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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타 T.에 대한 추억 ㅣ 마르코폴로의 도서관
크리스타 볼프 지음, 양혜영 옮김 / 마르코폴로 / 202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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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내가 읽는 크리스타 볼프의 세번째 책인데, 참 낯설었다. <나누어진 하늘>과 <카산드라>를 기억하면, 사실 읽은 지 꽤 되어 정확하지 않겠지만,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이 쓴 문장 같았다. 아마도 이 독후감을 2025년 9월 1일, 올 가을의 첫날, 그것도 월요일 아침에 업로드할 거 같은데, 첫 아침부터 김 새게 이런 이야기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말 문장을 읽기가 편하지 않았다. 새삼스레 번역이 어쩌고저쩌고 떠들지 않겠다. 하여간 읽기 불편했다. 이제 역서를 읽으며 이런 이야기하는 거에 질렸다.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크리스타 T. 길쭉한 팔과 다리, 어색한 걸음걸이, 목덜미까지 내려온 다듬지 않은 머리카락. 여기에 어둡고 다소 거친 목소리를 가볍게 내는 혀 짧은 소리로 발음하면 그렇게 좋은 인상을 받기는 힘들겠지? 여기에 열의도 열정도 없는 눈빛까지 가졌다니, 한 마디로 외모로 보면 갖출 것은 다 갖춘 셈이다. ‘나’와 반 친구들보다 한 살이 더 많다. 유급을 당해 한 학년을 반복한 기록이 있다. 프리데베르크 지역에 있는 아이히홀츠에서 살아서 그런지 숲에 가는 것을 제일 좋아한단다. 베를린에서는 여관에서 지내고, 주말에 집에 다니러 간다. 집에서는 크리스타 대신 ‘크리샨’이라 부른다고.
크리스타 T.를 처음 본 ‘나’는 생각한다. 싫어. 친하게 지내지 않을 거야. 친구로 받아주지도 않을 거고. 그렇게 처음에는 크리스타 T.를 무시해버린다.
때는 1944년. 전쟁 중이라 멀리 다닐 수도 없었다. 그러나 크리스타 T.는 여름에 친구와 여행을 떠났다. 이제부터 독자인 나는 헛갈리기 시작한다.
“나는 그 친구에게 질투를 느꼈다. 그녀는 베를린 아파트의 텅 빈 음악실에서 촛불을 켜놓고 크리스타 T.에게 베토벤 곡을 연주해 주었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촛불을 끄고 창가에 몸을 기댔다. 그녀가 불행과 죽음과 우정을 되는대로 내버려 두는 방식은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때 그녀는 어찌 되었든 성은 볼 수 없었다.” (p.22~23)
크리스타 T.에게 피아노를 연주해 준 게 첫번째 “그녀.” 공습경보가 울리면 창가에 몸을 기댄 것도 피아노를 연주해 준 그녀, 즉 크리스타하고 함께 여행을 떠난 친구? 불행과 죽음과 우정을 되는대로 내버려 두는 방식을 갖고 있는 그녀는 또 누구? 크리스타 T? 아니면 함께 여행을 간 친구? 어찌 되었는 성을 보지 못한 그녀는? 너무 세밀하게 읽으려 한다고? 젠장. 작품을 읽으면서 주어가 정확하게 누군지 알고 싶어 하는 게 글러먹은 거야, 아니면 독자로 하여금 주어가 정확하게 누군지 몰라서 염병할 주어를 찾느라고 문장을 뒤적뒤적, 뒤적거리게 만든 작가 및/또는 역자가 잘못이야? 죄송하지만 주어가 누구신지 아시면 좀 가르쳐 주실래요? 하면서
물론 이 작품을 번역한 사람은 알겠지. 근데 독자는 오리무중이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2백쪽 더 계속된다. 그러면서 서서히, 천천히, 느긋하게, 여유롭게 독자를 미치게 만든다. 그러다가 250쪽을 넘으면 읽기가 조금 나아지고, 3백쪽에 육박하면 그래, 읽힌다. 결국 돌아버리지는 않았다. 돌아버릴 거 같아서 책 읽기를 때려 치우려고 했다. 책 읽다 죽기 싫어서. 그러나 이 책은 다른 작가도 아니고 크리스타 볼프가 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가 동네 도서관에 책 사달라고 희망도서 신청해, 시민과 자영업자들과 지역 기업들이 낸 지방세로 구입한 책이라서, 내 돈 주고 산 소위 내돈내산이라면 벌써 때려치웠을 것을, 농도와 성분이 피와 매우 유사한 세금으로 샀으니 차마 그럴 수 없어서, 다 읽었다. 역자 양혜영이 이 글을 보면 매우 불쾌하겠지만 초보 역자가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이렇게 처음에는 크리스타 T.를 경원했던 ‘나’가 점점 크리스타와 우정을 쌓고, 7년만에 다시 만나 더 깊은 우정을 쌓아가다 30대에 혈액암에 걸려 일찍 생을 마감하는 크리스타 T.를 추억하는 스토리다. 동부 독일에서 소련군의 점령을 고스란히 당해 피란을 떠나는 민간인, 특히 10대 후반의 여성이 겪는 이야기를, 어느 익명의 여성이 쓴 <함락된 도시의 여자들: 1945년 봄의 기록>하고 연계해서 조금 보태려 했다가, 치과 가야 한다. 차라리 잘 됐다. 즐겁게 읽지 않은 책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떻게 해도 재미있을 턱이 없다. 가서 고문당하고 오겠다. (갔다 왔다. 치과, 정말 싫다.)
올해 가을의 첫날부터 이렇게 부실한 독후감을 올려서 미안하다. 뭐 사는 게 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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