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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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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하민 라바투트와 그의 지인들은 위키피디아에 1980년에 자신이 출생한 곳과 성장한 곳, 즉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태어나 헤이그, 부에노스아이레스, 리마애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14세 때 산티아고로 이주했다는 정보만 공개했다. 당연히 작품과 수상내역은 적혀 있지만 그건 뭐 그냥 그렇고.
라바투트의 가장 중요한 작품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이하 “우리가”라고 표기함>. 그는 스스로 이 작품을 “화학적으로 순수하지 않은 에세이, 이야기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두 개의 이야기, 단편소설, 반semi전기적 산문으로 구성된 책”이라고 했다.
작가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썼다면 이 책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작품집이 제일 어울릴 것 같다. 독자들은 이 책이 2021년 부커-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였다는 이유 때문인지 작품 간의 연계성에 주목하여 연작소설로 보려하는 것 같은데, 내 생각엔 화학적으로 순수하지 않은 에세이와, 나머지 파동과 입자, 수학과 확률 이야기 사이의 연계가 연작이라 하기엔 많이 해이하지 않은가 싶다. 그냥 모두 개별적 이야기로 읽는 편이 좋을 듯하다. 작품 속 주인공 또는 등장인물이 서로 교차 등장하는 건, 한 시대의 대표 천재들이 몇 명 없었는데 그이들이 대가리 터지게 연구하던 분야를 조망하려면 당연히 천재들이 이 작품 속에도 등장하고, 저 작품 속에도 나와야 할 터이니까. 18세기말~19세기초의 유럽 음악계의 천재를 주제로 단편소설 몇 편을 쓰려 하는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루트비히 판 베토펜을 등장시키지 않을 수 없듯이. 뭐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억지로 앞 뒤 작품의 연관성에 몰두하면 오히려 덜 재미있을 수도 있고.
나도 이쪽을 공부했지만 때려치운 지 벌써 40여 년이라 양자물리학이 어떤 종류의 학문인지도 벌써 잊었다. 평범한 수준의 IQ를 가지고 있다면 그런 건 나처럼 잊고 사는 것이 여러모로 바람직하다. 천재들의 리그. 그런 것도 있어야지. 가끔 ‘그들만의 리그’라고 하면 입에 버글버글 거품 물고 댓글 쓰는 분도 있는데 오히려 그런 것도 있어야 인류평화가 유지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니 너무 열 받지 마시기를 권한다. 아인슈타인, 드 브로이, 보어,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 등이 거의 미치광이가 될 지경으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 인류는 인구가 조밀하게 모여 사는 두 도시 상공에서 ‘작은 꼬마’와 ‘뚱뚱한 이’라고 이름 붙인 원자폭탄을 터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1927년 10월 24일 브뤼셀의 생리학연구소에 백인천재들만 스물아홉 명 모인 양자물리학 학회의 토론에서 아쉽게 패배하고 만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신은 우주를 놓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소.”
양자물리학에서 웬 우주 이야기? 스타니스와프 렘이 무한 공간인 우주가 얼마나 넓으냐, 라는 물음에 10의 6백 제곱만큼 넓다고 말했다. 단위가 뭐가 되든지 간에. 이 10의 6백 제곱이란 수를 수평으로 죽 그은 선 아래에 두면, 즉 분수의 분모로 두면 그게 극미의 공간을 다루는 양자물리학이 된다. 그러니 양자물리학은 우주를 공상하는 것과 마찬가지. 두 경우 결국 남은 것은 입자와 진동 또는 파장이 아니라 숫자. 또는 일종의 확률이나 분포. 그리고 또다시 신.
훗날까지 거듭거듭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말을 남기고 떠난 아인슈타인의 뒤통수에 대고 보어는 또 이렇게 말하며 그를 배웅했다.
“신은 우주를 놓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소!”
어때? 천재 과학자들끼리도 살벌하지? 그들은 칼만 들지 않았지 만날 때마다 진검승부를 펼친다니까? 오른손을 맞잡고 열라 아래위로 흔들면서 만면에 웃음을 머금었지만 속은 그게 아니었던 거지.
보통의 지능만 갖추었을 뿐인 나는 그래서 첫번째 이야기, 라바투트가 말한대로 “화학적으로 순수하지 않은 이야기”를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 프러시안 블루.
얼마나 아름다운 색깔인가!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호쿠사이가 그린 <가나가와의 파도 아래>를 물들인 파란 색. 그러나 1782년 스웨덴인 화학자 칼 빌헬름 셰레는 극미량의 황산을 입힌 스푼으로 프러시안 블루를 휘저어 현대의 가장 강력한 독약인 시안화물을 만들고, 이 새로운 화합물에 ‘프러시안산酸이라 이름을 붙인다. 셸레의 파란색. 에메랄드 그린.
시안화물. KCN. 청산. 강한 휘발성을 띄는 액체. 비등점이 섭씨 26도이며 연한 아몬드 향을 풍긴다. 그렇지만 인류의 40%는 이 냄새를 맡지 못한다. 시안화물 바로 전 단계가 치클론A. 강제수용소에서 유대인 학살에 사용한 가스. 반면에 캘리포니아 오렌지 밭에 무한정 살포한 살충제. 일반 시민들의 피부에 붙어 기생하던 이, 벼룩, 빈대 등의 해충을 구제하기 위해 이민선을 타고 뉴욕에 내린 유럽인들의 몸에 원하는 만큼 뿌려 주기도 했던 정체 불명의 액체이기도 했다.
1945년 4월 12일. 베를린 필하모니의 마지막 연주 레퍼토리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라장조와, 브루크너 교향곡 4번 <로맨틱> 그리고 마지막 곡으로 바그너가 작곡한 <신들의 황혼> 피날레, 브륀힐테가 그녀의 말 그라네를 타고 지크리트를 화장하는 불 속에 뛰어들기 전의 독백으로 꾸렸다. 지크리트와 브륀힐데를 태우는 불은 더욱 커져 결국 신들의 궁전인 발할을 불살라 급기야 신들의 시대에 종막을 고하는 장면. 이렇게 나치 정권 역시 한 줌의 재로 남을 것을 알았던가, 곡이 끝나고 엄숙한 모습으로 퇴장하는 나치 인사들 앞에 귀여운 히틀러 소년단원들이 고리버들에서 캡슐 하나씩 나누어 주었으니, 캡슐 안에 든 것이 바로 시안화물. 포로의 불명예를 당하느니 차라리 신속하게 죽는 게 나을 거라는 뜻이었다.
비단 시안화물로만 저지른 것은 아닐지언정 1945년 4월에 베를린에서 3천8백명이 자살에 성공했다. 이 가운데 육군 53명, 해군 11명, 공군 14명의 장성이 포함되어 있었으니 이들 전부는 아니라 하더라도 많은 장군들이 베토벤과 브루크너와 바그너를 듣고 퇴장하던 길에 받아간 캡슐을 어금니 사이에 넣고 깨물었을 것이다.
훗날 2만명이 복용할 수 있는 분량의 디히드로코데인을 가진 채 체포된 헤르만 괴링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소에서 단번에 죽을 수 있는 총살형이 아니라, 목을 매달아 죽이는 교수형 판결을 받자 며칠 후, 사형이 집행되기 전에 다른 장군과 마찬가지로 어금니 사이로 캡슐을 밀어넣고 단번에 깨문 시체로 발견된다. 원래는 총살형을 선고하려 했으나, 자기네 나라 땅에서 2천만명의 국민을 죽이고, 천만명의 부상자를 냈으며, 영토를 쑥밭으로 만든 최고 책임자를 편하게 총살로 보낼 수 없다고 소련 당국자가 득달같이 항의하는 바람에, 목을 매달아 서서히 줄을 당김으로써 똥을 저리며 고통스럽게 죽이는 방식의 교수형을 당하게 된 것이 너무 치욕스러웠나보다. 자기가 저지른 학살은 괜찮고, 자신이 당하는 치욕은 참을 수 없었다.
죽음을 덜 고통스럽게 해주는 독약. 그것이 오직 죽는 시간을 단축시키기 때문인 치명적 독.
질소와 탄소, 그리고 포타슘의 화합물. 독약으로 기능하기 전까지는 천사의 로브나 성모 마리아의 장옷을 칠하기 위해 사용한 안료 프러시안 블루였던 물질. 프러시안 블루가 나오기 전까지 유럽의 궁정화가들은 아프가니스탄의 코츠카 강변 계곡 동굴에서 채굴한 보석인 청금석을 곱게 갈아 천사와 성모의 옷을 그렸었으니, 훗날 숱한 죽음을 초래한 시안화물의 전신인 프러시안 블루가 인간의 예술에 얼마나 크게 이바지 했었으며, 누가 있어서 프러시안 블루로 인한 대량학살을 꿈이라도 꾸었을까?
칠레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는 이런 발명의 이면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눈부신 푸르름이 초래한 대량 살해와 수학과 과학에 의하여 터져버린 원자폭탄과 계속되는 핵공격에 의한 멸망 시나리오 등을. 이제 언제 갑자기 우리 모두, 죽는 줄도 모르고 죽는 날이 올지 누가 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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