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0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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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둘라자크 구르나가 2021년 10월에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작품을 번역한 책이 없었다. 구르나가 호명되자 깜짝 놀란 출판사들 가운데 문학동네가 제일 먼저 구르나와 접촉해 다음해인 2022년에 네 권을 번역 출판했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다. 아직 한 권의 책도 보태지지 않았다.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운데 문학 쪽과 거리가 좀 있는 2016년 수상자 밥 딜런을 제외하면 가장 초라한 대접을 받은 거 아닐까 싶다. 나는 그가 쓴 <배반>과 <낙원>을 재미있게 읽었다. 대체적으로 우리나라 독자들의 평도 좋은 편이었음에도.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은 잔지바르에서 출생해, 1963년 잔지바르 독립 후 신생공화국의 특징인 쿠데타에 이은 독재와 학살을 피해 68년에 영국으로 망명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영어로 작품을 써서 <낙원>이 부커상 최종심까지 올랐고, 오늘 독후감을 쓰는 <바닷가에서>가 예심에 올랐지만 켄트대학에서 영어와 탈식민지 문학 교수로 정년퇴직하고 4년 후인 2021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아, <배반>의 독후감에서 내가 “부커상을 타는 게 노벨상을 받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기도 했다. 당연히 우스개소리였다. 노벨상은 문학성도 문학성이지만 세계각국의 눈치를 보는 것에도 도가 터서 요즘들어 홀수 해는 남자작가, 짝수 해는 여자 작가에게, 영, 불, 독, 스칸디나비아 그리고 대륙별/지역별로 골고루 상을 배분하려 하기 때문에 여차하면 한림원 판정관들의 눈알이 가자미 눈알 비슷하게 될 처지로 몰렸다. 구르나의 노벨상 수상 당시에도 “식민주의 하 식민지 문화와 (아프리카-유럽)대륙 사이의 간극에서 식민주의와 난민으로서의 운명이 끼친 영향을 단호하고 열정적으로 관통해낸 공로”(나무위키의 내용을 약간 수정함)가 이이의 선정 사유로 꼽았다. 실제로 다른 나라에서도 우리나라처럼 구르나의 책을 번역해 시장에 나온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할 정도로 영국 로컬 작가였던 모양이다. 이딴 거 사실 알 필요 없다. 나도 이번에 독후감 쓰느라 여기저기 들락날락거리다가 주워들은 풍월이다. 독자인 우리는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된다.

  들어가기 전에 미리 알아두면 좋을 것은, 이 책 속에 (탈)식민주의와 난민/망명자들의 삶에 관한 것이 들어있을지언정, 서사는 현재 케냐의 해변 일부를 포함한 잔지바르 술탄국이 독립 전후, 쿠데타에 이은 탄압 과정에 맺힌 불화를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런던 근교 해변 동네에서 화해하는 장면까지이다. 당연히 양쪽 사이에 거의 굳어졌던 오해가 풀리는 과정에 (탈)식민주의는 다음으로 한다. 구르나가 켄트대학에서 탈식민주의 문학 교수로 지냈다는 선입견이 거의 필요하지 않지만, 이 정보를 알고 있는 독자 나는 자꾸 그 방향으로 읽는 잘못을 저질렀다.

  또한 등장하는 난민/망명자는 특히 21세기 들어 유럽으로 밀려든 아프리카, 중동, 라틴 아메리카와 특히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사람들이 아니라, 거의 인구유동이 없었던 1960년대의 일, 그것도 예전에 자신의 식민지 지역에서 벌어진 독재와 학살을 피해 망명을 선택한 소수에 관한 일이라, 우리가 얼핏 생각할 수 있는 난민문제와는 사뭇 결이 다르다. 난민을 직접 대하는 영국의 이민국 당사자, 공항에서 처음 접촉한 케빈 에덜만도, 이후에 오랜 세월 주인공을 직접 접촉해 관찰하는 난민위원회의 레이철 하워드도 유색인 난민인 주인공을 정중하게 대하고 편의를 봐준다. 심지어 친절하기도 하다. 친애하는 작가 앨리 스미스의 계절 4부작에 나오는 험악하고 열악하기가 형무소보다 나을 것이 1도 없는 난민 수용소 같은 건 아예 구경할 수조차 없다. 당시 세월이 그랬었나 보다.


  중요한 스토리 라인은 두 이슬람 가족 이야기.

  한 쪽은 이슬람임에도 불구하고 만날 술타령에 성실하지 않은 생활로 일관하던 샤아반 마흐무드 가족. 아버지 무하마드가 일군 큰 재산을 홀랑 말아먹지는 않았다. 그것만 가지고도 크게 성공한 거다. 샤아반은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두었다. 아들 라자브 샤아반 역시 충실하게 아버지의 전철을 좇아 술과 허랑방탕한 세월을 보냈는데 아마도 아버지처럼 여색을 밝히지는 않은 것 같다. 이슬람 사회에서 네 이웃의 아내를 탐했다가는 훤한 대낮에 돌팔매를 맞아 처참하게 숟가락 놓을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보잘것없고 소심한 사내 라쟈브 샤아반이 감히 마음먹지 못했지도 모른다.

  제일 먼저 계절풍 ‘무심’에 관해 이야기해야겠다. 아라비아에서 아프리카 대륙의 동쪽 해변을 따라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 이때 페르시아와 인도의 상선들이 향료와 후추와 기타 등등을 싣고 아프리카 해변을 따라 소말리아, 케냐, 잔지바르를 거쳐 탕가니카와 마다가스카르 등으로 항해했고, 이곳에서 서너달을 머무르며 사업을 진행한 다음 거꾸로 역풍이 불면 다시 품목을 싣고 북상해 온 곳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명나라 환관 정화가 원정을 떠났을 당시 잔지바르와 마다가스카르, 그리고 탄자니아와 모잠비크까지만 흔적을 남긴 것도, 이 아래쪽으로 진출하면 남극해에서 오는 한류와 부딪혀 난파하기가 십상이었기 때문이었다고 역사책에서 읽었다. 어느 책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 무사를 타고 잔지바르에 도착한 큰 장사꾼 후세인이 있었다. 그가 한량인 라자브와 어울려 잘 먹고 잘 놀았으며, 영어에 능통해 라자브의 맏아들 하산한테 영어 과외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동네사람들 한테는 후세인이 하산과 친하게 지내는 걸 보고 둘이 연인이라는 소문도 돌았고, 원래 태어나기를 님포마니아 성향이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안주인과도 모종의 것을 맺지 않았느냐 하는 수근거림도 있었다. 그러나 워낙 활수한 후세인은 라자브와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동업을 제의했고, 동업에 따른 자금을 대기 위하여 라자브가 그의 고모한테 유산으로 받은 좋은 집과 기물 일체를 담보로 후세인에게 돈을 빌렸다.


  그리고 또다른 주인공 살레 오마르. 1958년에 아버지가 별세하는 바람에 유산을 물려 받은 잔지바르의 전직 행정 공무원. 열여덟 살 때에 잔지바르의 다른 학생 세 명과 더불어 영국 정부에 의하여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의 마케레레 대학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공부하고 돌아와 영국 식민정부에 들어가 한 4년 동안 재무부 행정관으로 일했다. 캄팔라에 가 있을 동안 아버지에 이어 아버지가 들인 새어머니도 세상을 접으면서 이제 큰 밑천이 생겨 행정관을 그만 두고 제법 크게 사업을 시작했다. 가구상.

  주요 고객은 영국인들과 살던 곳이 크루즈 1박 기항지라서 몰려드는 유럽 관광객들. 이들에게 살레는 본국으로 돌아가는 영국인들이 헐값으로 넘긴 소품과, 무심을 타고 들어온 아라비아 상인 한테 구입한 말레이반도와 인도 등지 원산인 정밀 세공 가구를 비싸게 팔아 제법 돈을 벌었다. 당연히 큰 상인이었던 후세인과도 사업상 친하게 지낼 수밖에. 후세인은 말레이산 원목을 정교하게 가공한 검정 탁자에 눈독을 들였다. 그래서 오랜 공을 들이다 크메르에서 구한 얼마 남지 않은 향목을 선물하는 등 특별한 인연을 만들어 살레와 흥정에 성공, 끝내 그걸 구입해 라자브의 맏이 하산에게 선물했다.

  이어 라자브한테 제안했던 것과 연결, 살레에게 큰 돈을 빌려달라고 제안했고, 이에 대한 담보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라자브의 집과 기물 일체에 대한 증서를 제시했다.

  결과만 말하자면, 돈을 들고 북아프리카로 (라자브의 맏이 하산과 함께) 떠난 후세인은 폭삭 망해버렸으며 두 번 다시 잔지바르에 나타나지 않았고, 우연이라도 라자브, 살레와 마주치지도 않았다. 알고보면 살레와 라자브는 친척이라면 친척이랄 수도 있는 사이. 살레는 이러저러한 좋은 조건으로 자신도 돈을 받고, 라자브도 집을 건사할 수 있는 방향을 제안했지만 야물딱지게 거절당했다. 그래서 화가 나, 이슬람인들의 인정상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집과 기물을 자기 소유로 해버렸다. 쉽게 말해 라자브 집안이 하나도 잘한 게 없으면서 살레를 원수처럼 여길 수밖에 없는 이상한 관계로 처한 것.

  세월이 흘러 잔지바르 술탄국이 독립을 하고, 1년도 되지 않아 쿠데타가 벌여졌으며, 아랍 출신으로 보이는 살렘은 당연히 체포당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감옥에 처박혔다. 이 사이에 사랑하는 아내와 딸도 죽고 말았다. 정권이 바뀌어 특사로 풀려나 집으로 돌아온 살레 앞에는 또다시 생명의 위협이 기다리고 있어서, 출국 금지 조건으로 석방된 60대의 늙은 살레는 라자브 샤아반의 기물을 처분할 당시 보관했던 소품 한 점 안에서 이미 죽은 라자브 샤아반의 출생증명서를 발견해, 라자브 샤아반 이름의 여권을 만들어 망명길에 올라 런던 개트윅 공항에 도착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이 앞에서 이야기한 공항 이민국 당사자 케빈 에덜만 씨, 난민위원회 담당자 레이철 하워드 씨, 그리고 잔지바르 출신의 영국 시인이자 영문학 교수이며, 라자브 샤아반의 둘째 아들 라티프 마흐무드. 무려 30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만난 사람들. 이들은 서로 바라본다. 자신이 알았던 사실, 알았다고 믿었던 사실, 그리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세월은 모든 것을 무디게 만드는 아름다운 마모도 가지고 있는 걸, 우리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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