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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처럼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7
임솔아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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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독후감을 업로드하는 날이 2026년 1월 중순이겠지만 독후감을 쓰는 지금은 만추, 깊은 가을이다. 아니, 11월이니까 아직은 가을이어야 한다고 우기고 싶은 딱 그때. 하루라도 더 가을에 살고 있을 때.
낙엽이 두꺼워지기 시작하면서, 아직 해가 덜 뜬 아침에 도서관 가는 길, 아파트 후문으로 향하는 샛길. 특히 늦가을에는 조심해야 한다. 곳곳에 지뢰가 묻혀 있다. 신새벽에 집에서 기르는 개를 데리고 배변 산책을 나서는 주민들. 덩치가 크고 작은 개들이 싸 놓은 분변이 낙엽 밑에 깔려 있기 십상이다. 바로 옆에는 누군가가 그걸 밟고, 신발 바닥에 묻은 개똥을 지하 주차장 환기구 턱에 문질러 떼낸 흩어진 똥 덩어리가 어김없이 묻어 있다. 드런 것들. 신발 바닥에 묻은 개똥을 환기구 턱에 문지른 사람 말고, 똥 싼 개 말고, 개보다 못한 개 주인들 말이다.
“우리 아이는 밖에 나가야 똥을 눠요.”
자랑이다 자랑. 딱 찍어서 나 사는 아파트에 은퇴한 맹인 안내견인지, 맹도견 시험에 떨어진 종자인지 하여간 순하고 큰 개를 새벽마다 데리고 다니는 여자도 있고, 남자도 있다. 이 개가 특정한 정원석과 특정 자리에 오줌을 누고 똥을 눈다. 개가 크면 똥도 커서, 그 똥이 개가 싼 건지, 개 같은 개주인이 싸지른 건지 도무지 구별이 안 간다. 하여간 똥 근처에 똥 묻은 화장지가 안 보이는 걸로 보아 개가 싼 것으로 추정할 뿐. 그러면 니네 애가 쌌으니 니들이 치워야 할 거 아냐? 개 키울 자격도 없는 개보다 못한 나쁜 것들.
큰 개들만 똥오줌 싸지르고 다니는 건 아니다. 작은 개들도 마찬가지다. 작은 똥은 치울 생각도 안 하는 개주인들이 몇 명 있다. 이 아파트 단지의 민도가 유독 낮아서 그런가?
크거나 작거나 개가 똥을 눴으면 치워야지. 선량한 개 주인들은 그걸 치운다. 요리할 때 쓰는 일회용 비닐 장갑을 낀 손으로 똥덩이를 집어 검정 비닐봉투에 넣어 가져가는 것처럼 보인다. 근데 일회용 비닐 장갑이 무척 얇다. 개 주인들도 바보가 아니거든. 얇은 비닐 장갑이 개가 똥 눈 시멘트 바닥과 닿으면 가끔은 비닐이 찢어지겠지. 그러면 개똥이 손가락에 묻겠지. 재수없으면 손톱 밑으로 개똥이 파고 들겠지. 내 아이지만 진짜 내 배 아파 낳지는 않은 아이, 라고 떠들고 다니는 개가 싼 똥이 내 손톱 밑에 끼면 좋을까? 드럽게 싫겠지? 그럼 어떻게 해? 비닐 장갑 낀 손으로 똥의 윗부분만 살짝 들어서 치운다. 그러면 길바닥에 똥의 1/4, 심하면 1/3이 그냥 붙어 있다. 이런 건 청소하는 분이 치우지도 않는다. 비가 와야 흔적이 겨우 없어진다. 모를 줄 알았지? 염병이다.
나도 오래 전에 회사 출근 버스 타려고 기다리고 있다가 낙엽 밑의 푸짐한 개똥 밟아본 적 있다. 기분이 어땠겠어? 아, 아침부터 사랑스런 개가 싼 개똥을 밟았으니 횡재했네 횡재했어, 오늘은 로또 한 장 사야지, 이렇게 생각할 정도로 행복했겠어? 개똥을 밟고 나서 아무리 신발 바닥을 긁어도 냄새가 없어지겠어, 안 없어지겠어? 히터 빵빵하게 들어오는 출근 셔틀을 어떻게 타느냐고, 미친다, 미쳐! 내 속에 있다가 나온 똥도 드러운데, 남의 속도 아니고 개새끼 뱃속에 있던 똥을 묻힌 채, 아오! 개 주인들아, 너 같으면 버스 바닥에 똥 묻히면서 출근 셔틀 타겠니? 그래서 휴가 내고 회사 못 갔다는 거 아냐.
꼭 한 줌도 안 되는 개 키우는 암수 빌런들이 대다수 선량한 애견인들을 엿 먹이고 욕보인다니까!
임솔아의 <짐승처럼>을 왜 읽었느냐 하면, 이이가 소설가 이전에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는데, 시를 쓸 때 50번이 넘게 퇴고에 퇴고를 거듭한다는 말을 들어서였다. 전에 읽은 소설집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를 재미있게 읽기도 했고.
근데 <짐승처럼>은 읽는 내내 개, 고양이, 닭, 염소, 기타 등등 사람을 제외한 짐승 이야기다. 물론 두 딸과 엄마로 이루어진 가정 이야기 속에 포함되어 있지만 하여튼 절반 이상이 짐승, 특히 개 이야기. 임솔아는 한 번도 자기가 키우는, 남들이 키우는 개더러 개라고 하지 않는다. ‘애’란다. 그게 개지, 애니? 하긴 자기 개를 자기 애라고 부른다는데 내가 뭐라할 건 없지만서도.
애를 키우거나 키워봤던 사람들은 안다. 밤에 애가 아파 울거나, 열이 펄펄 오르면 그걸 보는 미어지는 부모 심정을. 주인공 ‘나’가 키우는 ‘별나’라는 이름의 작고 어린 개가 아팠다. 믹스 진도견이라니까 사실 작은 개도 아니다. 적어도 가운데 중, 중형 개는 된다.
“하루에 오줌을 서른 번 넘게 누고, 매일 밤 울었다. 그 자그마한 몸에서 그렇게 큰 울음소리가 어떻게 날 수 있을까 싶었다. 채빈(‘나’의 동생)은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p.69~70)
이 개 주인들 미친 거 아냐? 매일 밤 울었으며, 그것도 겁나게 큰 울음소리로 울었는데도 주인공인 두 ‘짐승사랑 자매’는 침대에 자빠져 있었을 뿐 꼼짝도 하지 않았는데, 그러면, 얘네들이 키우는 ‘별나’가 개지, 애니? 애 키우면서 밤마다 울면 그냥 자빠져 꼼짝도 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진짜 너네 애면 아무리 새벽이라도 품고 응급실로 달려나가야 할 거 아냐! 그러면서 말로만…. 꼼짝도 안 한 게 아니라 걱정을 했다고? 걱정한 건 뭔가를 한 게 아니다. 그런 거 아직도 모르니? 해결을 위해 아무리 피곤해도 몸을 직접 움직여야 무엇을 한 것이라는 거.
또, 밤마다 “그렇게 큰 울음소리”로 울고 있는데, 개 안 좋아하는 아파트/빌라 주민 입장에서는 웬 양식 없는 인간이 키우는 개새끼가 밤이면 밤마다 밤새 큰 소리로 짖고 있을 뿐, 그 이웃들 생각은 못하니, 안 하니?
억지로 읽었다. 등장인물과 작가 모두 당연히 채식만 할 것으로 믿는다. 나는 오늘 돼지고기 앞다리 수육에 쐬주 한 병 깠다. 여러가지로 짐승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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