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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세통언 3 - 어리석은 세상을 깨우치는 이야기
풍몽룡 지음, 김진곤 옮김 / 아모르문디 / 2024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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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40편이 실린 《경세통언》 세 권을 다 읽었다.
명말청초 17세기 사람이다. 19세기도 아니고, 18세기도 아닌 17세기 전반부에 쓴 작품. 풍몽룡의 3언, 즉 《유세명언》, 《경세통언》, 《성세항언》 120편의 단편을 세 책으로 나눈 것 가운데 제2 언. 풍몽룡이란 이름만 듣고 누군지 잘 모르시겠지? <동주열국지>를 쓴 사람이라면 이해가 빠를 듯.
풍몽룡의 3언, 120편의 단편 ‘소설’ 모두 다 저자가 직접 만들어낸 허구는 아니다. 중국, 특히 장강을 중심으로 한 현 장쑤성과 장강 주변의 민담을 발굴, 평생 과거 시험에 응시했다가 미역국만 착실하게 자신 문인으로의 저자가 시詩, 사詞, 그리고 곡曲을 보태 소설의 형식으로 다시 만들었다. 즉, 소설화한 옛날 이야기 모음집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풍몽룡의 출생지가 강소성 소주부, 즉 소주. 일찍이 위진魏晉, 즉 조조의 후예 조씨의 나라 위와 조씨의 씨를 말리고 황제 자리에 오른 사마 씨의 나라 진晉. 이 사마씨의 진나라에서는 역설적으로 사마 성을 가진 사마 씨들이 서로 눈빛만 마주쳤다하면 도륙을 내는 바람에 금세 멸망해 동쪽으로 도망가 다시 세운 나라를 동진東晉이라 일컫는데, 한 백 년 정도 유지하던 사마씨의 나라였다. 소주가 이 동진 부근에 있어서, 《경세통언》의 이야기들도 이 시기부터 당, 송, 원, 명대를 배경으로 전해온 민담이 대부분이다. 물론 이전 즉 동주東周시대의 것도 있기는 하지만 드물다.
《경세통언》 세 권을 다 읽은 소감을 이야기하자면, 1권은 제법 재미있게 읽었으나 그 재미라는 것이 2권에 와서 확실하게 반감되는 것을 느꼈다. 비슷한 내용과 플롯을 연달아 읽으면서 재미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3권까지 가면 확실하게 재미 적다.
책은 민담에서 시작한 것 답게, 남자가 첩을 얻거나 바람을 피우는 건 마땅하지는 않지만 그럴 수도 있는 법인 반면 혼인한 여성의 경우에는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큰일날 일이라서, 주로 유부녀의 혼외정사와, 남자의 편력에 의한 패가망신 같은 사건으로 “세상을 깨우치는 이야기”가 흔하다. 남녀상열지사의 표현도 17세기 시각에서는 대단히 선정적이었겠다. 물론 지금은 중딩들도 안 읽을 수준이지만.
다들 읽어보셨을 <삼국지>나 <수호지> 같은 것도 오래 전 번역에서는 다분히 도교적 시각으로 쓰인 것이 많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도 했던 <봉신연의> 같은 건 애초 주인공 격인 강태공이 신선 가운데서도 대단한 공력을 지닌 신선이고, 악역인 달기는 꼬랑지 아홉 개 달린 백여우로 그렸으며, 강태공이 사용하는 무기들도 네이팜탄과 다연장포를 연상시킨다. 《경세통언》, 특히 3권에서는 유달리 이 신선과 요괴들이 많이 등장하고, 심지어 동진 시대를 무대로 하는 작품에 나오는 요괴의 개과천선한 아들 하나는 몇 백 년 후에 서쪽 천축국으로 경전을 가지러 떠나는 중 삼장법사를 등 위에 태워 함께 다녀오면 곱게 하늘로 오를 수 있다는 것까지 나온다. 이런 것이 책 한 권에 한두 편이면 흥미 있을 지 모르겠지만, 억울하게 죽어 귀신이 되어 복수하는 거, 신선이 꿈에 나타나 누가 범인일지 가르쳐 주는 거, 신선 팀과 요괴 팀이 맞짱을 떠 당연히 착한 신선이 백대 영으로 이기는 거, 이런 것들이 잦아 나중엔 질리게 되더라는 말씀.
그렇다고 이 《경세통언》을 포함한 풍몽룡의 3언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건 아니다. 당시에도 아마 이 책은 “어리석은 세상을 깨우치는 이야기”라는 타이틀을 단 흥미 위주의 소설이었을 듯하다. 그러니 후세인들도 풍선생의 유지를 좇아 바쁜 세상 살면서 조금 한갓진 시간을 보내려 할 때, 책장에서 이 책을 뽑아 들고 한 편, 또는 두 편 정도 읽고 난 다음, 훗날을 기약하면서 책갈피를 꽂고 다시 책장에 올려 놓으면 그것으로 충분할 터. 즉, 가벼운 마음으로 잠깐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기에 맞춤하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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