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빌라 공주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17
E.T.A. 호프만 지음, 곽정연 옮김 / 책세상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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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6년 1월에 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에른스트 테어도어 빌헬름 호프만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법학자, 변호사, 작곡가, 음악평론가 겸 고딕 판타지 소설가 에른스트 테어도어 아마데우스, 그리하여 E.T.A.가 된 호프만. 일찍이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칸트를 사사하고, 음악을 가르쳐준 열 살 많은 유부녀를 사랑해가면서 익힌 재주로 훗날 직접, 이제는 잊힌 오페라 <운디네>를 작곡하기도 했지만, 이이의 영역은 누가 뭐라 해도 고딕 판타지 소설 쪽이었다.

  호프만의 다른 책 《밤풍경》 독후감에도 썼듯이 이이의 작품 가운데 <호두까기 인형>과 <코펠리아>는 페터 일리치 차이콥스키와 레오 들리브가 발레로 만들었으며, 단편 <모래사나이>등을 차용해 자크 오펜바흐는 불멸의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를 작곡했다. 로베르트 슈만은 <수코양이 무어의 인생관>에서 힌트를 받아 피아노곡 <클라이슬러리아나>를 쓰는 등 후배 예술가에게 무진한 영향을 끼친 인물으로, 오늘 소개하는 <브람빌라 공주> 역시 나치 시절 “퇴폐예술”로 분서갱유의 작가로 지목된 유대인 출신 작곡가 발터 브라운펠스가 오페라로 작곡하기도 했다. 나치의 퇴폐예술에 대한 분서가 하도 무지막지해서 오페라 <브람빌라 공주>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거의 잊혀지다시피 했다가, 2003년 아일랜드의 (존 밴빌의 고향)웩스포드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다니엘레 벨라르디넬리의 지휘로 기사회생했다. 이 실황공연은 마르코폴로 음반사에서 녹음을 해 대사집 포함해 36.400원에 팔고 있다. 삼성카드로 구입하면 더 할인해서 25,480원에도 살 수 있다는데, 말이 퇴폐음악이지 뭐 별로 색다른 거 없으니 사서 들으시든지 마시든지 알아서들 하시라. 


웩스퍼드 오페라 축제 실황 공연 2003년 10월


  <브람빌라 공주>에는 “야콥 칼로를 따른 카프리치오”라고 부제가 붙어 있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호프만 선생이 하루는 책을 뒤적뒤적 하다가 책 한 권에서 17세기 초 프랑스의 유명한 풍자화가 쟈크 칼로의 동판화를 보게 됐다. 이탈리아 사람들로 보이는 인물들이 별 이상한 가면을 쓰고, 역시 별 희한한 복장을 한 채 아마도 사육제를 맞아 춤추고, 노래하고, 연극임에 틀림없는 듯 넓은 나무칼을 들고 겨루는 장면들. 판화를 들여다보는 호프만의 머리속에서는 벌써 예측 불가능한 상상력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세상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엽기적 판타지, 이를 일컬어 카프리치오라 했으니, 그것 참, 어울리는 부제가 아닐 수 없다.

  호프만 자신도 작품에 들어가기 전, “서언”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을 심각하고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책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 둡니다.”

  이것 가지고도 모자랐는지, 18세기 이탈리아 정통희극의 정수인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기수 카를로 고치(졸문 “카를로 고찌, <까마귀>” 참조하실 수 있음)의 말을 첨언하기도 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갖가지 유령들의 등장만으로는 동화에 영혼을 불러넣기에 충분하지 않고, 심오한 근거로써, 삶에 대한 철학적 견해에서 얻은 주요 이념으로써 비로소 동화가 영혼을 얻는다.”

  그런데 독자는 정작 카를로 고치의 의견을 안 읽으니만 못하다. 이제 문제가 좀 복잡해진다. “삶에 대한 철학적 견해에서 얻은 주요 이념”? 그게 뭔데?

  E.T.A. 호프만은 평생, 작가로 살면서 하루도 빼지 않고 독일의 위대한 문호이자 아예 독일 문학의 아버지로 군림하는 추밀고문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에 대하여 일종의 질식감을 부담하면서 살았던 거 같다. 기후 때문에 그런지 가뜩이나 재미없고 무겁기만 한 엄숙주의적 독일 문학이 하도 도도해, 호프만 같이 판타지 성향의 작가들은 과장되고 장중하기만 한 독일 문학에서 벗어나 숨 좀 마음대로 쉬어 보고자 앙탈을 부렸던 거 같으니, <브람빌라 공주> 역시 이 노력의 일환이 아니겠느냐는 말씀.


  아무리 깡다구 좋은 호프만이라고 해도 동판화 몇 장을 보고 연상한 판타지 소설의 무대를 엄숙무비한 독일 땅에서 구현하기가 쉽지 않았던지 이 작품의 무대는 찬란한 태양빛의 나라,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가장 활기찬 날, 사육제 이브부터 사육제 기간 내내 벌어지는 기묘한 이야기들로 꾸몄다.

  사육제 전날밤. 사랑스럽고 예쁜 소녀 지아친타는 재단사 베스카피 선생의 보조로 바느질과 수를 담당하고 있는 가난한 아가씨. 18세기 소설의 주인공이니까 아무리 가난해도 무지하게 예쁘다. 예쁜 만큼 천방지축이기도 하다. 지아친타는 보모인지, 하녀인지, 가난하니까 하녀는 아니겠지만 하여간 늙은 베아트리체와 함께 2층의 좁은 방에서 적어도 공주가 사육제 때 입을 옷에 장식품을 달고 있다. 기껏 바느질을 하는 열여섯 살의 소녀지만 꿈은 커서 백작 따님이나 공주님을 따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이 옷을 입는 건 사람이 아니고 신비로운 요정일 것이라고 바느질을 하면서 꿈 속을 떠돌아다니니 이게 제대로 되겠어? 그러다가 기어이 바늘로 자기 손가락을 푹 찔러 피가 무도복 위로 똑똑 떨어지고 말았다. 아야야, 비명을 지르니 저쪽에 서 있던 늙은 베아트리체가 다가와 얼마나 다쳤는지 본다고 석유등잔을 기울여보는 순간, 제대로 정제하지 않은 석유가 또 무도복에 꼴꼴 쏟아져 그만 크게 얼룩이 저버렸다. 이걸 어째?

  그러거나 말거나 장식품으로 흉을 대강 가리고 나서, 이 옷을 사육제에서 누가 입든지 간에 어쨌든 아름다운 지아친타가 제일 먼저 입어보아야 한다고 바람을 잡는 베아트리체. 단테의 베아트리체하고 달라도 너무 다르지? 그래서 정말로 지아친타가 옷을 입었는데, 아이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이야.

  이 순간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며 한 남자가 들이닥치는데, 누굴까? 만일 옷을 주문한 마이스터 재단사 베스카피 선생이면 지아친타는 골로 가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아니다. 스물 네다섯 정도로 보이는 젊은이. 남자 주인공이자, 작품의 스토리를 밀고 나가는 진짜 주인공 지글리오 파바. 당연히 매우 사랑스럽고 잘생긴 외모의 소유자이며, 로마 극단의 비극 전문 배우. 자기 아니면 로마에서 비극을 제대로 공연할 수 있는 배우가 없다고 기고만장한 콧대를 결코 꺾을 것 같지 않으니 다른 일에서도 마찬가지겠지? 안 봐도 삼천리. 그래서 아가씨 방문을 노크도 없이 벌컥 열어 젖히는 거겠지.

  근데 서민극에서 잘생긴 주인공들이 부자인 경우가 몇 건이나 돼? 이이 역시 겉만 멀쩡하지 주머니는 텅 비어 있는 상태. 지아친타의 기묘하고 변덕스럽고 거리낌 없는 성격은 급기야 지글리오의 귀싸대기를 후려 갈기는 사태까지 이르렀고, 그러거나 말거나, 이들은 내일 사육제에서 놀라운 인연을 만나 정말로 백작의 딸이나 공주가 되고, 여왕이나 공주의 애인 또는 남편이 되는 몽상에 빠진다.


  완전 동화 같지? 근데 호프만이 동화작가는 아니어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별 희한한 판타지 적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하니, 책을 읽는 독자가 다 어질어질할 정도이다.

  드디어 밤이 깊어지고 사육제 전야가 시작되어 가장행렬이 벌어진다. 제일 눈에 띈 것으로 말씀드리자면:

  눈같이 흰 열두 마리의 일각수가 끄는 마차 위에서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악단이 지나가고, 뒤를 이어 거대하 타조 두 마리가 끄는 수레 위에 황금 튤립이 놓였는데 튤립 속에 기다란 흰 수염의 작은 노인이 정좌하고 있었다. 이 뒤를 좇는 것이 긴 창과 짧은 군도를 차고 화려하게 치장한 열두 명의 건장한 흑인이 알통을 불근거리면서 ‘트로이를 세운 현명한 코페투아 왕의 증손녀이자 세렌디포의 위대한 왕의 조카딸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집트의 브람빌라 공주를 호위하고 행진하는 거였다.

  그럼 브람빌라 공주가 로마에는 왜 왔을까?

  공주와 열렬히 사랑하고 있다가 사랑니가 함부로 자라 도무지 치통을 견딜 수 없어 위대한 돌팔이 의사 첼리오나티한테서 이를 뽑히려 로마에 온, 브람빌라 공주의 친구이자 신랑인 아시리아의 코르넬리오 키아페리 왕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이쯤 되면 어여쁜 소녀 지아친타와 젊은 미남 배우 지글리오, 그리고 이집트 공주 브람빌라와 아시리아 왕자 코르넬리오 커플이 서로 바뀌는, 당연히 판타지 적으로 바뀌는 거니까, 알고보니 지아친타와 지글리오의 출생의 비밀이 어쩌고 저쩌고 하겠는데, 호프만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는 것에 문제가 좀 있을 걸? 한 마디로 그리 생각하면 오산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어떤 결말이 되는지 알고 싶으면 굳이 책 한 권을 끝까지 다 읽어야 하지만 지금 이 책은 품절도 아니고 절판. 처음에 소개한 CD를 들으며 자디잔 글씨를 읽는 일도 쉽지 않을 터. 그냥 모르고 사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즉, 여태까지 쓸데없는 독후감을 괜히 길게 썼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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