살 먹은 오브의 머리를 잡았다. 칼이 예리하지 않았는지, 남자가 초보였는지, 아직 완력이 덜 성장한 청년이었는지, 칼날은 오브의 왼쪽 귀 아래로 들어가 오른쪽 귀 아래까지 부욱 그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칼날이 지나가며 후두와 성대와 식도와 혀를 갈랐음에도 효과적으로 경정맥과 경동맥을 절개하지 못한 상태로 던져 버리고 말았다. 피가 철철 흐르는 오브. 오브는 아프지 않다. 아마도 아드레날린이 과하게 분비되었거나 죽음 바로 이전의 실신 비슷한 상태였는지 모른다. 눈에 옆에 누워 참수의 칼을 기다리는 언니가 보인다. 그런데, 언니가 말은 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무엇을 이야기한다. 이야기가 아니다. 손가락으로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눈을 감는다. 오브는 죽어가면서 무슨 뜻일까 잠깐 생각하고는, 절대 다시 뜨지 않을 눈을 감는다. 절대, 절대로 뜨지 않을. 적어도 이곳 언덕의 건천에서는.


  몇 시간 후 붉고 푸른 빛과 함께 목의 절반이 잘라졌지만 아직 완전히 떨어지지 않은 오브의 몸이 움직인다. 그리고 암전. 어딘가 판판한 곳에 실려지고, 몸이 움직이다. 누군가 한 여자의 목소리가 귀에 들린 것 같다. 또다시 암전. 그곳은 가장 가까운 도시, 그러나 멀리 떨어진 동부의 작은 도시 렐리잔에 있는 병원이었으며, 귀에 자기 말이 들리냐고 묻던 여자는 지금 오브의 두번째 엄마를 맡은 용감한 하디자였는데, 또다시 붉고 푸른 빛과 함께 몸이 흔들린 다음에, 오브는 성대를 잃어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가 되었다. 그것 말고도 왼쪽 귀에서 오른쪽 귀까지 턱 아래로 이어지는 17센티미터의 꿰맨 자리 때문에 오브는 위고의 <웃는 남자>와 위치와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웃는 소녀>가 되고 말았다.

  오브는 두가지 언어로 말한다. 밤night 같은 언어와 초승달 같은 언어. 안의 언어와 밖의 언어. 소위 말하는 완전한 벙어리는 아니다. 디즈니 만화 도널드의 목소리와 비슷한 걸 작은 소리로 낼 수는 있다. 호흡하기 위하여 인후에 박은 튜브를 통해 숨도 쉬고 말도 나온다. 일주일에 한 두 번 튜브를 갈려면 소독액으로 손을 깨끗하게 씻고 먼저 목에 꽂힌 튜브를 뺀 다음 완전히 살균한 튜브로 갈아 끼운다. 혀와 식도에 큰 문제가 있어서 음식은 액체 상태로 갈아 그저 목을 넘길 뿐이다. 이렇게 21년을 살았다. 그래서 2021년이 됐고, 스물여섯 살의 미혼 임산부가 되었으나 아직 엄마 하디자도 모른다. 그리하여 오브는 저 변두리 의사의 처방을 받아 매우 위험한 임신중절약 세 정을 가지고 있어, 자기 속의 후리를 없앨 작정이다. 엄마 하디자가 자신의 성대 수술 가능 여부를 묻기 위하여 브뤼셀의 외과의사에게 간 며칠 안 되어.

  그러다가 마음을 바꾼다. 아직도 계속되는 종교와 남자들의 폭력, 비이성적 사고 때문에 마음이 바뀐 게 틀림없다. 자신한테 저질러졌던 폭력, 범죄, 참수라는 형태로 드러난 이브라힘의 희생제의가 있던 곳, 하드 셰킬라에 가 보아야겠다. 마음먹은 오브. 이슬람 국가에서 젊은 여자가 혼자 여행을 해? 그것도 희생절에? 결코 쉽지 않은 길.

  슬픈 이야기. 슬픔이 슬픈 이야기로만 되어 있으면 진정한 비극이 아니다. 좋은 비극이 되려면 슬픔 속에 아름다움이 들어 있어야 하는 법. <후리>가 그렇다. 슬프고 아름답다. 하기 힘든 이야기를 용기 내어 드러낸, 그래서 극동의 한 독자가 지역의 아픈 내력을 알게 해준 작가가 고맙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아픈 사람들에 관하여 우리는 알 필요가 있다. 이렇게 문학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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