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스트리트 대산세계문학총서 195
싱클레어 루이스 지음, 이미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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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클레어 루이스는 우리나라에서 그리 인기를 누리지 못하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이다. 그가 1930년에 노벨문학상을 받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작품이 1925년에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지명되었으나 문학상 제도에 대한 불만 때문에 수상을 거부했던 <에로스미스>와 1922년작 <배빗>, 그리고 20년작 <메인 스트리트>를 꼽는다고 한다. <배빗>은 2111년부터 열린책들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169번으로, 이전에는 아마도 같은 회사의 “미스터 노Mr. Know” 시리즈로 번역 출판되어 우리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작품이었을 것이다. <에로스미스>와 <메인 스트리트>는 글쎄 올해 2025년에 한 방에 두 작품이 다 시중에 나왔지 뭐야. <에로스미스>는 직업이 의과학자라서 <의사 과학자 에로우스미스>라는 제목으로 776페이지, 두 권의 책으로 만들었고, 주로 의학, 약학, 질병 등에 관련한 책들만 전문적으로 내는 군자출판사(교재)라는 곳에서 냈다. <메인 스트리트>는 문학과지성사가 대산세계문학총서 195번으로 출간한 798쪽 분량의 벽돌책이다. 이 두 작품, 세 권의 책을 동네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해서 <메인 스트리트>가 먼저 도착해 읽었고, 일주일 정도 지나면 <에로스미스>도 들어왔다 할 거 같다. 지난 달엔 스타니스타프 렘과 로버트 그레이브스를 팠다면 이번 달엔 아무래도 싱클레어 루이스를 파는 달인가 보다.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일이 곧잘 생긴다. 이번에도 루이스의 책이 또 나온 거 있나 싶어서 검색해봤더니 두 작품이 눈에 들어왔고, 평소에 루이스는 안 보이면 몰라도 눈에 띄기만 하면 읽어조지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이라, 게다가 이제는 내돈내산도 아님에 망설일 필요도 전혀 없으니 당장 희망도서 신청해버렸다.


  싱클레어 루이스의 책이 나오는 족족 찾아 읽는다지만, 루이스를 선택할 때마다 작품에 크게 공감하거나 작가의 성향이 나와 맞아서 이번엔 어떤 스토리일까, 궁금해하고 그러는 건 아니다. 심지어 제임스 A. 미치너는 그의 작품 <소설>을 통해 과대포장된 미국 작가 네 명을 뽑는데 제일 먼전 입에 올리는 작가가 싱클레어 루이스다. 뒤를 이어 펄 벅,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리고 존 스타인벡. 제임스 미치너 역시 한 명의 소설가일 뿐이라서, 굳이 미국 출신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네 명을 딱 골라서 과대평가되었다, 반드시 평가절하되어야 한다, 이렇게 발언하는 것도 좀 웃기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우리의 유일한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은 반드시 평가절하되어야 하는 작가라고 주장하면, 누가 주장할 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전 국민에게 딱밤 한 대씩 맞아 자칫하면 한 많은 세상 절명하셔야 할 걸? 반면에 진정한 서사를 품은 네 명의 미국인 작가로 허먼 멜빌, 스티븐 크레인, 이디스 워튼, 윌리엄 포크너를 꼽았다. 허먼 멜빌하고 윌리엄 포크너는 당연히 평생 까방권을 가진 작가들이지만 크레인과 워튼이 헤밍웨이와 스타인벡을 깔고 앉을 수 있다고? 이런 건 그냥 재미로 읽는 게 몸과 마음이 축나지 않는다, 흥분하지 말자.

  나오는 족족 찾아 읽지만 그때마다 크게 기대는 하지 않는 작가 싱클레어 루이스. 여태까지 몇 권이나 읽었나? 별로 되지 않는다. 여태 네 권. 뚜렷하게 스토리를 연상할 수 있는 작품도 없다. 희미하게 그 책이 이러저러한 내용이었지 아마? 이런 정도의 작가. 대공황을 이겨낸 루스벨트 대통령의 뒤를 이은 민주당 모 대통령이 30년대 당시 유럽 일부국가처럼 강력한 전체주의적 성향을 드러나 전 국민을 감시, 통제한다는 <있을 수 없는 일이야>가 탁, 생각나는데 그것도 작품 때문이 아니라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종사자 가운데 한 명이 이 소설을 기반으로 드라마를 만들었으니 그게 우리 눈에도 익숙한 외계인 침공을 다룬 드라마 <V>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거 있잖아. 산 쥐를 잡아 꼬랑지를 들고 거꾸로 삼키는 아름다운 외계인 아가씨 다이아나.


  서론이 길었다. 스토리 소개하자.

  매사추세츠주 출신으로 박식하고 장난을 좋아하며 매사에 친절한 밀퍼드 씨는 법학을 공부해 대학 졸업 이후 미네소타주 맨카토/맨케이토Mankato에서 내내 판사로 재직했던 양반이다. 때는 19세기 말 벨에포크 시대. 세기말적 분위기라고는 1도 없었던 건실한 판사 선생은 어쩐 일인지 결혼 상대가 얼른 나타나지 않아 연식이 꽤 된 상태에서 혼인을 하고 딸 둘을 낳았다. 두 딸 가운데 두번째 아이 이름이 소설 <메인 스트리트>의 주인공 캐럴. 애칭 캐리. 캐럴이 아홉 살 되었을 때 먼저 어머니가 세상을 접었고, 열한 살 때 아버지가 판사직에서 사임하고 맨케이토에서 미니애폴리스로 이사했는데 이로부터 2년 후에 아버지마저 엄마를 따라 아이들을 등졌다. 그러니까 우리의 캐럴은 열세 살에 고아가 되었다. 이제 캐럴에게 남은 유일한 혈육은 오직 한 명인 언니. 작품이 끝날 때까지 이름도 한 번 나오지 않는 언니는 그로부터 얼마 후 미니애폴리스하고 딱 붙어 있는 대도시이자 미니애폴리스와 함께 트윈시티라고 불리는 세인트폴에 사는 안경사와 결혼해버렸다. 매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언니는 아버지가 남긴 거의 모든 돈을 휘리릭 날려 버렸는데, 모텔비를 포함한 데이트 비용으로 쓰거나, 결혼비용으로 쓰거나 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풀방구리에 새앙쥐 드나들듯이 아버지 통장에서 조금씩 빼 쓰다보니까 홀랑 다 써버리고 말았던 거다. 그러니 자매 간에 정이 있겠어? 남이 아니지만 남보다 못한 언니. 이걸 보고 뭐라 그래? 맞다. “웬수.” 웬수는 작품이 끝날 때까지 다시는 종이 위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도 캐럴 밀퍼드는 미니애폴리스 끝자락에서 건전한 종교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인 블로젯 칼리지를 졸업할 수 있었다. 독실한 종교학교를 다닌 많은 학생들이 그러하듯 캐럴은 이후 기독교에 아주 냉담한 거리를 두었는데 그렇다고 반종교적 성격까지 띈 것은 아니다. 자기가 필요하면 매주는 아니더라도 침례교회도 가고, 장로교회도 가고, 가톨릭 교외엔 안 가고 뭐 그렇다. 물론 그것도 나중 일이다. 학교 졸업할 즈음엔 교회 꼴도 보지 않았다.


  캐럴은 태어날 때부터 영웅숭배자였다. 그러다보니 스스로도 절대로 정체된 삶을 살지 않을 것이라고 수시로 자기 최면을 걸었다. 사람을 잘 믿는 성향이라서 작품을 따라가면 어떻게 줄줄이 그렇게도 사람들한테 물을 먹는지 그것도 팔자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 정도. 그런데 때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도 전인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여성참정권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다가 체포된 여성이 실형을 받기도 하던 때였는데, 잘 교육받았다고 보이는 젊은 여성이 ‘정체된 삶’을 살지 않겠다고 하는 건, 사회를 위하여 이바지하고 자신의 발전을 계속 도모하겠다는 이야기이다. 생산직과 서비스직을 제외하고 여성이 직업을 갖는 건 속념상 두 개의 선택지만 있던 시절이었다. 타이피스트와 속기사.

  캐럴 밀퍼드 양은 블로젯 칼리지에 다닐 당시 영문과 교수가 조언해주는 대로 시카고 대학에서 도서관학을 공부한 후 그곳에서 1년 동안 도서관 일을 습득했다. 시카고는 뉴욕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세계적으로 고급 문화가 밀집해 있는 문화도시이기도 하다. 이때 캐럴은 연주회, 미술관, 연극, 고전무용 등을 섭렵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좋을 거 같지? 촌 동네에서 살 팔자면 나중에 그게 다 너무 그리운 추억이 될 뿐인 걸 그땐 모르지. 하여간 1년 후 다시 트윈시티로 돌아와 세인트폴의 공공도서관에 일자리를 얻는다. 일이 불만스럽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재미있는 것도 아니었다. 도서관에서 일한다고 해서 그게 사람들의 삶에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같은 도시에 살지만 자매가 만나는 꼴을 한 번도 보지 못하는데, 언니의 친구 마버리 부인이 저녁식사에 초대한다. 마버리 씨는 보험회사의 순회 영업사원, 쉬운 말로 보험 외판원이다. 20세기 초에 보험외판원은 아서 밀러의 작품 속 윌리 로먼 씨와 달리 괜찮은 직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캐럴은 이들 부부가 세인트폴의 문학과 예술의 대변자 정도로 여겼으니까.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들 부부의 파티에 서른예닐곱 살 먹은 것 같은 키 크고, 체격 좋은 외지인인 외과의사 윌 캐니컷 박사가 와 있었던 거였다. 고퍼 프레리 카운티 일대에서 대단한 의사라는 명망을 즐기고 있는, 책을 다 읽은 내가 보기에도 당시엔 최상급의 남편감이었다. 보건복지부 의견은 다음으로 하고, 법무부 쪽으로 말하자면 한 번도 ‘총각’이 아니었던 적이 없기도 하다.

  캐럴과 윌이 띠동갑 혹은 조금 더 터울이 있지만, 당시엔 이건 터울도 아니다. 그래서 둘은? 1년 후에 결혼한다. 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거나 비슷하듯이, 당시에 캐럴은 일에 조금 지친 상태였으며, 앞날의 성공이나 기꺼이 함께하고 싶은 남자도 나타나지 않은 시점이었거든. 이럴 때 결혼 많이 한다. 파티에서 처음 만난 날, 윌은 캐럴에게 자기 고향(결혼하면 둘이 가서 살아야 할 곳)의 사진을 보여주었고, 이미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던 캐럴은 사진을 보는 눈에도 뭔가 필터가 끼어 있는 것을 몰랐으며, 아무리 초라하더라도 자기가 그곳에 가서 사람들을 깨우쳐 더 나은 삶의 환경 속에서 문화적 풍요로움을 누리게 만들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약 3천 명쯤 되는 주민이 사는 미네소타의 광활한 밀 초원지대의 중심지. 정말로 중심지. 양 옆으로 단층, 2층, 가끔 3층짜리 목조, 석조 건물이 서 있고,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메인 스트리트를 벗어나자마자 사방팔방을 둘러봐도 평원지대, 혹은 눈 쌓인 광막한 벌판인 곳.

  호기심 어린 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환영 속에 열차에서 내린 캐럴과 윌 캐니컷 부부. 윌은 신속하게 의사 업무에 복귀하고, 캐럴도, 시골 사람 모두 캐리를 상세하게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천천히 알아차리면서 고퍼 프레리 카운티에 도착하기도 전에 생각해둔 개선 프로젝트를 모색한다. 캐럴의 선한 개선의지가 지극히 보수적이고, 종교적이며, 완고한 애국주의적인 작은 도시에서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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