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식 결혼
타야리 존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1970년에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대학의 정치학 교수 아버지와 클라크 칼리지의 경제학 교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타야리 존스는, 부모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흑인종과 인권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는 환경에서 자랐다고 한다. 자라면서 높은 문화적 배경과 좋은 교육, 여유로운 생활을 향유하는 많지 않은 흑인 가정 출신.

  애틀랜타에 있는 흑인여성전용대학인 스펠먼 칼리지를 졸업하고 아이오와 대학 대학원에서 영어 석사, 애리조나 주립대학 대학원에서 소설창작 석사를 받았다. 1987년부터 2000년까지 13년간 대학을 다닐 수 있었으니 꽤나 여유로운 가정이었던 듯하다. 졸업후엔 10년간 뉴욕에서 코넬대 교수(Professor-at-large: 겸임교수 정도일까?) 등 몇몇 일을 하고 지금은 애틀랜타로 돌아와 에모리 대학에서 소설 창작 교수를 하고 있다.


  개인 이력은 모두 위키피디아에 적혀 있는 것인데 이 가운데 독자가 알아두면 좋은 것이 존스가 1979년부터 1981년까지 최소 28명의 아프리카계 미국 어린이, 청소년, 성인이 연쇄살인 당한 “애틀랜타 살인사건”의 현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것과, 초혼이 아니었던 아버지는 이전 아내와의 사이에 두 명의 형제와 두 명의 자매가 있어 이들과는 따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작품의 남자 주인공 로이 오세니얼 해밀턴의 생부 오세니얼은 올리브가 로이를 임신하자, 담배 사러 동네 수퍼에 갔다가 그 길로 증발해 다시는 모자 앞에 나타나지 않은 인물이다. 임신 중기에 달했을 때 올리브는 덩치가 큰 로이 해밀턴이 나타나 진심으로 사랑을 호소하며 청혼하고, 결혼해서, 자기의 친아들은 아니지만 새롭게 생긴 아기에게 흔쾌히 자기 이름 로이를 물려주어, 자신은 빅로이, 아들은 스몰로이, 이렇게 부르고, 호적에는 로이 오세니얼 해밀턴 주니어로 이름을 올린다.

  빅로이는 아내 올리브가 폐암으로 죽을 때까지 세상의 어떤 남편보다 지고한 사랑을 바쳤으며, 아들 스몰로이를 위하여 모든 아버지들보다 보잘것없지만 큰 사랑과 헌신과 지지를 보낸다. 내 주장은, 세상에 이렇게 선하기만 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 그러니까 조금은 위선적/작위적인 캐릭터. 그리 부유하지 않은 늙고 선하고 현명한 흑인이 소설이나 영화에 가끔 등장하니까 크게 까탈 하지는 않겠다.

  다른 주인공 셀레스철 그레이스 대븐포트의 아버지 미스터 D 역시 초혼이 아니다. 대븐포트 씨는 학교 물리교사 겸 발명가였는데 대학을 갓 졸업하고 궁핍하게 살던 시절에 첫번째 결혼을 했다. 몇 년 살다가 선생과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여선생이 눈에 들어왔고, 점점 친해졌고, 당연히 사랑으로 번져 아내와 이혼하자마자 그레이스 셀레스틴과 다시 결혼해 딸 셀레스철 그레이스를 낳은 것. 이후 집에서 취미 겸 발명을 하다 소위 신물질을 개발하는 데 성공해 특허출원을 해 지금은 뉴욕이나 LA, 보스턴처럼 큰 도시는 아닐지언정 애틀랜타에서 상당한 규모의 저택에 살며 여유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으니, 아마도 작가 타야리 존스의 부모가 인물 설정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싶다.


  로이와 셀레스철을 처음 만나게 해준 사람이 로이의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안드레. 안드레와 셀레스철은 어린 시절에, 어린 시절도 시절 나름, 유아시절에 옷을 홀랑 벗은 두 아이의 엄마가 한 싱크대에 올려놓고 함께 몸을 씻겨준 사이였다. 너무 친해 사랑보다는 오히려 형제 사이의 우애 의식이 더 깊었던 사이. 그래서 대학 다닐 때 자연스럽게 안드레의 방에 놀러온 셀레스철한테 로이를 소개해주었는데 둘의 눈에는 그다지 불꽃이 튀지 않았다.

  훗날 셀레스철은 타야리 존스처럼 뉴욕에서 일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때 애틀랜타에서 수학 교과서 관련 영업일을 하던 로이가 뉴욕에 출장을 와 우연하게 만났는데, 때마침 어린 소매치기가 셀레스철의 귀중품을 훔쳐 달아났다. 로이가 소매치기를 잡으러 뛰어가 발목을 나꿔챘고, 꼬마는 로이에게 “나한테 총이 있었으면 어쩔려고 이렇게 쫓아왔어요?” 하면서 발길로 로이의 얼굴을 걷어차는 바람에 로이의 앞니 하나가 빠져버렸다.

  비록 범인은 놓쳤지만 이 일로 로이는 셀레스철의 영웅이 되었고, 얼마 동안 원거리 연애를 하다가 결국 결혼과 동시에 애틀랜타에 신혼집을 얻었다. 이들도 작가와 비슷하게 70년 개띠 정도. 아프리카계 미국인 부부, 특히 남편은, 돈을 벌어오는 건 남편이 하고, 집안일과 여유시간을 향유하는 건 아내가 하는 관습에 일종의 자부심을 느꼈던 모양이다. 로이는 영업에 관해 놀라운 성과를 나타내 매년 매우 높은 연봉을 받아, 나름대로 여유있는 삶을 즐기고 있었다. 당연히 셀레스철의 아빠 대븐포트 씨가 지원도 해주었겠지만.


  결혼 1년 반 정도 지나 크리스마스 시즌이 왔다. 셀레스철과 로이는 오랜만에 루이지애나의 작은 시골 일로에 있는 빅로이와 올리브, 시댁에 간다. 미국에서도 고부갈등이란 것이 있는 모양이다. 이를 슬쩍 지켜보던 빅로이가 하는 말씀이, 올리브와 리틀로이, 그리고 셀레스철은 일종의 삼각관계에 처했다는 것. 빅로이가 올리브가 만났을 때는 다행스럽게 두 명 다 자유스러운 몸이었단다. 빅로이의 부모는 다 저세상으로 갔고, 올리브의 부모는 아주 멀리 있어서 조금도 영향을 끼칠 수 없었다나?

  스몰로이가 대답한다. 아이가 생기면 달라질 거예요.

  맞아. 손주가 야수를 달랠 수 있지.

  셀레스철은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했다. 그래서 지금도 예술 헝겊 인형을 만들고 있다. 상류층 흑백 인종에게 주문을 받아 심혈을 기울여 만들면 대개 5천 달러 정도를 받는다. 이 말을 들은 올리브.

  아기 인형 하나에 5천 달러? 하느님이 그래서 백인을 만들었나 보구나.

  워낙 비싼 고급 예술인형을 만드는 셀레스철. 영업감각이 뛰어난 로이는 만들기 더 쉽고, 비싸지 않은 인형을 많이 만들어 사업을 시작하면 큰 돈벌이가 될 것이라 제안한다.

  드디어 밤이 오고, 시부모는 젊은 부부가 당연히 자신의 집에서 잘 것이라 여겼지만, 안타깝게도 부부는 오는 길에 작은 타운에 딱 하나 있는 호텔에 방을 예약하고 왔던 터였다. 부모 입장에서 아쉽지만 어떻게. 내버려둘 수밖에. 다 큰 자식들한테 그들은 부모밖에 안 되는 거다. 세상의 뜻이니 감수해야 한다. 여전히 자기 주장을 하고 싶으면 그게 갈등을 초래한다는 걸 다행히 빅로이는 알고 있었다.


  호텔에서 문제가 생긴다. 사랑하는 만큼 자잘하게 다투기도 하는 일반적으로 행복한 젊은 부부는 방에 들자마자 사소하게 말다툼을 하고, 로이가 기분이 새서 얼음통이나 채우러 밖으로 나갔다. 호텔이 2층 정도인 거 같고, 이들의 숙소는 1층인 모양이다. 얼음 저장고에 가서 통을 채우고 있는데, 마침 옆에 엄마 올리브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든 듯한 여성이 있어서 이 여성의 얼음통도 로이가 채워 주었다. 거동이 불편해보여 부축해 방에 데려다 주고, 방을 보니 여기저기 불편한 것이 많아 그걸 일일이 다 제대로 고쳐 놓고 자기 방으로 왔다.

  사소한 다툼은 젊은 부부 한테는 키스 한 번으로 끝나는 법. 짧은 치마형 슬립 하나만 입고 있던 셀레스철이 자연스럽게 침대에 올라 옆으로 오라고 주문했고, 함께 누운 순간, 난데없이 경찰이 문을 거칠게 두드리더니, 문을 열자마자 아스팔트 바닥으로 옷을 거의 벗은 로이를 팽개쳐버리고, 얼굴과 무릎이 까진 로이의 두 팔을 뒤로 돌려 수갑을 채우더니 현행범으로 체포해버렸다.

  얼음통 아주머니. 엄마 올리브보다 더 나이든 모습의 아주머니가 그 사이에 강간을 당했고, 범인으로 로이를 지목해버린 거였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오직 여성의 진술 하나로 죄는커녕 친절만 베푼 흑인 남자가, 아마도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빼도 박도 못하고 강간범으로 체포된 것도 모자라, 장인 데븐포트 씨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루이지애나 법령에 의거 12년 형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들어간다.


  젊은 아내도 알고, 로이의 부모도 알고, 셀레스철의 부모도 알며, 변호사도 로이한테 죄가 없다는 걸 알지만 그는 루이지애나 더운 형무소에 갇혀 온갖 흉악범이 모인 정글에서의 삶을 살게 된다.

  죄가 없다는 건 알았겠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이어지기 위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게 함께 살아야만 하는 것이라는 점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을 걸? 로이는 그리도 거친 곳에서 아내 셀레스철을 떠올리고, 다양한 모습을 연상하는 것 말고는 위안이 없다. 셀레스철은 날이 갈수록 고독이 깊어간다. 이들의 사랑은? 당연히 옅어진다.

  에휴, 그 마음 안다. 온갖 흉한 일을 당하며 치욕의 세월을 보내면서 로이는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야수가 되어가고, 자신이 그 고생을 하고 있으니, 아내는 적어도 자신을 위해 기다려주기를 바라지만 그게 쉽나? 우리나라 남자들은 대개 로이의 마음을 이해할 걸? 12년 형을 받은 로이가 5년 만에 연방 법원에서 승소해 출옥한 것도 작지 않은 문제다. 5년이라면 연인이 아니라 “혼인”의 사슬에 메인 “아내” 입장에서 기다릴 수도 있는 세월이었지만, 셀레스철은 애초에 12년만 염두에 두었을 터이니. 이걸 어쩌나.

  정말 사는 게 다 그렇기는 하지만, 가끔 예외도 있는 법. 그래도 기대해보자. 미국에서 결혼과 가족의 의미는 조금 다르니까.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