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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죽어 가다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오세곤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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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이오네스코는 반反연극을 주창한 부조리극 집단의 일원이다. 그의 소설 <외로운 남자>는 우리나라 독자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나와의 사이에는 너무도 깊고 넓은 강이 흘러 도무지 가까이할 수 없었다. <대머리 여가수>는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으나, 그것도 벌써 9년 전의 일이라 어슴푸레한 기억밖에 남지 않았다. 대개 부조리극이 그렇더라. 읽을 때는 뭔가 근사한 거 같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내가 왜 공감을 했는지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 것들. 줄거리도 그렇고. 주로 프랑스 극작가들 사이에서 한 시절을 풍미했던 부조리극은 내가 읽어본 극작가에 국한해 말하자면 이오네스코, <타란느 교수>를 쓴 아르튀르 아다모프, <고도를 기다리며>의 사무엘 베케트, 내 20대 초반 시절에 희곡의 맛을 알게 해준 소품 <촛불>의 페르난도 아라발, <어느 여인의 초상>을 쓴 미셸 비나베르 정도. “부조리극의 반동에 대한 반동”이라고 불리는 미셸 도이치까지 포함하면 좀 오버일 수도 있겠지? 이게 가까우니까 독일로 넘어가 귄터 그라스와 막스 프리쉬로, 영어권에서는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의 에드워드 올비까지 이어진다. 해롤드 핀터도 알아주는 영국의 부조리극 극작가라는데 아쉽게도 읽어보지 못했다.
외젠 이오네스코의 극작품은 딱 하나 <대머리 여가수>만 읽어봤다.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희곡 작품 수에 비하면 말 그대로 일천한 독서지만, 하여간 <대머리 여가수>를 읽으면서, 이오네스코의 부조리극은 어째 다른 극작가들과는 달리 말장난에 치우친다는 기분, 그래서 재미는 있지만 마음에 흡족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농담도 이미 촌스러워진 개그 콘서트를 보는 기분이었다. 예를 들어:
스미스: (신문을 읽으며) 쯧쯧. 바비 와트슨이 죽었어.
스미스 부인: 어머. 어째, 언제 그랬대요?
스미스: 뭘 그렇게 놀라요? 다 알면서. 이 년 전에 죽었잖아요. 장례식 갔던 거 생각 안 나요? 일년 반 전에.
2년 전에 죽은 사람을 6개월씩이나 보존했다가 1년 반 전에 장례식을 했단다. 그게 지금 읽는 신문에 실리 게 아니라, 그저 신문을 읽으면서 바비 와트슨이 죽었다는 생각이 나서 말해본 거다. 이런 말장난이 도무지 조리에 맞지 않아서 부조리극. 하여간 별의 별것이 다 있다니까? 참고로 <대머리 여가수>에서 대머리 여가수는 출연하지 않는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발꿈치도 볼 수 없는 것처럼. 근데 <왕은 죽어가다>에는 진짜로 죽어가는 왕이 나온다. 정말 왕이 죽어가느냐고? 그렇다. 그런데 그건 나도, 당신도 지금 죽어가고 있는 것과 같다. 다만 나와 당신은 한 나라의 왕하고 비교하면 따라지 인생이라 죽어가고 있는 것이 조금도 뉴스거리가 되지 않을 뿐.
왕의 나이는 4백살이 넘었다. 결혼하고 283년이 흘렀고 277년 3개월 전에 왕좌에 올랐다. 283년 전에 결혼한 왕비는 마르그리트로 첫번째 왕비. 1988년 한국불어불문학회지에 실린 소논문을 발췌 요약한 “해설”을 보면 마르그리트 왕비는 “왕이라는 인물의 이성적 판단 능력과 죽음에 대한 욕구, 또는 마지막 순간 스스로 길잡이로 삼는 내면적 기능의 구현된 실체”라고 했다. 하여간 먹물들 말버릇하고는. 쯧쯧. 쉬운 얘기를 될 수 있는 대로 어렵게 하려 기를 쓴다. 한 마디로 하자면 죽어가는 왕에게 찍소리 하지 말고 천리를 따라 얼른 죽어라, 라고 입 바른 소리만 줄창 해대는, 그러나 겉으로는 한 마디도 왕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진정으로 왕을 사랑하는 조강지처 본마누라이다.
왕비가 한 명 더 있다. 마리. 왕비가 한 ‘마리’ 더 있다는 얘기 아니고, 두번째 왕비의 이름이 ‘마리’다. 두 왕비가 서로에게 존칭을 쓰는 걸로 보아 왕이 직접 귀밑머리 풀어준 정식 혼인한 왕비다. 마리는 마르그리트와 반대로 죽어가는 왕의 살고자 하는 본성, 자연, 감정을 대변하는 역할. 당연히 조금의 시간만 나도 왕한테 사랑을 고백하고, 죽지 않을 거라는 거짓 암시라도 주어 희망을 갖게 하려 한다. 왕 입장에서 누가 더 예쁘겠어? 당연히 마리겠지? 그렇다. 게다가 마리가 훨씬 젊을 터이니 말 하면 뭐해.
왕이 4백년을 넘게 살고, 277년하고 석달 동안 왕으로 있으면서 무엇을 했느냐고? 180차례 전쟁을 치루었으며 이 가운데 스스로 선봉에 선 전투만 해도 2천번이다. 처음 왕이 됐을 때는 화려한 붉고 흰 깃발을 꽂은 백마를 타고 장창을 옆구리에 들었으나 나중엔 탱크나 전투기 날개 위에 서서 군대를 지휘했다. 화약을 발명했고, 신들로부터 훔쳐온 불을 화약에 붙여 적을 물리쳤다. 세상에서 처음으로 제철소를 지어 철기시대의 도래를 고했으며, 최초의 풍선과 비행선과 최초의 비행기까지 손수 제작했다. 물론 단번에 성공하지는 못해서 이카로스 등 숱한 조종사가 목숨을 버렸지만 결국 왕이 직접 비행체를 운전하기로 결심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세자 시절엔 바퀴와 수레를 만들었으며, 놀라지 마시라, 낫과 쟁기, 트랙터는 물론이거니와 에펠탑도 설계했다는 거 아니냐.
종교를 창시한 후에 이를 개혁, 재개혁한 것은 물론이고,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도 썼다. 호메로스와 그 시대에 대한 최고의 해설서를 집필했으며 빌 셰익스피어라는 필명으로 여러 편의 비극과 희극도 써서 공연한 건 비밀도 아니다. 전신과 전화는 물론이고 얼마 전에는 핵분열법도 발명한 천재 가운데 천재, 그가 바로 베랑제 왕이다. 그래, 왕 이름이 베랑제. 베랑제 1세다.
그러나 그건 왕의 재임 시기 가운데 영광의 순간만 모은 것. 왕으로 등극할 당시 왕국의 인구가 무려 90억 명에 달했건만 이후 나날이 쇠퇴일로를 걸어 지금은 늙은이들만 천명 살고 있다. 청년은 없냐고? 있다. 무려 45명. 다른 나라로 갔다가 그 나라에서 강제 소환시킨 지체/정신 장애인들. 스물다섯 살에 송환되어 돌아오니까 불과 이틀만에 여든 살 먹은 노인이 되어버린다. 궁전은 폐허가 되고, 국토는 황무지가 되고, 산은 내려앉고, 바다가 제방을 부숴 전국이 물바다. 나라 전체에 벌집 또는 치즈처럼 구멍투성이가 되어 그나마 남은 국토에는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한다. 이게 다 이웃나라들이 국경을 밀어붙여 영토가 줄어드는데 한 시절 워낙 강국이어서 군인이라는 것들이 싸울 생각은 않고 밤낮 먹고 마시고 취해서 잠만 자 그렇게 된 결과이다.
이걸로 끝난 게 아니다. 화성과 토성이 충돌해 둘 다 폭발해 사라졌고, 태양도 50내지 75퍼센트 기능을 상실해 태양의 북극에선 눈이 내리고, 은하수는 얼어붙었으며 기력이 빠진 혜성은 자기 꼬리에 휘말린 개처럼 한 자리에서 맴만 돌고 있다. 어제 저녁은 봄이었건만 두시간 삼십분 전에 갑자기 봄이 사라지고 지금은 11월이다. 국경 너머에선 초목에 싹이 돋고 암소들이 아침에 한 번, 정확히 오후 다섯시 25분에 한 번, 이렇게 하루에 두 번 송아지를 낳는데 이 나라에선 하늘에 번개가 멈춰 섰고, 구름은 개구리 비를 퍼부으며, 벙어리 천둥이 소리 없이 울부짖고 있으니 정말 망쪼가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
왕이 언제 태어났느냐고? 이 작품이 연극 공연을 기본 목표로 하는 희곡이지? 왕은 인간이 연극을 처음 공연했을 때 태어났다. “왕은 죽어가다.” 그러면 언제 죽느냐고?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연극이 끝나는 순간 왕은 죽는다. 그러니까 미래. 하지만 그렇게 멀지 않은 미래. <왕은 죽어가다>를 공연하는 연극일 경우에는 이 <왕은 죽어가다>가 끝나는 시점에 왕은 죽는다. 그래서 마르그리트 왕비는 한시간 반이 지나면 왕, 베랑제 1세가 죽을 것이라고 알려주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시간 25분, 58분 30초, 뭐 이런 순서로 시간이 줄어든다. 또는 죽을 시간이 가까이 다가온다.
근데 정말 죽느냐고? 그건 연극이 끝날 때까지 모르지. 연극이 끝날 1시간 30분 이전에 여의도만 한 위성이 지구에 충돌해 지구 자체가 멸망해버릴 지 누가 아느냐고? 연극의 결말 장면을 보면 정말 죽기는 죽는 것 같다. 왕도 처음엔 자신의 죽음을 거부하고, 부정하고, 저항하다가, 나중엔 죽은 자 가운데 사흘만에 다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겠다고 쥐랄을 하시다가, 결국 마르그리트 왕비의 말씀을 좇아 죽음을 인정하는 단계까지 이른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지구의 어느 한 극장에서는 연극을 공연하고 있다. 베랑제 1세는 이 연극을 공연하는 내내 죽어가다가 끝나는 순간 죽겠지만, 다른 어느 극장에서 다시 생명을 가질 수 있다. 맞지? 여기에 동의하시더라도 어디 가서 입 밖에 내지 마시라. 전적으로 아마추어인 내 생각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게 말 하는 순간 왕창 쪽팔릴 수도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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